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ホツマツタエ(호츠마츠타에)- 2

라디오에요 2009. 10. 28. 05:50

http://hotsuma.gr.jp/aya/aya35.html

ホツマツタエ 人の巻 35アヤ

[目次] [英語] [仏語]



アメヒボコの来朝

 ミマキイリヒコ(崇神天皇)の御世のことです。

 君が新都をミズカキ宮に定めて39年目に、ヒボコなる外国人が初めて船に乗りハリマ(播磨)にやってきました。ハリマに一時停泊した後船出してアワジ(淡路)のシシアク村に至ります。

 君はオオトモヌシ、ナガオイチの両大臣を急ぎハリマに遣わして、はるばる遠国からやってきた理由を質問させます。アメヒボコの答えは、「私はシラギ(新羅)国王の王子です。名はアメヒボコと申します。国にある時、東海の日出ずる国には、神を崇めて正しい政(まつり)を執る聖(ひじり)の天皇(きみ)が居られ、国は美しく整って民も豊かに暮らしていると聞き、弟のチコに国を譲った後、敬愛する天皇(おおきみ)に服(まつら)うためやってきました。どうか私の願いを君にお伝え下さい」

 二人の使者が都に帰って、アメヒボコの話しを君に報告します。
 君は諸臣と議(はか)った後、アメヒボコに詔りし、「ハリマのイテサ(出浅)村とアワジ島のシシアワ(穴粟)村の二村を賄うから、汝の好むように暮らすが良い」と申されました。それを聞いたヒボコが恐れながら申すには、「もし私の我がままがお許しいただけるならば、まず先にこの美しい国土を巡り見てから後に、自分の住む土地を決めたいと思います」と、願い出ました。
 君のお許しを得たヒボコは、早速ウジ川(宇治川)を船で遡り、アワウミ(近江)のアナ(吾名)村にしばらく住んで、山紫水明の近江を訪ねて巡り、良質の陶土(とうど)に恵まれた鏡山の麓のハザマ谷に供や従者の陶人(とおじん)を居留させました。

 村人達は温かく異国の人達を迎え入れたので、ここがこの者達の安住の地となりました。
 アメヒボコは、後に彼等をこの地に残して一人旅を続け、ワカサ(若狭)の国に入り、西に転じてタジマ(但馬)に至り、この地でイズシマ・フトミミとゆう豪族の娘、マタオオ姫を娶りました。生まれた子の名をモロスケと名付け、モロスケはその子ヒナラギをもうけ、ヒナラギはキヨヒコをもうけ、キヨヒコの子がタジマモリです。後タマキ宮(垂仁天皇)三年、タジマモロスケ(但馬諸助)は臣(とみ)の位を賜わり昇殿しました。

 このアメヒボコが来朝の折り献上した宝物は、ハボソ玉、アシタカ玉、ウカガ玉、出石小刀(いずしこがたな)一口、出石矛(いずしほこ)一枚、日鏡(ひかがみ)一面、熊神籬(くまのひもろげ)一具、出浅太刀(いであさたち)一振りの併せて八種にのぼり、但馬社(やしろ)の蔵に納め祭られました。

 八十八年七月十日、イソサチ君の詔があり、
 「昔、シラギの王子ヒボコが来朝の時持参した宝物が但馬に納めてあると聞いているが、永い年月の経った今、なぜか急に見たくなった」と言って、ヒボコの曾孫キヨヒコに勅使を遣わしました。タジマに居たキヨヒコは急ぎ参上し宝物を奉りました。ハボソ、アシタカ、ウカガ王、出石小刀(いずしこがたな)、出石矛(いずしほこ)、日鏡(ひかがみ)熊の神籬(ひもろげ)一具、出浅(いでしあさ)の太刀(たち)、この八種の内、出石小刀だけはなぜか思い入れがあり、なんとか自分の元に残しておきたいとの思いにかられて、そっと袖の中に隠しておき、太刀だけを佩(は)いて昇殿しました。

