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5년, AD130년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5년, AD130년
五年 正月 上與惠后史省 受朝南桃
5년(AD130년, 庚午) 1월, 상은 惠后(혜후)와 史省(사성)과 함께 南桃(남도)에서 조회를 받았다.
二月 大光星出自東北 凡二十日 或曰聖人出 上與惠后史省 禱天于閼川
2월, 大光星(대광성)이 동북으로부터 나와, 범 20일동안 있었다. 혹은 성인이 나왔다고 하였다. 상은 惠后(혜후)와 史省(사성)과 함께 閼川(알천)에서 하늘에게 빌었다.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23년, AD79년.
二十三年 春二月 慧星見東方 又見北方 二十日乃滅
23년(AD79년, 己卯)=> 婆娑 5년 (AD130년, 庚午)
봄 2월, 살별(彗星)이 동쪽에 나타났고, 또 북쪽에도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없어졌다.
*AD130년- AD79년= 51년 편차.
*신라본기 탈해 23년 2월 기사와 동일.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의 23년 말년기사가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5년 기사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탈해의 재위기간은 18년이다.
三月 八鏡多出死魚 命戽其水 以發良爲伊伐飡 干時爲稟主 弩門爲京都軍事 以聖父女烏羅爲軍母 以屈公子古乙爲護城兵官
3월, 八鏡(8경)이 死魚(사어)를 많이 내었다. 그 물을 퍼 올리도록 명하였다. 發良(발량)을 伊伐飡(이벌찬)으로 삼았다. 干時(간시)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弩門(노문)을 京都軍事(경도군사)로 삼았다. 聖父(성부)의 딸 烏羅(오라)를 軍母(군모)로 삼았다. 屈公(굴공)의 아들 古乙(고을)을 護城兵官(호성병관)으로 삼았다.
*其水으로 정정.
*戽배두레박 호
(1) [명사]〈농업〉 용두레. 호두(戽斗).
用戽斗打水; 용두레로 물을 퍼올리다
(2) [동사] (용두레·무자위 따위로) 논밭에 물을 대다.
把塘里的水戽到田垄里; 연못물을 밭고랑에 대다
戽水抗旱; 물을 퍼 넣어 가뭄에 대처하다
2. [동] (물을 논으로) 긷다. 퍼 올리다.
我们买了一台戽水机。 - 우리는 양수기를 한 대 샀다.
农民戽水抗旱。 - 농민들이 물을 퍼서 가뭄을 버티다.
四月 大風 大井東門頹壞 上爲之責己 不食 惠后沐浴 禱天曰 “責在妾身 願解夫今” 須臾風止 遣支所禮 問民頹戶
4월, 크게 바람이 불었다. 大井(대정)의 東門(동문)이 頹壞(퇴괴)하였다. 상은 그것을 자기의 책임이라 생각하여 먹지 않았다. 惠后(혜후)는 목욕하고 하늘에 빌며 말하길, "책임은 妾身(첩신)에게 있습니다. 원컨데 夫今(부금, 남편)을 풀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잠시 바람이 그쳤다. 支所禮(지소례)를 보내 백성들과 무너진 집들을 위문하였다.
*頹壞(퇴괴)= 낡아 허물어짐. 무너짐.
*須臾(수유)= 잠시.
*臾가 원본에서 更에서 위쪽 一가 빠진 글자 형태, 臾를 고려대장경 사전에서 "유" 검색어로 찾아 본 바, 臾의 이체자가 맞았다.
須臾 (수유) <しゅゆ>
(1) 잠시. 잠깐 동안.
[예문] 道也者 不可須臾離也〈中庸〉
(2) 《佛》 시간의 단위. 눈 깜짝할 사이. 刹那(찰나).
*頹戶(퇴호)= 무너진 집
五月 惠后生女 難之曰 “妾己衰矣 願以吾女毛多爲聖母 以報上恩” 上曰 “施優在多何爲 母汝尙豊雋 史省在焉 勿爲遠慮也”
5월, 惠后(혜후)가 딸을 낳았다. 곤란해 하며 말하길 "첩은 이미 쇠해졌으니, 원컨데 저의 딸 毛多(모다)를 聖母(성모)로 삼아서 상의 은혜를 보답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길 "毛施(모시)는 후함이 많이 있으니, 어찌 하겠소? 어머니와 당신은 오히려 豊雋(풍준)하오. 史省(사성)이 여기에 있으니, 遠慮(원려)하지 마시오" 라고 하였다.
