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과객
잘 읽었습니다.
혹시 위의 글이 역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면 즐거이 읽을 수가 있겠습니다만,
만약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하려고 위의 글을 게시하셨다면 매우 곤란한 문제가 생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응신천왕이 임나의 왕이었다라는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백제천왕이 응신천왕이 되었다 - 김산호
백제 근구수왕이 응신천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 구자일
비류백제왕이 고구려 공격으로 망명해 응신천왕이 되었다. - 김성호
삼한백제왕이 응신천왕이 되었다. - 김상
이제 임나가라왕이 응신천황이 되었다라고 하는 설이 추가되는 겁니까?
이런 주장은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을뿐만 아니라, 저급한 민족주의에 기대어 재미보려는 자들이나 할 소리인데 왜 무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물론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사료와도 충돌하고,
고고자료와도 충돌하죠....
<<<백제와의 연합한 후 전쟁에 패배한 任那加羅의 왕은 뱃길로 일본열도를 향해 도망을 간다. 그는 그 곳에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니, 그가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응신’이다.>>>
이 주장은 기존의 비류백제왕이나 삼한백제의 왕이 응신천황이 되었다는 설보다 더 문제가 많습니다.
년도를 한번 보죠.
응신3년에 진사왕이 죽고 아화(아신왕)가 등극합니다. 이 해가 392년입니다.
그럼 응신은 390년에 천왕이 됩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말하는 저 전쟁은 서기 400년의 전쟁입니다.
400년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본으로 달아나 나라를 세웠는데 그 설립연도가 390년이라면 산수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전지왕 죽는 기사에 바탕한다 해도 396년에 이미 등극했습니다.)
옛과객 (2010-06-30 23:50:05) | |
내물왕38년(393년) 왜병이 신라왕성을 5일간 포위합니다.
실성왕원년(402년) 왕자 미사흔을 일본에 인질로 보냅니다.
실성왕7년(408년) 왜가 대마도에 군영설치, 신라공격하려함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전을 보면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그대로 나옵니다.
<<倭遂遣兵 邏戍新羅境外 會高句麗來侵 幷擒殺倭邏人>>왜가 군사를 보내 신라국경밖을 순라케 하는데 고구려가 침략하여 왜병사를 모두 잡아 죽였다.....
삼국사기나 광개토대왕비문이나 다를 바는 없습니다.
모두 당시의 정황들이 비슷하게 적혀 있습니다.
단지 신라가 왜에 인질을 보낼 정도로 허약했고, 왜는 신라를 위협해 인질을 데려갈 정도로 강했음이 불쾌할 뿐이죠...
이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비역사적 주장을 하는 것은 비역사적 행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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