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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서

라디오에요 2010. 5. 26. 07:51

《진겁기(塵劫記)》는 길전씨(吉田氏)가 지었다.

《신고금집(新古今集)》·《신칙찬집(新勅撰集)》은 등정가(藤正家)가 지었다.

《속고금집(續古今集)》·《속후찬집(續後撰集)》은 등위가(藤爲家)가 지었다.

《신속고금집(新續古今集)》은 등아세(藤雅世)가 지었다.

《만엽화가집(萬葉和歌集)》은 죽취옹(竹取翁)이 지었다.

《원씨물어(源氏物語)》는 자식부(紫式部)가 지었다.

《나산문집(羅山文集)》은 임도춘(林道春)이 지었다.

《태평기(太平記)》는 현혜(玄惠)가 지었다.

《원형석서(元亨釋書)》는 호관(虎關)이 지었다.

《도예편(桃?編)》은 도종(道宗)이 지었다.

《천하백(天下白)》은 칠통 거사(漆桶居士)가 지었다.

《경국집(經國集)》은 도봉안세(島峯安世)가 지었다.

《부상략기(扶桑略記)》는 황원(皇圓)이 지었다.

《오의초(奧儀抄)》는 청보(淸輔)가 지었다.

《낭영집(朗詠集)》은 공임 경(公任卿)이 지었다. 《제경요문(諸經要文)》은 친란(親鸞)이 지었다. 《선택집(選擇集)》은 원공(源空)이 지었다.《교행신증(敎行信證)》은 친란이 지었다.《모경집(慕京集)》은 원도관(源道灌)이 지었다.

《미타경주기(彌?經注記)》·《만타라초(曼?羅抄)》는 유예(酉譽)가 지었다.

《정훈(庭訓)》은 현혜(玄惠)가 지었다. 《안국론(安國論)》은 일련(日蓮)이 지었다.

 《갑양군감(甲陽軍鑑)》은 고판탄정(高坂彈正)이 지었다.

《법화경주(法華經注)》는 최징(最澄)이 지었다.

《연심장(硏心章)》은 호명(護命)이 지었다.

《십주심론(十住心論)》은 공해(空海)가 지었다.

《금광명경주(金光明經注)》·《인왕경주(仁王經注)》·《무량의경주(無量義經注)》는 최징이 지었다.

《천태의집(天台義集)》은 의진(義眞)이 지었다. 《일승요결(一乘要결)》·《아미타경소(阿彌?經疏)》·《대승대구사초(大乘對俱舍抄)》·《천태종이십칠의문(天台宗二十七疑問)》은 혜심(惠心)이 지었다. 《가문란기(嘉文亂記)》는 수수광신(垂水廣信)이 지었다.

《도연초(徒然草)》는 겸호(兼好)가 지었다. 《광석류의(廣釋流義)》는 우다왜황(宇多倭皇)이 지었다.

