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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隣通聘攷(팔린통빙고) 仁德朝 (인덕조)-2

라디오에요 2009. 1. 20. 10:33

八隣通聘攷(팔린통빙고) 仁德朝 (인덕조)

○百濟君臣向背未定 高麗王談德 大發兵迫百濟 我屯兵援百濟拒之 敗績 談德卽收孚取地 以還 於是襲津彦等 割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 諸城置戍 使王子直支爲質 以脩先世之好
<補> 이하 생략
百濟(백제)의 君臣(군신)들은 向背(향배)를 정하지 못하였다. 高麗王(고구려왕) 談德(담덕)은 병사를 크게 일으켜, 百濟(백제)를 압박하였다. 우리(倭) 屯兵(둔병)은 백제를 도와 그들을 막았으나, 敗績(패적)하였다. 談德(담덕)은 즉시 취한 땅을 收孚(수부)하고, 돌아갔다. 이에 襲津彦(습진언)등은 枕彌多禮(침미다례) 및 峴南(현남) 支侵(지침) 谷那(곡나)를 분할하였고, 여러 성들은 戍(수)를 설치하였다. 왕자 直支(직지)로 하여금 人質(인질)을 삼고,  先世(선세)의 우호를 닦았다.


일본서기 応神天皇 八年(丁酉 二七七)三月

八年 春三月。百濟人來朝。〈百濟記云。阿花王立旡禮於貴國。故奪我枕彌多禮。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是以遣王子直支于天朝。以脩先王之好也。〉
응신천황 8년 (AD396년) 봄 3월, 百濟人이 來朝하였다. (百濟記가 말하길, 阿花王이 즉위하여, 貴國에게 무례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枕彌多禮 및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이 때문에, 王子 直支를 天朝에게 보내어서, 先王의 우호를 닦았다.)

*아신왕 즉위= 391년
*277년 + 119년= 396년

백제본기 아신왕 6년 397년
六年 夏五月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秋七月 大閱於漢水之南
6년(397) 여름 5월, 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太子(태자) 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냈다. 가을 7월,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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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君臣向背未定  이 부분을 직역을 하면,
= 백제 군신들의 向背(향배)는 정해지지 않았다.

아신왕이 왕이 되자, 고구려에 대해 강경정책을 펼치죠.
이에 백제의 신하들은 왕에 정책에 반발했을 가능성도 있고.. 왜의 내정간섭이 늘어 날까 봐.. 갈팡질팡, 조마조마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 阿花王이 즉위하여, 貴國에게 무례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枕彌多禮 및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392년~ 396년 사이에 백제 아신왕은 枕彌多禮,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음.
396년 고구려의 침입. (백제 58성 습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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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屯兵援百濟拒之 敗績 談德卽收孚取地 以還 於是襲津彦等 割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 諸城置戍
우리(倭) 屯兵(둔병)은 百濟(백제)를 도와 그들을 막았으나, 敗績(패적)하였다. 談德(담덕)은 즉시 취한 땅을 收孚(수부)하고, 돌아갔다. 이에 襲津彦(습진언)등은 枕彌多禮(침미다례) 및 峴南(현남) 支侵(지침) 谷那(곡나)를 분할하였고, 여러 성들은 戍(수)를 설치하였다.


*割= (3)[동사] 분할하다. 할양하다. 인도(引渡)하다.
(3) 빼앗다. 나누어 일부분을 빼앗음.
    [예문] 然後王可以多割地〈戰國策〉
    [예문] 割耕.

割은 분할하다는 의미속에 '빼앗다'의 뜻이 들어가 있죠. 그러니.. 割= 빼앗았다. 로 해석해야 할겁니다.

일본서기에서 왜는 枕彌多禮(침미다례) 및 峴南(현남) 支侵(지침) 谷那(곡나)을 백제에게 빼앗겼다라고 했으니까..

이에 왜는 枕彌多禮(침미다례)을 되찾는 작전을 펼치죠.

이에 습진언은 군사력을 발동하여 다시 枕彌多禮,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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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德卽收孚取地 以還
=담덕은 즉시 취한 땅을 收孚(수부)하고, 돌아 갔다.
=담덕은 즉시 收孚(수부)하고 땅을 취하고, 돌아 갔다.
=담덕은 즉시 收孚(수부)하고 땅을 취하고, 돌려 주었다.

*孚
1.  
(1) 미쁘다. 참됨.
    [예문] 萬邦作孚〈詩經〉
(2) 껍질. 【通】.
    [예문] 孚甲.
(3) 알을 까다. 부화(孵化)함.
(4) 붙이다. 【通】附 付.
    [예문] 天旣孚命正厥德〈書經〉
2. 기르다. 자람. 【通】孵.
    [예문] 孚育.
3. 빛나다. 옥(玉)이 빛나는 모양.
    [예문] 孚尹旁達〈禮記〉

孚 (4) 붙이다. 【通】附, 付.

孚= 附, 付

收孚(수부)의 뜻을 정확히 모르겠군요.

위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광개토왕의 정책이 들어납니다.

收孚(수부)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396년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략했을 때, 그 마무리를 어떻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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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襲津彦等 割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 諸城置戍
이에 襲津彦(습진언)등은 枕彌多禮(침미다례) 및 峴南(현남) 支侵(지침) 谷那(곡나)를 분할하였고, 여러 성들은 戍(수)를 설치하였다.

짐작컨데 백제가 396년에 고구려의 침입을 당하자... 그 틈을 타서 왜가 枕彌多禮(침미다례)를 다시 빼앗은 걸로 보입니다.

백제본기 아신왕 392년
阿莘王 或云阿芳 枕流王之元子 初生於漢城別宮 神光炤夜 及壯志氣豪邁 好鷹馬 王薨時 年少 故叔父辰斯繼位 八年薨 卽位
아신왕(阿莘王)<혹은 아방(阿芳)이라고도 하였다.>은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처음 한성(漢城)의 별궁(別宮)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에 비치었다. 장성함에 뜻과 기개가 빼어났으며, 매 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했다. 왕이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진사가 왕위를 이었는데 8년에 죽자 즉위하였다.

 

391년~ 396년. 아신왕이 등극하자 마자, 왜에 대해 강경 정책을 폄.
백제 아신왕은 枕彌多禮,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음.
이에 습진언은 군사력을 발동하여 다시 枕彌多禮,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을 빼앗음.

영락6년 고구려가 백제를 침략하던 이전 시기에 백제는 枕彌多禮, 峴南, 支侵, 谷那, 東韓의 땅에 영향력을 행사했단 말인 듯 싶은데..

391년, 아신왕이 등극하자마자.. 강경정책을 구사했다는 말.
(백제의 군신들의 向背(향배)는 정해지지 않았다) 아신왕의 대외정책에 대해 신하들은 혼란에 빠졌을 터였고..

396년 고구려의 침입. (58성 습취)

397년 왜인들의 백제에 대한 영향력 행사 증대.

399년 광개토왕의 5만 군대 남하. 임나가 전쟁에 휩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