 天皇はこの一件に気付かず、キヨヒコの早い対応をたいへん喜び、念願の宝物を興味深げに御覧になった後に、キヨヒコに御酒(みき)を賜わりました。杯の数を重ねているうちに、キヨヒコはついに気がゆるみ、酒を呑もうとした時、肌身に付けていた小刀がすべり落ちて見つかってしまいました。君は目ざとく見つけると、「それは何ぞ」と問いかけます。事ここに至っては特に大切な物とはいえ、これ以上隠しとうせず、潔く献上しました。君はまたいわく、「その宝は、身から離せないほど特別なものか」と話されました。いずれにしろ全ての宝物は君に奉られ、しっかりと宮中の蔵に納めました。後に蔵を開いてみると小刀が失われているのに気付き、君は再びキヨヒコを召して問いただされ、「もしや、失われた小刀がお前の元に帰っていないかね」

 キヨヒコが答えて申し上げるには、「昨年秋の黄昏時のことです。不思議にも小刀(こだち)が自然に帰ってきましたが、翌朝再び失せてしまいました」
 この話を聞いた君は衣を正して畏(かしこ)まり、二度とこの件に関して聞きませんでした。実はこの小刀は自ら淡路島に飛んで行き、土地の人々から神として崇め祭られていました。

 皇太子イソサチは、御年四十二才の春一月元旦、皇位を継承して即位しイクメイリヒコ(垂仁)天皇(あまきみ)となられました。君は生まれつき実直で、心は常に清く正しく秀でて、決して奢ることなく優しい性格でした。

 翌年春二月に、サホ姫を中宮に立てて、新しく都をマキムキ(纒向・まきむく)の地に遷し、タマキ宮と名付けました。
 十二月、サホ姫との間に生まれたホンヅワケの皇子は、なぜか生まれつき口をききませんでした。この年ミマナ(任那)王は、ソナカシチを使者に遣わしイクメイリヒコの初の御世を祝って貢ぎ物を献上しました。
 君は、ソナカシチに天盃を賜わり、ミマナ王には五色(いついろ)の数峯錦織(かずみねにしき)と紋綾織(もんあやおり)を百匹(ももは)を贈り物として賜わりました。又帰路は武勇に勝れた、名立たるシオノリヒコの記(しるし)の幟(のぼ)りを船に立てて進んだので、シラギ人の妨害も無く、無事に海路は開かれました。

 四年九月一日、皇后(きさき)の兄サホヒコが、サホ姫に突然こんな問いかけをしました。
 「妹よ、この兄と、お前の夫の天皇とどっちが好きかね」と。后(きさき)はつい、「兄です」と答えると、「お誂(あつら)え向きだ。今お前は色気で夫に仕えているが、色なんぞいずれ衰えて捨てられるがおち、この兄との仲は永遠さ。願わくば、我とお前が組んで天下をとれば、枕を高くして寝られ、いつまでも良い夢を見られるぞ。我がために天皇を殺してくれ」と言うや否や、紐刀(ひぼがたな)を懐から取り出して強引に授けました。

 この時、サボ姫は半ばたじろぎつつも、兄のこの恐ろしい企てを止めさそうと、必死に諌めますが、物にとりつかれた兄の狂った心根(こころね)をどうにも正せませんでした。自分の非力を悟った姫の心はわななき、罪の意識に苛(さいな)まれて、すでに諦めの境地をさまよっていました。放心して言われるままに紐刀(ひもがたな)を衣の袖中(そでうち)に隠し持ったその時から、兄の心を嘆き悲しみ、涙を流して思いとどまるよう哀願する暗い日々を重ねました。

 翌五年、緑に薫るみな月(六月)一日を迎えます。
 君は久方ぶりに御幸をされ、クメの高宮で皇后(きさき)の膝を枕に昼寝をしておられました。
 皇后はこの時、ふと、兄の思いを果たすのは今だと思ったとたんに、涙がとめどなく流れ出て、君の顔に落ち下りました。この時、君は夢からさめて、「今、私の夢に、錦色の小蛇(おろち)が首にまとわりつくと、急にサホ川の彼方から雨がふりだし、私の顔を濡らしたのは何のしるしだろうか」と、何も知らずにお尋ねになりました。皇后はもうこれ以上隠しとうせず、わっと泣き伏し転(まろ)びながら、兄の企みの一部始終を打ち明けました。

