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056
その1行目のURLは、栗原薫さんの解説ですか?
これだと一世代だいたい28年のことを解説しており、
私のは25年位だったと思ったから、これに関しては
に不合理はまず無い。
この解説で綏靖、安寧、懿徳が兄弟であるとして、
系図を根拠に述べているようだが、一個人的の各々の
系図を信用するのはまだまだ早計だと思うべきだ。
唐松山もこれに似たことを主張して日本書紀の記述を
無視しているわけだが、ならば日本書紀の編者らも
兄弟で書くはずだろう。日本書紀はまず多数の原書の
総てを舎人親王らとその取り巻きの集団でそれらの
原書群を調べ抜いて父子としてるのだから、いくら
系図の各作者がそういう兄弟とかの図を書いていたと
しても、単に表見上兄弟としたほうが合理的に古代
朝廷の姿を編年でよく説明出来ると言っても、それに
乗じるのはいささか早計である。
日本書紀が父子となっていて各系図のほうが兄弟の
ようになっているとすれば、その奥には何らかの重大
な死角というか、盲点が存在して、そのような矛盾
が現出してしまったと考えるべきである。ではその
原因とは何なのか? おおまかに言うほかはないが、
やはり当時の暦法が通常の暦法ではない2倍年暦、
n倍年暦という非常に特殊な暦法を系図作成以前の
遠い過去の行使されていたことがこういう日本書紀と
各系図の内容に大きな違いが出てしまったと考え
るべきだ。
兄弟継承は二次的なもので、神武の次帝のころに
すでに兄弟継承をして一次的父子継承を神武崩御の
ころ放棄していたとすれば、今の今までの現代まで
皇統は継続せずに崩壊して、日本は中国の易姓革命の
ような国になっていたであろう。神武崩御以後長く
父子継承が続けられたからこそ、現代まで皇統が滅び
ずに残れたということだ。結論から言えば、当時に
まだ二次的選択の兄弟継承などは無い。だから栗原氏
の主張はうまく説明出来てるようで、実は間違いだと
観てよい。父子継承でよく説明出来る論が、どこか
に隠れて残っているはずだ。
No. 2056
그 1행째의 URL는, 쿠리하라 카오루씨의 해설입니까?
이것이라면 1세대 대체로 28년의 일을 해설하고 있어, 나의 것은 25년 정도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에 관해서는 自説에 불합리는 우선 없다.
이 해설로 수정, 안녕, 의덕이 형제이다고 하여, 계도를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개인적인 각각의 계도를 신용하는 것은 아직도 경솔한 생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唐松山도 이것을 닮은 것을 주장해 일본 서기의 기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지만, 된다면 일본 서기의 편자등도 형제로 쓸 것일 것이다. 일본 서기는 우선 다수의 원서의 총을 舎人親王등과 그 둘러쌈의 집단에서 그러한 원서군을 조사해 뽑고 부자로 하니까, 아무리 계도의 각 작자가 그러한 형제라든지의 도표를 그리고 있었다고 해도, 단지 표견상 형제로 하는 편이 합리적으로 고대 조정의 모습을 편년으로 잘 설명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 곱하는 것은 조금 경솔한 생각이다.
일본 서기가 부자가 되고 있어 각 계도 쪽이 형제와 같이 되어 있다고 하면, 그 안쪽에는 어떠한 중대한 死角이라고 하는지, 맹점이 존재하고, 그러한 모순이 출현해 버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원인이란 무엇인가? 대략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역시 당시의 역법이 통상의 역법이 아닌 2배년력, n배년력이라고 하는 매우 특수한 역법을 계도 작성 이전의 먼 과거의 행사되고 있었던 것이 이런 일본 서기와 각 계도의 내용에 큰 차이가 나와 버렸다고 생각해야 한다.
형제 계승은 2차적인 것으로, 神武의 次帝의 무렵에 벌써 형제 계승을 해 2차적 부자 계승을 神武 붕어의 무렵 放棄방폐하고 있었다고 하면, 지금의 지금까지의 현대까지 황통은 계속하지 않고 붕괴하고, 일본은 중국의 역성혁명과 같은 나라가 되어 아플 것이다. 神武 붕어이후 길게 부자 계승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현대까지 황통이 멸망하지 않고 남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결론으로부터 말하면, 당시에 아직 2차적 선택의 형제 계승 등은 없다. 그러니까 쿠리하라씨의 주장은 잘 설명 되어있는 것 같고, 실은 실수라고 봐도 좋다. 부자 계승으로 잘 설명 할 수 있는 론이, 어디엔가 숨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