《거백집(擧白集)》은 등준(?俊)이 지었다. 《대실담장(大悉曇章)》은 안연(安然)이 지었다. 《화전초(花傳抄)》는 혜자(惠慈)가 지었다. 《소권물대권물비전초(小卷物大卷物비傳抄)》는 혜호(惠好)가 지었다. 《보물집(寶物集)》은 평태뢰(平泰賴)가 지었다. 《광운집(狂雲集)》은 종순(宗純)이 지었다. 《귀명본원초(歸命本願抄)》·《서요초(西要抄)》·《왕생지요결(往生至要訣)》은 증현(證賢)이 지었다. 《관경소기(觀經疏記)》는 원공(圓空)이 지었다. 《우독초(愚禿抄)》·《문류취초(文類聚抄)》는 친란(親鸞)이 지었다. 《입정치국론(立正治國論)》은 일친(日親)이 지었다.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通緣起)》는 응연 법사(凝然法師)가 지었다. 《율령(律令)》은 담해 공(淡海公)이 지었다. 《정토원류장(淨土源流章)》은 응연 법사가 지었다. 《성필연기(聖筆緣起)》는 관 승상(菅丞相)이 지었다. 《제경주석(諸經注釋)》은 상등(常騰)이 지었다. 《무명초(無明抄)》는 장명(長明)이 지었다. 《보련화사연기(寶蓮華寺緣起)》는 의교(義敎)가 지었다. 《초견집(蕉堅集)》·《초견어록(蕉堅語錄)》은 중진(中津)이 지었다. 《민부성례(民部省禮)》는 청마려(淸麻呂)가 지었다. 《아초고(峨草稿)》는 월담 화상(月潭和尙)이 지었다. 《승보전(僧寶傳)》은 고천(高泉)이 지었다. 《사서소림(四書疏林)》은 죽 전성직(竹田誠直)이 지었다. 《동자문(童子問)》·《논맹고의(論孟古義)》·《논맹자의(論孟字義)》는 이등유정(伊藤維禎)이 지었다. 《조래집(?徠集)》·《논어징(論語徵)》은 물부쌍백(物部雙柏)이 지었다. 《화한명수(和漢名數)》는 패원독신(貝原篤信)이 지었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는 사도상순(寺島尙順)이 지었다.

찬서(纂書)한 사람을 알 수 없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변색립성(辨色立成)》·