 「君の優しいお恵みにも背くこともできず、告げれば兄を滅ぼすことになり、もし告げざる時は、国を傾け大事となり、もう恐ろしくて悲しみのあまり、血の涙を忍びつつ日を重ねてまいりました。私を信じ切って膝枕でお休みの君に対して、狂人でもないのに、悪魔の企みに手を貸そうと思っただけでも、申し訳なくて涙を袖で拭こうとした時、君の顔に溢れ落ちて濡らしてしまいました。

 君の夢の答えは、まちがいなく兄の裏切りでございます。オロチはこれですと、紐小刀(ひぼがたな)を取り出し見せると、君は即座に詔して、近県に勢力を持つヤツナダにサホヒコを討ちとるよう命じて兵卒を差し向けました。
 一方サホヒコも、この一大事をすばやく察知して兵を集めると稲城(いなぎ)を築き、堅固に守ってなかなか降伏しません。戦いは一進一退を繰り返し、長期戦にもつれ込む状態です。皇后の心は間(はざま)にゆれて悲しみを増し、「私はたとえこの世に生きながらえたとしても、身内の兄一族が滅んでしまっては、何の生き甲斐がありましょう」と言って、皇子(みこ)を抱いて稲城に入れば、詔り、「皇后(きさき)と皇子(みこ)を出しべし」と、いえども出さず。

 将軍ヤツナダは最後の手段に打って出て、城に火を放ち火攻めにすると、炎の中から皇后が先ず皇子を乳母に抱かせて城を越え出て、君に申すことには、「兄の罪をなんとか逃れさそうと、私と我子は城に入りました。が、今では兄と私は共に罪があることを知りました。たとえ私が死んでも君の御恵(みめぐみ)は決して忘れません。どうか私の後見には、タニハチヌシの五人の女性を入内させてください」

 君のお許しが出るとまもなく、城は炎を吹き上げ崩れ落ちました。
 サホヒコ軍の兵卒が皆逃げ散った後に、サホヒコと皇后は炎の城中で焼け死にました。
 一件落着の後、君はヤツナダの功を褒め、賜う名は、タケヒムケヒコです。

 二十三年九月二日、詔り、「我が子ホンヅワケは、年すでに二十二才にもなって髭が生えているというのに、未だに子供のように泣きいざち、物も言わない。いったいこれは何故なのだ」
 諸臣は議(はか)って、ヤマト姫にホンズ皇子(みこ)が物を言うように、神に祈らせました。

 十月八日、君はホンズワケ皇子を供なって高殿に立たれ、秋の景色を楽しまれました。その時です。近くに侍るホンズワケが空を飛ぶ鵠(くぐい・白鳥)を指していわく、「これなにものや」と、尋ねました。
 君は驚きたいそう喜んで、「誰かこの鳥を取り得んや」と触れると、ユカワダナが、「臣(とみ)、これを取ってまいります」と進み出ました。君いわく、「もし鳥を得たらば、褒めてつかわす」と励ましました。

 ユカワダナは、鵠(くぐい)が飛び去った彼方を追い訪ねて、但馬路(たじま)を行き、出雲(いずも)に至り、ウヤエ(宇夜江)の海岸でやっと鳥を捕えて、十一月二日に帰京し、ホンズの皇子(みこ)に奉りました。 ホンズワケは楽しそうに鳥と遊び戯れて、自然に物を言うようになり、君はユカワを褒めて、トリトリベ(鳥取部)の姓名(かばね)を賜いました。

(垂仁天皇)
天鈴暦 六百八十九年 春正月(一月一日)
実名  イソサチ 年四十二歳
    イクメイリヒコ(活目入彦天皇)

