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

화랑세기 논란과는 별개로 갖게되는 두가지 의문 , 펌:해내리님.

라디오에요 2009. 12. 3. 18:28

만약 화랑세기가 위서일시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두가지 의문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선화공주의 실존여부 문제,

둘째, 김유신의 결혼 문제

 

첫번째로 얼마전 미륵사지 사리봉안기 발견으로 불거져나온 선화공주 실존여부 문제.

그러나 선화공주는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 오래전부터 사학계의 중론이었습니다.

 

첫째, 백제와 신라가 잦은 전쟁을 하던 시기에 정략결혼을 할 이유가 없고,

 

둘째, 서동설화가 존재했다면 그건 무왕보다는 백제 동성왕때의 혼인동맹이 근거가 되었을 가능성.....

 

그와같이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에 이미 오래전부터 사학계에서 깊은 회의를 가져오던 터에...요절복통할...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건이 발생한거죠.

바로 선화공주가 세웠다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기에서...정작 미륵사를 세운 사람이 사택적덕의 딸이란 기록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러니...이젠 되려 사학계가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지금까진 실존여부 자체를 의심해왔던 사학계가 거꾸로 선화공주 살리기에 나섰다...선화공주는 무왕의 여러왕비중 하나였을 것이라느니...미륵사지 석탑이 무왕 여러왕비들이 각기 나눠서...세운거라느니...심지어...사택왕후는 법화신앙을 숭상했고 선화왕비는 미륵신앙을 숭상했을 것이라느니... - 머 하여튼 해석도 가지가지다...-.-

 

헌데...이상하게 화랑세기엔 선화공주가 나오지 않는다.

 

선덕공주, 즉 선덕여왕과 천명공주의 사생활(?)에 대해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박창화씨가 -

만약 화랑세기가 위서라 가정한다면 - 왜 거기에 선화공주 이야긴 끼워넣을 생각을 못 했을까...

만약 화랑세기의 신빙성을 드높이기 위해서라면...오히려 억지로라도 그 유명한 서동설화와 선화공주 이야기는 끼워 넣었어야 할것 아닌가?

 

뭐...너무 길어지니까 안 썼는지...졸다 쓰다보니 못 썼는지...궁내성에서 일하다 지쳐 피곤해 귀차니즘이 생겨서 못썼는지...자초지종은 알 길 없지만 아무튼 결정적으로 화랑세기엔 선화공주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서가 아니라면...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를 필사한게 맞다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없으니까 없는 것 아닐까요. 화랑세기가 진서라면 김대문이 없는 공주 일부러 지어낼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화랑세기가 위서라면 박창화씨가 왜 선화공주 이야긴 추가(?)하지

않았는지...이것도 참 별도의 연구대상이다.

 

 

둘째, 김유신의 결혼문제

 

삼국사기엔 김춘추가 자신의 딸을 김유신에게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김유신의 나이가 자그마치 60세.

그리고 열전엔 김유신이 그 60에 결혼한 김춘추의 딸 지소와의 사이에 9남매를 낳았다고 되어 있다.

 

뭐 좋다...까짓거...김유신이 워낙 정력이 넘쳐나다보니...한 열댓살쯤 되었을

초영계 지소부인과 사이에 나이 79세 될때까지...9남매를 줄줄이 낳았을 수도 있다...

 

헌데 삼광,원술 나이가 너무 안 맞다.

열전엔 분명 삼광, 원술 기타 등등 9남매가 모두 김유신-지소 사이의 자녀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뭐 원솔이야 매소성전투 이때쯤 10대 후반이라 한다면...

삼국지연의에서만 봐도 능통, 관평등 10대 후반에 종전하는 장수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니...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장남 삼광의 경우...자그마치 10살 나이에 당나라에 뭔 숙위군장...그 정도급 벼슬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10살 나이에 중국 자금성 동문 경호팀장쯤 맡았다는 소리다...

머 명예직으로 볼수도 있지만...여하튼 그래도 너무 상식밖의 일 아닌가?

정말로 김유신이 60에 한 15살난 지소부인과 결혼해서 삼광, 원술등 9남매를 줄줄이 낳은걸까...

김유신 그 전엔 결혼을 한번도 하지 않은걸까 ?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뭐 액면 그대로 믿는 방법밖에 없고...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이미 그에 앞서...유신이 미실의 아들, 하종의 딸 보종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소생이 있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김유신이 60세에 김춘추 딸 지소와 결혼하기 이전에 이미 결혼한 사실이 있음이 분명히 나오는것 아닌가.

적어도 화랑세기 기록에 의하면..

 

만약 화랑세기가 위서라면...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김유신은 무려 60나이에 김춘추의 딸 지소공주와 결혼을 했고,

그후 두 사람 사이에 9남매를 낳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의 장남 삼광은 열살때 당나라로 가서 벼슬했다.

그리고 원술은 당나라와의 전투때 참전하게 되고...

 

만약 화랑세기가 위서라면...화랑세기 기록은 언급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이 의문점을 풀어야 한다.

 

첫째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설화...그리고 그와 관련된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왜 박창화의 창작품(?)인 화랑세기엔 등장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정말 김유신은 삼국사기 기록대로 나이 60에 김춘추의 딸 지소와 결혼 9남매를 낳았으며 그 전엔 단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 두가지 의문은 좀 풀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