《평가물어(平家物語)》·

《정류리저문집(淨琉璃著聞集)》·

《공사근원(公事根源)》·

《기이잡담(奇異雜談)》·

《회풍조(懷風藻)》·

《고금왜가집(古今倭歌集)》·

《작자부? ?作者部類)》·

《성씨록(姓氏錄)》

·《이세물어(伊勢物語)》·

《왜한군기(倭漢軍記)》·

《서궁기(西宮記)》·

《기파만병(耆婆萬病)》·

《원천목집(圓天木集)》·

《침쌍지(枕雙紙)》·

《양재집(良材集)》·

《청소납언 (淸少納言)》·

《본조식감(本朝食鑑)》·

《성황본기(聖皇本紀)》·

《곡향집(谷響集)》·

《세풍기(世風記)》

·《세언물어(世彦物語)》·

《청우재집(聽雨齋集)》·

《강가차제(江家次第)》·

《사계물어(四季物語)》·

《적 막초(寂寞草)》·

《군기제집(群忌際集)》·

《보적사연기(寶積落寺?》·

《방각초(方角抄)》·

《신사계몽(神社啓蒙)》·

《풍토기(風土記)》·

《제왕편년기(帝王編年紀)》·

《일궁기(一宮記)》

·《벽암집(碧岩集)》·

《& lt;B style="COLOR: black; BACKGROUND-COLOR: #ffff66">신선전(神仙傳)》·《직원초(職原抄)》·

《대전대쌍지(大全大雙紙)》·

《의초륙첩(義楚六帖)》·

《오봉집(五鳳集)》·

《유취국사(類聚國史)》·

《본조문수(本朝文粹)》·

《겸창지(鎌倉志)》·

《육오화기( 陸奧話記)》·

《인운어초(人雲御抄)》·
《북조구대기(北條九代記)》·

《진총물어(塵塚物語)》·

《회중집(懷中集)》·

《원평성쇠기(源平盛衰記)》·

《동감(東鑑 아즈미가가미[吾妻鏡]와 같은 책)》·

《오주후삼년기(奧州後三年記)》

·《신계도연기략(神系圖緣起略)》

·《대화본기(大和本起)》·

《애낭초(埃囊抄)》·

《팔대동자궤(八大童子軌)》·

《겸창대초자(鎌倉大草子)》·

《법안정하전(法眼淨賀傳)》·

《과아 집(瓜雅集)》·

《방장기(方丈記)》·

《지증대?》·

《복부가설(卜部家說)》

·《원응선사어록(圓應禪師語錄)》

·《안락외기(安樂外記)》·

《만대집(萬代集)》·

《대신궁식(大神宮式)》

·《신명략기(神名略記)》·

《신명장(神 名帳)》

·《의식장(儀式帳)》·

《하해초(河海抄)》

·《춘우집(春雨集)》

·《송하집(松下集)》·

《직원령(職員令)》·

《왕년대기(王年代紀)》·

《이수기(二水記)》·

《준우회사(駿牛繪詞)》·

《사세집(辭世集)》·

《인군집(? 拮免?》·

《기경(?經)》·

《축파집(筑波集)》·

《견축파집(犬筑波集)》·

《과거장(過去帳)》·

《신대권(神代卷)》·

《성령집(性靈集)》·

《죽취물어(竹取物語)》·

《주길구기(住吉舊記)》·

《구호광언(鉤狐狂言)》

·《지명? ?持名抄)》

·《웅야어행기(熊野御行記)》

·《웅야왕자기(熊野王子記)》

·《기관지집(紀貫之集)》

·《속고사담(續古事談)》·

《정사략(政事略)》·

《봉상기(峯相記)》·

《이십이사주식(二十二社注式)》

·《금옥집(金玉集)》·

 《옥엽집(玉葉集)》·

《동재수필(東齋隨筆)》·

《명옥집(明玉集)》·

《찬집초(撰集抄)》·

《십훈초(十訓抄)》·

《사설하학집(社說下學集)》·

《건원이년기(乾元二年記)》·

《원씨옥갈권(源氏玉葛卷)》·

《육장(六狀)》·

《부상 문선(搏桑文選)》·

《무인병술책(武刃兵術冊)》·

《수중초(袖中抄)》·

《훈열집(訓閱集)》·

《제신기(諸神記)》·

《명법요기(名法要記)》·

《정통기(正統紀)》·

《백련초(百練抄)》.

격식(格式)에 관한 서적은 홍인격(弘仁格)이니 홍인식(弘仁式)이니 정관격(貞觀格)이니 정관식(貞觀式)이니 연희격(延喜格)이니 연희식(延喜式)이니 한다. 21대의 화가집(和歌集)은 모두 21종(種)인데, 다 일본의 가사(歌詞)를 적은 것이다. 그 밖의 서적은 임진년 조선에 입구(入寇)하여 많이 약탈해다가 되박은 것들이다.

왜자(倭字)

길비(吉備) 가 스스로 왜자를 만들어서 통용하였는데, 새로 만든 것도 있고, 중국에서 쓰는 것인데 뜻이 다른 것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
이려파(以呂波 이로하) 47자

본디 가사(歌詞)이다. 이(以 : い)부터 오[遠 : を]까지 12자는 호명 승정(護命僧正) 이 지었고, 와[和 : わ]부터 스[寸 : す]까지 35자는 홍법 대사(弘法大師)가 이어 지었다. 대개 범자(梵字)의 12마다(十二摩多) 와 35체(體)의 문자를 근거하여 47자로 통합한 것인데, 읽기는 노래처럼 하며, 이 나라의 모든 언어와 음성의 반절(反切)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 공해(空海)가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 47자는 다음과 같다.

い : 이[以 以자의 초서체(草書體)를 간략하게 한 것. 이하 모두 같음]
ろ : 로[呂]
は : 하[波 음이 변하여 ‘와’로도 읽음]
に : 니[仁]
ほ : 호[保 ‘오’로도 읽음]
へ : 헤[部 ‘에’로도 읽음]
と : 도[止]
ち : 지[知]
り : 리[利]
ぬ : 누[奴]
る : 루[留]
を : 오[遠 본디 ‘워’와 비슷한 음이었음] わ : 와[和]
か : 가[加]
よ : 요[與]
た : 다[太]
れ : 레[禮]
そ : 소[曾 이 가사에서는 ‘조’에 가까운 음으로 읽음]
つ : 쓰[川]
ね : 네[네]
な : 나[奈]
ら : 라[良]
む : 무[武]
う : 우[宇]
ゐ : 이[爲 본디 ‘위’와 비슷한 음이었음]
の : 노[乃]
ぉ : 오[於]
く : 구[久]
や : 야[也]
ま : 마[末]
け : 게[計]
ふ : 후[不 ‘우’로도 읽음]
こ : 고[己]
に : 에[江]
て : 데[天]
あ : 아[安]
さ : 사[左]
き : 기[幾]
ゆ : 유[由]
め : 메[女]
み : 미[美]
し : 시[之 이 가사에서는 ‘지’로 읽음]
ゑ : 에[惠 본디 ‘예’와 비슷한 음이었음]
ひ : 히[比 ‘이’로도 읽음]
も : 모[毛]
せ : 세[世]
す : 스[寸 이 가사에서는 ‘즈’에 가까운 음으로 읽음]*

