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낙랑국
1, 國史云 赫居世三十年 樂浪人來投
국사가 전하길, "혁거세 30년, 낙랑인들이 來投하였다" 고 하였다.
2, 又第三弩禮王四年 高麗第三無恤王伐樂浪滅之 其國人與帶方[北帶方]投于羅
三十年 夏四月 己亥晦 日有食之 樂浪人將兵來侵 見邊人夜戶不扃 露積被野 相謂曰 此方民不相盜 可謂有道之國 吾儕潛師而襲之 無異於盜 得不愧乎 乃引還
赫居世 30년(BC28년, 癸巳)=> 赫居世 30년(AD37년, 丁酉) 7월.
여름 4월, 그믐 기해에 日食(일식)이 있었다. (7월) 樂浪人(낙랑인)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려다가 밤에도 집의 문을 잠그지 않고, 노적가리를 들에 그대로 쌓아둔 것을 보고는 서로 말하였다. "이 지방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지 않으니 도(道)가 있는 나라라 할 만하다. 우리들이 몰래 군사를 거느리고 습격한다면 도둑과 다름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4년, AD37년 => AD101년.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유리이사금 14년(AD37년)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3개의 기사는 AD37년에 일어난 것입니다.
혁거세 30년 BC28년을 긴녀이동시키면, AD37년이 되죠.
AD37년이면, 대무신왕 20년으로, <고구려본기>에 이렇게 나와 있죠.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20년. AD37년.
二十年 王襲樂浪 滅之
20년(AD37년, 丁酉)
(10月) 왕은 樂浪(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신라본기 혁거세 30년 기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군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쉽게 돌아갈 리가 없죠.
삼국유사는 樂浪人來投 라고 삼국사기 기사와는 다르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4년 기사는 AD37년 연도에 맞추어진 기사로서, 기년조정에 의해 AD101년이죠.
삼국유사 혁거세 30년에 등장하는 군사들이 바로 유리이사금 14년에 나오는 來投한 5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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