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

逸聖尼師今(일성이사금) 아버지 尹公(윤공).

라디오에요 2015. 8. 2. 02:29

신라본기 일성이사금 머리기사

逸聖尼師今 儒理王之長子(或云日知葛文王之子) 妃朴氏支所禮王之女」

일성이사금은 유리왕의 장자(혹은 일지갈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이고, 비는 박씨이니 지소례왕의 딸이다.

 

신라본기에 따르면, 

유리이사금의 재위기간은 AD24년~AD57년이고, 일성이사금의 재위기간은 AD134년~AD154년이다.

유리이사금은 AD57년에 죽었는데, 아들인 일성이사금은 AD154년에 죽었다고 적혀 있어, 아버지가 죽은지 97년 후 아들이 죽었다고 적혀 있다.

 

이런 모순점 때문에 기존 연구자들은 일성이사금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였죠.

 

위의 기사에서 일성이사금의 왕비가 '支所禮(지소례)의 딸'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맞죠.

 

*支所禮(지소례)의 딸 = 只珍后(지진후).

상장돈장 67페이지를 보면은 일성이사금의 아버지는 尹公(윤공)으로 나와 있죠.

 

상장돈장 86페이지를 보면은

尹公(윤공)의 아버지는 南解王(남해왕)으로 되어 있습니다.

尹公(윤공)의 어머니는 火元(화원).즉, 일성이사금은 남해왕의 손자가 됩니다.


*南解王(남해왕) - 尹公(윤공) - 逸聖(일성)


尹公(윤공)의 부인이 6명이나 되는 걸 보면, 거의 왕에 준하는 권력을 가졌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왕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여러명의 왕비를 거느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사항이죠. 어떤 왕은 왕비가 1명만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왕은 여러 명의 왕비를 둘 수도 있고..
또한 부인중에 紇古(흘고)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紇古(흘고)는 탈해왕의 딸) 탈해왕의 비호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사이사금기 10년 기사에서

尹公希其夙成 名曰逸聖

 

이런 구절이 나오므로, 夙成(숙성) = 일찍 성숙해지다.

尹公(윤공)은 '아들이 빨리 성숙해져라'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婆娑尼師今記 10년. AD135년,

八月 五日 大豊大母伊利生生子于南山私宅 瑞光照耀 尹公希其夙成 名曰逸聖 大樹角干見而喜之曰 “我有孫矣”

8월 5일, 大豊大母(대풍대모) 伊利生(이리생)이 南山(남산) 私宅(사택)에서 아들을 낳았다. 상서로운 빛이 밝게 빛났다. 尹公(윤공)은 그가 夙成(숙성)하기를 희망하여, 逸聖(일성)이라 이름지었다. 大樹(대수) 角干(각간)이 보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손자가 생겼구나.” 라고 하였다.

 

*婆娑尼師今記 10년. AD135년, 8월 5일. 逸聖(일성)의 誕生(탄생).

 

 

저런 옛날책에서는 逸聖(일성)의 어머니를 伊刊生(이간생)이라고 적어 놨지만,

오타가 난 것이고, 逸聖(일성)의 어머니는 伊利生(이리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