 第十一代垂仁天皇(イクメイリヒコ・実名イソサチ)は即位二年目キサラギ(二月)に新都をマキムキ タマキミヤに遷都しました。
 御世七年目の事です。ある大臣が天皇に申し上げるには、「タエマノ・クエハヤ(当麻蹴速)という大怪力の者がいて、日頃得意気に語るには、「我は地金を延ばし、角を折る大力だ。」最近、特大のカナユミ(鉄弓)を造らせて得意になり、いつも寝物語に自慢して、「これを踏み張る我が力を見よ、世に我と力競べする勇士はおらんのか。このままいたずらに死にたくない」等とひたすら嘆いているそうです。これを聞いた天皇は早速臣下の者たちに詔りし、「クエハヤ(蹴速)と力競べする力持ちはおらんのか」

 すると一臣が進み出て言うには、「それは出雲の勇者ノミノスクネ(野見宿禰)です。」
 君は早速臣下のナガオイチに命じてノミノスクネを呼び寄せると、ノミノスクネも喜んで早々と、「明日力競べを決行」と神の法(のり)が下りました。急の事とてマキムキのスマイ(天皇お住まい)の里にハニワ(埴輪—土を盛って輪を作った土俵)を造り、タエマはキ(東)より、ノミはツ(西)に両人相立ち合い、お互い足を上げ蹴合えば、ノミが優勢でクエハヤの脇(わき)の骨を踏み砕き、又、腰を踏み潰し殺してしまいました。その時君は、団扇(うちわ)を上げて大音響でどよませば、大臣達も皆歓喜の声を上げてノミノスクネの勝利を祝福しました。

 ノミノスクネは褒賞にクエハヤのカナユミ(鉄弓)及びタエマ国の領地を賜り、同時にクエハヤの妻と家財もみな賜りましたが、嫡子にはめぐまれませんでした。ノミは勇士ユミトリ(弓取)と称えられ生涯を終えました。

語源

  • タエマノクエハヤ -タエマノケハヤ(現在)
  • スマイ(天皇の住まい)-相撲、角力
  • ハニワ(埴輪)-土俵
  • ウチワ -軍配団扇(相撲で、行司が勝った力士を指示する)
  • ユミトリ-弓取(相撲で勝者が賞として弓を受ける儀式)
  • 東(ヒガシ)西(ニシ)-相撲の取組前、力士は「東~○○(四股名)」、「西~△△」と呼び出され、土俵へ入る。また、興業物などで口上を述べるとき等に「東西、東西」と言う。
  • 脇 -「脇が甘い」相撲で、防御の姿勢がしっかりしていない。相手に付け込まれやすい、の意。


出典
 ホツマツタエ (国立公文書館蔵)
 秀真(ほつま)政傳紀 (和仁估安聰訳述)


 高畠 精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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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히보코의 와 아침

 미마키이리히코(스진 덴노)의 세입니다.

 너가 새 도읍을 미즈 감궁에 정해 39년째에, 히보코 되는 외국인이 처음으로 배를 타 하리마(하리마)에 왔습니다.하리마에 일시 정박한 후 출범해 아와지(아와지)의 사자 악 마을에 이릅니다.

 너는 오오트모누시, 나가오이치의 양대신을 급한 것 하리마에 보내고, 멀리 원국으로부터 온 이유를 질문시킵니다.아메히보코의 대답은, 「 나는 시라기(신라) 국왕의 왕자입니다.이름은 아메히보코라고 합니다.나라에 있을 때, 토카이의 일출 질질 끄는 나라에는, 신을 우러러봐 올바른 정(축제)을 맡는 성(히사리)의 천황(네)을 있을 수 있어 나라는 아름답게 갖추어져 백성도 풍부하게 살고 있다고 (들)물어, 남동생의 치코에 나라를 양보한 후, 경애 하는 천황(오키미)에 옷(기다리는들 ) 노래째 왔습니다.어떨까 나의 소원을 너에게 전해 주세요」