편가문(片假文 가다까나[片假名])

글자의 반쪽으로 만들었고, 만든 사람은 알 수 없는데, 길비(吉備)가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이려파(以呂波) 글자와 이 글자를 함께 써서 말을 하고 뜻을 통하는데, 나라 안의 남녀·상하가 모두 다 안다. 편가문은 다음과 같다.

イ : 이[伊]
ロ : 로[呂]
ハ : 하[半 원 글자를 팔(八)로 잡기도 함]
ニ : 니[仁]
ホ : 호[保]
ヘ : 헤[部 우부방의 초서 약체)
ト : 도[止]
チ : 지[千]
リ : 리[利]
ヌ : 누[奴]
ル : 루[流 마지막 두 획을 땀]
ヲ : 오[乎 처음의 세 획을 땀]
ワ : 와[和 口의 마지막 획을 제외한 두 획을 땀]
ヵ : 가[加]
ヨ : 요[與 오른쪽 위 모퉁이의 세 획을 땀]
タ : 다[多]
レ : 레[禮]
ン : 소[曾]
ツ : 쓰[川]
ネ : 네[子]
ナ : 나[奈]
ラ : 라[良 상단의 두 획을 땀]
ム : 무[牟]
ウ : 우[宇]
井 : 이[井]
ノ : 노[乃]
オ : 오[於]
ク : 구[久]
ヤ : 야[也]
マ : 마[末 위의 가로 그은 두 획을 흘려 붙인 것]
ヶ : 게[介]
フ : 후[不]
コ : 고[己]
エ : 에[江]
テ : 데[天]
ア : 아[阿]
サ : 사[薩 원 글자를 산(散)으로 잡기도 함]
キ : 기[幾 이 글자의 초서체에서 땀]
ユ : 유[弓 유(由)자의 초서체에서 딴 것으로 잡기도 함]
メ : 메[女]
ミ : 미[三]
シ : 시[之 초서체에서 땀]
ヱ : 에[慧 가운데의 초서 약체)
ヒ : 히[比]
モ : 모[毛]
セ : 세[世 초서의 약체]
ス : 스[須 오른쪽 ‘頁’의 초서 약체]

한자음(漢字音)

신대(神代)의 문자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대개 수인(垂仁)까지는 일본희명(日本姬命)에게 의탁하여 신칙(神勅)이 있으면 입으로 전하였으며, 응신(應神) 때에 이르러 백제의 문인(文人) 왕인(王仁)이 오고서야 비로소 한자(漢字)를 썼다. 오음(吳音)·한음(漢音)으로 말하면, 김예신(金禮信)이 대마도(對馬島)에 와서 머무르면서 오음을 전하였고, 표 신공(表信公)이 축전(筑前)에 와서 한음을 전하였는데, 이것을 당음(唐音) 이라 한다. 승화(承和 834~847) 말년에 정법사(正法師)가 오고 원경(元慶 877~884) 초년에 총법사(聰法師)가 왔는데, 모두 오음·한음을 가르쳤다. 유서(儒書)에서는 한음을 많이 쓰고, 불경(佛經)에서는 오음을 많이 쓴다. 대저 왜인의 어음은 웃니[上齒]와 위 입술에 엇걸려서 나오는데, 첫소리는 가볍고 맑으며 끝소리는 흩어지고 올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