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3년 BC17년 三年 秋七月 作離宮於鶻川 冬十月 王妃松氏薨 王更娶二女以繼室 一曰禾姬 鶻川人之女也 一曰雉姬 漢人之女也 二女爭寵 不相和 王於涼[주석5]谷造東西二宮 各置之 後王田於箕山 七日不返 二女爭鬪 禾姬罵雉姬曰 “汝漢家婢妾 何無禮之甚乎” 雉姬慙恨亡歸 王聞之 策馬追之 雉姬怒不還 王嘗息樹下 見黃鳥飛集 乃感而歌曰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3년(서기전 17) 가을 7월에 골천(鶻川)에 별궁(別宮)을 지었다.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왕은 다시 두 여자에게 장가들어 [이들을] 후처(後妻)로 삼았다. 하나는 화희(禾姬)인데 골천인의 딸이고, 또 하나는 치희(稚姬)인데 한(漢)나라 사람의 딸이다. 두 여자가 사랑 받으려고 서로 다투며 화목하지 않았으므로 왕은 양곡(凉谷)에 동·서 2궁을 지어 각각 살게 하였다. 그 후에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자 두 여자가 서로 다투었다. 화희가 치희를 꾸짖어 “너는 한나라 사람 집의 천한 첩으로 어찌 무례함이 심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치희가 부끄럽고 한스러워 도망쳐 돌아갔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좇아갔으나 치희는 성을 내며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어느날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黃鳥]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노래하였다. “훨훨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의지하는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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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략 유류왕 3년 BC17년 三年 甲辰 十月 溫公主難産而崩 春秋二十 上哀慟之 減食二日 十二月 阿爾后生女玄 3년 甲辰(갑진) (BC17년) 10월 溫公主(온공주)가 難産(난산)으로 죽었다. 나이 20살이였다. 상이 애통해 하며, 2일동안 식사를 줄였다. 12월 阿爾后(아이후)는 딸 玄(현)을 낳았다.
고구려사략 유류왕 26년 AD7년 二十六年 丁卯 四月 松后生解邑朱 溫祚移居漢山 帶素兄弟八人爭立 相殺 鱒公主生子眞 26년 丁卯(정묘) (AD7년) 4월 松后(송후)가 解邑朱(해읍주)를 낳았다. 溫祚(온조)가 漢山(한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帶素(대소)의 형제 여덟사람이 왕위를 다투면서 서로 죽였다. 鱒公主(준공주)가 아들 眞(진)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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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 3년에 10월 溫公主(온공주)가 죽은 것을 삼국사기는 松后(송후)가 죽었다고 조작을 하였다. 김부식은 왜 그랬을까요?
본기신편열전 52페이지. 松太后(송태후)는 다물후 송양의 딸로서, 아들 都助(도조), 解明(해명), 大武(대무) 및 公主(공주) 5명과 閔中(민중, 解邑朱)을 낳았고, 대무신왕 7년에 죽었다. 松后(송후)의 妹(매, 여동생) 두 사람은 역시 유리명왕의 后(후)가 되니, 두 松后(송후)를 부르기를, "小松后(소송후)" 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