 두 명의 사자가 도에 돌아가고, 아메히보코의 이야기를 너에게 보고합니다.
 너는 제신과 의논(는인가) 후, 아메히보코에 조해, 「하리마의 이테사(출천) 마을과 아와지섬의 시시아와(혈속) 마을의 니무라를 조달하기 때문에, 이놈이 좋아하도록(듯이) 살지만 좋다」라고 말씀드려졌습니다.그것을 (들)물은 히보코가 무서워하면서 말씀드리려면 , 「만약 나의 우리 가 용서(허락)하실 수 있다면, 우선 먼저 이 아름다운 국토를 돌아 다녀 보고 나서 후에, 자신이 사는 토지를 결정하고 싶습니다 」(이)라고, 신청했습니다.
 너의 용서(허락)을 얻은 히보코는, 조속히 구더기강(우지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가, 아와우미(오오미)의 아나운서(오명) 마을로 해 장미구 살고, 산자수명의 오오미를 방문해 돌아 다녀, 양질의 도토(와 두릅)를 타고 난카가미야마의 산기슭의 하자마골짜기에 보조자나 종자의 도인(와 두려워하지 않아)을 거류 시켰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따뜻하게 이국의 사람들을 맞아들였으므로, 여기가 이 사람들 안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아메히보코는, 후에 그들을 이 땅에 남기고 홀로 여행을 계속해 와카사(와카사)의 나라에 들어가, 서쪽으로 변해 다지마(타지마)에 이르러, 이 땅에서 이즈 시마·후트미미와 하는 호족의 딸(아가씨), 마타오오공주를 장가갔습니다.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모로스케라고 이름 붙여 모로스케는 그 아이 히나라기를 벌어 히나라기는 키요히코를 벌어 키요히코의 아이가 타지마모리입니다.후 타마키궁(스이닌 덴노) 3년, 타지마모로스케(타지마제조)는 신(풍부해)의 정도를 받아 승전 했습니다.

 이 아메히보코가 와 아침의 때헌상 한 보물은, 하보소구슬, 아시타카구슬, 우카가구슬, 이즈시 창칼(있지 않고 해 오기 어려운) 한입, 이즈시창(있지 않고 시호개) 한 장, 일경(히인가가 봐) 일면, 웅신리(쿠마노히) 일구, 출천칼(있어로 아침들) 한모습의 아울러 8종에 올라, 타지마사(나 해라)의 창고에 납입해 제사 지내졌습니다.

 88년 7월10일, 이소사치군의 조가 있어,
 「옛날, 시라기의 왕자 히보코가 와 아침때 지참한 보물이 타지마에 납입해 있다고 (듣)묻고 있지만, 영원한 세월이 지난 지금, 왠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라고 하고, 히보코의 증손 키요히코에 칙사를 보냈습니다.다지마에 있던 키요히코는 급한 것 찾아 뵈어 보물을 드렸습니다.하보소, 아시타카, 우카가왕, 이즈시 창칼(있지 않고 해 오기 어려운), 이즈시창(있지 않고 시호개), 일경(히인가가 봐) 웅의 신리(히) 일구, 출천(있어로 해 아침)의 칼(들), 이 8종중, 이즈시 창칼만은 왠지 깊은 생각이 있어, 어떻게든 자신의 곁으로 남겨 두고 싶다는 마음에 휩싸이고, 살그머니 소매안에 숨겨 두어 칼만을 패(는) 있어 승전 했습니다.

 천황은 이 한 건을 깨닫지 않고, 키요히코의 빠른 대응을 매우 기쁨, 염원의 보물을 흥미심에 보신 후에, 키요히코에 술(봐 나무)을 받았습니다.잔의 수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에, 키요히코는 마침내 기분이 느슨해져, 술을 감추려고 했을 때, 피부 몸에 걸치고 있던 창칼이 미끄럼 떨어져서 발견되어 버렸습니다.너는 재빠르게 찾아내면,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 봅니다.일여기에 이르러 특히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더 이상 은폐와 없어지지 못하고, 맑게 헌상 했습니다.너는 또 사정, 「그 보물은, 몸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만큼 특별한 것인가」라고 이야기해졌습니다.어쨌건 간에 모든 보물은 너에게 받들어져 제대로 궁중의 창고에 납입했습니다.후에 창고를 열어 보면 창칼이 없어져 있는것을 깨달아, 너는 다시 키요히코를 소 해 추궁당해 「어쩌면, 없어진 창칼이 너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키요히코가 대답해 말씀드리려면 , 「작년 가을의 해질녁의 일입니다.이상하게도 창칼(나무숲)이 자연스럽게 돌아왔습니다만, 이튿날 아침 다시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너는 옷을 바로잡아 외(삼가 이만 줄입니다) , 두 번 다시 이 건에 관해서 (듣)묻지 않았습니다.실은 이 창칼은 스스로 아와지섬으로 날아 가, 토지의 사람들로부터 신으로서 우러러봐 제사 지내지고 있었습니다.

