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午 春正月 末曷餘衆古斗西文等 求救於北沃沮 得三千餘騎屯於菰丘之原 聚其散衆 與柴吉共謀作乱 上使漢素芬奴率水陸軍進擊 大破之 壬午(임오) (BC 39년) 봄 1월, 末曷(말갈)의 나머지 무리들인 古斗(고두)와 西文(서문)등은 북옥저에게 구원을 청하여 3천여 기병을 얻어 菰丘原(고구원)에서 진을 치고, 그 흩어진 무리들을 모아 柴吉(시길)과 공모를 하여 난리를 일으키니, 상은 한소와 분노로 하여금 수군과 육군을 이끌고 진격하게 하여, 말갈을 대파시켰다. 三月 ..... 與樂浪王柴吉定界 柴吉欲得奄東盖斯之地曰 "我本南沃沮也 願得沃沮故地" 上許之 3월.... 樂浪王 柴吉(시길)과 경계를 정하였다. 柴吉(시길)은 奄東의 盖斯의 땅을 가지고 싶어서 말하길 "저는 본래 南沃沮였습니다. 沃沮故地를 얻기를 원합니다." 상이 이를 허락하였다. 夏北沃沮末曷二千騎 渡河而南聲言報.... 여름 북옥저와 말갈 2천 기병이 河를 건너 남쪽으로...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加利, 星山 (0) | 2009.01.23 |
---|---|
삼국시대 (0) | 2009.01.23 |
正始三年碑(관구검 기공비) (0) | 2009.01.23 |
심당전서 말갈대신에 옥저 (0) | 2009.01.23 |
辰王不得自立爲王의 해석. (0) | 2009.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