*豊雋(풍준)
*遠慮(원려) 앞으로 올 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
八月 太君以暑疾崩于日知宅 上與惠后臨泣曰 “父今棄我 何去” 太君曰 “歸侍先今 此願畢矣 骨門無相殘 勞來無相欺 知之乎” 上曰 “諾” 太君乃崩 天地晦冥 上痛哀之 以父今禮葬于壤井陵門 阿孝今堂皆殉之 不能禁 太君足智多謀 有大功于社稷 又喜女色 所畜嬪妾千有余人 生子女七百人 不能盡知 自神以來 初有之事也
8월, 太君(태군, 吐解尼師今)은 더위로 병들어 日知宅(일지택)에서 崩(붕)하였다. 상은 惠后(혜후)와 함께 울면서 말하길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버리고 어찌 떠나가십니까?" 라고 하였다. 太君(태군)이 말하길 "先今(선금)을 모시러 돌아간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骨門(골문)은 서로 싸우지 말아라. 勞來(노래)는 서로 속이지 마라. 알겠느냐?" 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길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太君(태군)은 곧 崩(붕)하였다. 天地(천지)가 晦冥(회명)하였다. 상은 애통해 하였다. 父今(부금)의 禮(례)로서, 壤井陵門(양정릉문)에 장사하였다. 阿孝(아효)와 今堂(금당)은 순장하니, 막을 수 없었다. 太君(태군)은 지혜가 풍족하고 계략이 많았다. 社稷(사직)에 큰 공이 있었고, 또한 女色(여색)을 좋아하여 嬪妾(빈첩)을 모은 것이 천여명이였다. 자녀 700명을 낳았으나, 모두 알 수 없었다. 神(신)이래 처음 있는 일이였다.
*努 => 勞 으로 수정.
*相殘(상잔) 서로 다투고 싸움
*勞來(노래) 노래(勞倈). 오는 사람을 맞아 수고를 위로(慰勞)하여 줌, 백성들의 수고로움를 위로함. 역사(役事)나 힘든 공사가 있는 경우 백성들을 위로하고 보답해 주는 것을 말함.
勞 2. (1) 위로하다.
[예문] 以勞王爵〈左氏傳〉
來 2. 위로하다. 【같】 徠.
[예문] 放勳曰 勞之來之〈孟子〉
[예문] 勞來.
*晦冥(회명) 캄캄하게 어두움. 해나 달의 빛이 가리어져서 컴컴함
*足 (2) 족하다.
① 충족하다. 가득 참.
[예문] 學然後知不足〈禮記〉
[예문] 知足.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24년, AD80년.
二十四年 夏四月 京都大風 金城東門自壞 秋八月 王薨 葬城北壤井丘
24년(AD80년, 庚辰)=>婆娑 5년 (AD130년, 庚午)
여름 4월, 서울에 큰 바람이 불었고, 금성의 동쪽 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가을 8월, 왕이 죽어 성 북쪽의 양정구(壤井丘)에 장사지냈다.
*AD130년- AD80년= 50년 편차.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 24년 4월 기사와 동일.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탈해 23년 2월, 탈해 24년 4월, 2개의 기사로, 분산되어 기록되었다.
*탈해이사금은 파사이사금에게 선위를 한 후 5년 지나서 죽었다. 매우 중요하다.
*탈해는 AD46년 출생, AD130년에 사망. 130년 - 46년 = 84살 + 1살= 85살에 사망.
九月 以史省毛施訥慧爲聖母 行吉于奈乙 覆岩太守弩乙知薨于州 革古請拾骨而歸 許之 吉門請與發良易妻 許之 以明宣爲覆岩州太守 妻以 都氏
9월, 史省(사성)과 毛施(모시)와 訥慧(눌혜)를 聖母(성모)로 삼았고, 奈乙(나을)에서 吉(길)을 행하였다. 覆岩太守(복암태수) 弩乙知(노을지)가 州(주)에서 죽었다. 革古(혁고)가 뼈를 수습하기를 요청하고 돌아가니, 이를 허락하였다. 吉門(길문)은 發良(발량)과 妻(처)를 바꾸기를 요청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明宣(명선)을 覆岩州(복암주)의 太守(태수)로 삼았고, 都氏(도씨)를 妻(처)로 삼았다.
*訥慧(눌혜)로 수정.
*毛 이 글자는 원본에서 1획이 더 많은 모양.
*于로 수정. 歸로 수정.
*以 都가 珥로 컴퓨터상에서 바뀜.
十月 聖父角干與太聖巡至一善 慰賜軍士 久理唐卒 命以海飡禮葬之
10월, 聖父(성부) 角干(각간)은 太聖(태성)과 함께 순행하여 一善(일선)에 이르러 군사들을 위로하고 치하하였다. 久理(구리)가 갑자기 죽었다. 海飡(해찬)의 禮(례)로서 장례하도록 명하였다.
*久로 수정.
十二月 扶余乘雪 欲取一牟城 不克而退
12월, 扶余(부여, 백제)는 눈이 온 틈을 타 一牟城(일모성)을 취할려고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였다.
*乘 탈 승 (2) [동사] (기회 따위를) 이용하다.
乘夜出击; 야밤을 틈타 출격하다
乘胜直追; 승승장구하다
无隙可乘; 끼어들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