 황태자 이소사치는, 연 42세의 슌이치월 설날, 황위를 계승해 즉위 해 이크메이리히코(수 히토시) 천황(여승 너)이 되어졌습니다.너는 선천적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고, 마음은 항상 맑고 올바르게 뛰어나고, 결코 사치하는 일 없이 상냥한 성격이었습니다.

 다음 해봄2월에, 사호공주를 중궁에 세우고, 새롭게 도를 마킴키(마토이향·뿌려 벗긴다)의 땅에 옮겨, 타마키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12월, 사호공주와의 사이에 태어난 혼즈와케의 황태자는, 왠지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이 해미마나(임라) 왕은, 소나카시치를 사자에 보내 이크메이리히코의 첫 세를 축하해 공물을 헌상 했습니다.
 너는, 소나카시치에 하늘잔을 받아, 미마나왕에게는 오색(언제 있어라)의 수봉니시키오리(카즈미로 해 나무)와 문능직물(것능직)을 백 마리(모모는)를 선물로 해서 받았습니다.또 귀로는 무용에 우수한, 나다치인 시오노리히코의 기(표시)의 치() 를 배에 세워서 진행되었으므로, 시라기인의 방해도 없고, 무사하게 해로는 열렸습니다.

 4년 9월 1일, 황후(황후)의 형(오빠) 사호히코가, 사호공주에 돌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동생이야, 이 형(오빠)와 너의 남편의 천황과 어느 쪽을 좋아하는가」(이)라고.황후(황후)는 무심코, 「형(오빠)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조(아개등) 네방향이다.지금 너는 성적 매력으로 남편을 시중들고 있지만, 색 어째서 머지않아 쇠약해져 버려지지만 떨어져 이 형(오빠)와의 사이는 영원함.원원, 나와 너가 짜고 천하를 잡으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어 언제까지나 좋은 꿈을 꿀 수 있어.우리 위해(때문에) 천황을 죽여 줘」라고 하자 마자, 뉴도(어려운)를 품으로부터 꺼내 억지로 하사했습니다.

 이 때, 사보공주는 반 뒷걸음질치면서도, 형(오빠)의 이 무서운 기획을 멈추어 유혹하면, 필사적으로 충고합니다만, 물건에 사로 잡힌 형(오빠)가 미친 마음씨(마음씨)를 어떻게도 바로잡을 수 없었습니다.자신의 부진을 깨달은 공주의 마음은 함정없는, 죄의식에 가(차이인) 희귀라고, 벌써 체념의 경지를 헤매고 있었습니다.방심해 말해지는 대로 뉴도(끈이 선반)를 옷의 수중(소매 집)에 숨겨 가진 그 때부터, 형(오빠)의 마음을 한탄해 슬퍼해, 눈물을 흘려 단념하도록(듯이) 애원 하는 어두운 날들을 거듭했습니다.

 다음5년, 초록에 향기나는 모두월(6월) 1일을 맞이합니다.
 너는 히사카타상에 행차를 하셔 쿠메의 타카미야로 황후(황후)의 무릎을 베개에 낮잠을 자고 계셨습니다.
 황후는 이 때, 문득, 형(오빠)의 생각을 완수하는 것은 지금이라고 생각하자 마자, 눈물이와 목표 없게 흘러나오고, 너의 얼굴에 떨어져 나왔습니다.이 때, 너는 꿈으로부터 깨고, 「지금, 나의 꿈에, 금색 소뱀(큰 뱀)이 목와 깨어 붙으면, 갑자기 사호강의 저 쪽에서 비가 체이고, 나의 얼굴을 적신 것은 무슨 표시일까」라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질문이 되었습니다.황후는 이제 더이상 은폐와 없어지지 못하고, 와악 쓰러져 울어 전() 남자 히나 인형 무늬, 형(오빠)의 계획의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습니다.

