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毋丘儉紀功碑
正始三年高句驪反」
督七牙門討句驪五」
復遺寇六年五月旋」
討寇將軍魏烏丸單于▨」
威寇將軍都亭侯」
行裨將軍領玄」
▨裨將軍」
[출전 :『中國內의 高句麗遺跡』(1994)]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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牙門將軍 七品官職
督에서 위쪽 오른쪽이 十이군요. 牙는 ㄷ+ㄱ+ㄱ 이렇게 붙어 있고..門은 확대해서 보니..門으로 보이는군요.
討寇將軍이 위서 명제기에 나온다는데.. 명제기는 삼국지 명제기를 말하겠죠.
三國誌 卷三 魏書三 明帝紀第三
討寇將軍이 안 나오네요. 이상하군요.
<삼국지>에서는 토구장군과 관련된 기록이 2개 보이네요.
<삼국지 위서> 무제 註
楊 秋 , 黃 初 中 遷 討 寇 將 軍
<삼국지 위서> 鄧艾전
賜 爵 關 內 侯 , 加 討 寇 將 軍 , 後 遷 城 陽 太 守
도독(都督) -
위문제(魏文帝) 때 각 주(州)의 군사와 자사(刺史)의 관원을 통활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한 관명이 아니라 산관(散官)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도독都督에 대한 설명.
관직명. 도독은 원래 후한 순제 말에 풍곤에게 지절로 양주에 속한 여러 군의 군사적인 업무를 감독하도록 한데서 시작되었다. 조조는 한의 승상으로 군사를 감독하였는데, 10군, 20군을 감독하게 되어 비로소 도독이란 명칭이 생겼다.
관구검기공비 [毌丘儉紀功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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