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초 장수대제기 16년
◎ 十六年 己巳 正月 上如卒本 尊東明聖皇為芻牟大帝 琉璃明皇為光明大帝 朱留神皇為大武神帝 國祖仙皇為神明仙帝 太祖上皇為太祖皇帝 三月 上如于慎墓 納于勤妻陰氏為宮人 四月 魏用崔浩伐柔然 訥祇築失堤 岸長二千百七十步 宋使入貢 徃濟 十月 毗有以觧須為上佐平 餘信死
○ 16년 己巳(기사, AD429년) 1월, 상은 卒本(졸본)으로 갔다. 東明聖皇(동명성황)을 추존하여 芻牟大帝(추모대제)로, 琉璃明皇(유리명황)을 光明大帝(광명대제)로, 朱留神皇(주류신황)을 大武神帝(대무신제)로, 國祖仙皇(국조선황)을 神明仙帝(신명선제)로, 太祖上皇(태조상황)을 太祖皇帝(태조황제)로 존호를 높였다. 3월 상이 于慎(우신)의 무덤에 갔다가, 于勤(우근)의 처 陰氏(음씨)를 맞이하여 宮人(궁인)으로 삼았다. 4월, 魏(위)나라는 崔浩(최호)를 등용하여 柔然(유연)을 쳤다. 訥祇(눌지)는 유실된 제방을 쌓았는데, 호(岸)의 길이가 2,710보였다. 宋(송)의 사신이 入貢(입공)하여 百濟(백제)로 갔다. 10월, 毗有(비유)가 觧須(해수)를 上佐平(상좌평)으로 삼았다. 餘信(여신)이 죽었다.
*여기서 본기신편열전과 차이가 납니다.
열전에서는 "국조왕= 宮" 으로 나옵니다.
*위 고구려사초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비판을 가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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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의 고구려방에 글이 올라 온 걸 보니..
"聖王이란 왕호가 추존일 경우 처음 쓰인 시기는 414년 이후 장수왕대이다......아마도 聖王이란 왕호을 추존했다면, 그 시기는 427년 평양천도 직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인용글이 올라 와 있네요.
정확한 글이군요.
삼국유사 요동성육왕탑조와 모두루묘지문, 중원고구려비를 통해 유추해 내었군요.
고구려사초를 봐야만 알 수 있는 사항을 학자들이 정확히 알아 내었군요.
놀랍습니다.
"장수 16년, 429년 왕들의 존호를 높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