 「너의 상냥한 베풀어에도 등질 수도 있지 않고, 고하면 형(오빠)를 멸하게 되어, 만약 고해 바구니시는, 나라를 기울여 대사가 되어, 이제(벌써) 무서워 슬픈 나머지, 피눈물을 참으면서 날을 거듭해왔습니다.나를 믿어 잘라 무릎 베개로 휴가의 너에 대해서, 광인도 아닌데, 악마의 계획에 손을 빌려 주려고 한 것만으로도, 미안해서 눈물을 소매로 닦으려고 했을 때, 너의 얼굴에 흘러넘쳐 떨어져 적셔 버렸습니다.

 너의 꿈의 대답은, 틀림없게 형(오빠)의 배반입니다.오로치는 이것이라면, 끈창칼(어려운)을 꺼내 보이면, 너는 즉석에서 조 하고, 근현에 세력을 가지는 야트나다에 사호히코를 토취하도록(듯이) 명하고 병졸을 보냈습니다.
 한편 사호히코도, 이 중대사를 재빠르게 찰지하고 군사를 모으면 이나기(이나기)를 쌓아 올려, 견고하게 지켜 좀처럼 항복하지 않습니다.싸움은 일진일퇴를 반복해, 장기전으로도 끌어들이는 상태입니다.황후의 마음은 사이(는 모습)에 흔들리고 슬픔을 더해, 「 나는 비록 이 세상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가족의 형(오빠) 일족이 멸망해 버려서는, 무슨 사는 보람이 있읍시다」라고 하고, 황태자(봐 개)를 안고 이나기에 들어가면, 조, 「황후(황후)와 황태자(봐 개)를 내밀기해」라고, 집들 내지 않고.

 장군 야트나다는 마지막 수단에 출마하고, 성에 불을 질러 화공으로 하면, 불길중에서 황후가 먼저 황태자를 유모로 안게 하고 성을 넘어 나오고, 너에게 말씀드리는 것에는, 「형(오빠)의 죄를 어떻게든 피해 유혹하면, 나와 아자는 죠에 들어왔습니다.하지만, 지금은 형(오빠)와 나는 모두 죄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비록 내가 죽어도 너의 혜(봐 은혜)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어떨까 나의 후견에는, 타니하치누시의 다섯 명의 여성을 입궁시켜 주세요」

 너의 용서(허락)이 나오면 곧, 성은 불길을 뿜어 올려 붕괴되었습니다.
 사호히코군의 병졸이 모두 도망쳐 진 후에, 사호히코와 황후는 불길의 성중으로 타 죽었습니다.
 일건낙착의 뒤, 너는 야트나다의 공을 칭찬해 주시는 이름은, 타케힘케히코입니다.

 23년 9월 이틀, 조, 「우리 아이 혼즈와케는, 해 벌써 22세나 되고 자가 나 있다는데, 아직도 아이와 같이 울어 , 물건도 말하지 않는다.도대체 이것은 왜다」
 제신은 의논(는인가)은, 야마토공주에 혼즈 황태자(봐 개)가 말을 하도록(듯이), 신에 기도하게 했습니다.

 10월8일, 너는 혼즈와케 황태자를 보조자 되고 타카도노로 떠나져 가을의 경치를 즐겨졌습니다.그 때입니다.근처에 사무라이혼즈와케가 하늘을 나는 고(공물 있어·백조)를 가리켜 사정, 「이것 굳이의나」라고, 물었습니다.
 너는 놀라 매우 기뻐하고, 「누군가 이 새를 취할 수 있는이나」라고 접하면, 유카와다나가, 「신(풍부해), 이것을 취해 가겠습니다」라고 진행되기 나왔습니다.너사정, 「만약 새를 얻는다면, 칭찬해 파견한다」라고 격려했습니다.

 유카와다나는, 고(공물 있어)가 날아가 버린 저 쪽을 쫓아 방문하고, 타지마로()를 가, 이즈모(이즈모)에 이르러, 우야에(우야강)의 해안에서 겨우 새를 잡고, 11월 이틀에 귀경해, 혼즈의 황태자(봐 개)에 받들었습니다.  혼즈와케는 즐거운 듯이 새와 놀고,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어, 너는 유카와를 칭찬하고, 트리트리베(톳토리부)의 성명(시체)을 주셨습니다.

(스이닌 덴노)
천령력6백 89년 봄 정월(1월 1일)
실명 이소사치 연 42세
    이크메이리히코(활목입언천황)

 제11대 스이닌 덴노(이크메이리히코·실명 이소사치)는 즉위2년째키사라기(2월)에 새 도읍을 마킴키 타마키미야에 천도 했습니다.
 세7년째의 일입니다.어느 대신이 천황에 말씀드리려면 , 「타에마노·쿠에하야(당마축속)라고 하는 대괴력의 사람이 있고, 평소 득의에 찬 얼굴에 말하려면 , 「나는 지금을 늘려, 아집을 버리는 큰힘이다.」최근, 특대의 카나유미(철궁)를 만들게 해 의기 양양해져, 언제나 네모노가타리에 자랑하고, 「이것을 밟아 치는 우리 힘을 봐서, 세상에 나와 힘비교 하는 용사는 있지 않는가.이대로 장난에 죽고 싶지 않다」등으로 오로지 한탄하고 있다고 합니다.이것을 (들)물은 천황은 조속히 신하의 사람 서에 조해, 「쿠에하야(축속)와 힘비교 하는 힘센 사람은 있지 않는가」

 그러자(면) 일신이 진행되기 나와 말하려면 , 「그것은 이즈모의 용사 노미노스크네(노미노스쿠네)입니다.」
 너는 조속히 신하의 나가오이치에 명하고 노미노스크네를 불러오면, 노미노스크네도 기뻐해 조속히와 「내일력 비교를 결행」이라고 신의 법(김)이 나왔습니다.급의 때문에 마킴키의 스마이(천황 댁)의 마을에 하니와(토용흙을 번창하고 고리를 만든 씨름판)를 만들어, 타에마는 키(동쪽)보다, 끌은 트(서쪽)에 두 사람상 격투해, 서로다리를 올려축 맞으면, 끌이 우세하고 쿠에하야의 겨드랑이(옆)의 뼈를 밟아 부수어, 또, 허리를 밟아 잡아 죽여 버렸습니다.그 때 군은, 부채(집안)를 올려 대음히비키, 대신들도 모두 환희가 소리를 높여 노미노스크네의 승리를 축복했습니다.

 노미노스크네는 포상에 쿠에하야의 카나유미(철궁) 및 타에마국의 영지를 받아, 동시에 쿠에하야의 아내와 가재도 모두 받았습니다만, 적자에게는 축복받지 않았습니다.끌은 용사 유미트리(궁취)라고 칭할 수 있는 생애를 끝냈습니다.

어원
  • 타에마노크에하야타에마노케하야(현재)
  • 스마이(천황의 거주지) 스모, 각력
  • 하니와(토용) 씨름판
  • 우치와 군배 부채(스모로, 스모의 심판이 이긴 역사를 지시한다)
  • 유미트리궁취(스모로 승자가 상으로 해서 활을 받는 의식)
  • 동(히가시) 서(니시) 스모의 대전전, 역사는 「동쪽 00(발명)」, 「서쪽△△」이라고 불려 가고 씨름판에 들어간다.또, 흥업물등에서 말을 말할 때 등에 「토우자이, 토우자이」라고 한다.
  • 협 「겨드랑이가 달다」스모로, 방어의 자세가 확실히 하고 있지 않다.상대에게 기입해져서 싼, 의 뜻.

출전
 호트마트타에 (국립 공문서관장)
 호즈마() 정전기 (와니고안총역술)


 타카하타 세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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