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화 유고집中, 본기신편열전, 尙氏列傳(상씨열전)
己卯 與其兄岑率貊騎 掠玄菟嶺東六部
= 己卯(기묘, AD139년) (蕃(번)은) 그의 형 岑(잠)과 함께 貊(맥)의 기병을 이끌고, 玄菟(현도)와 嶺東六部(영동6부)를 노략하였다.
첫째 오빠, 尙岑(상잠)
둘째 오빠, 尙蕃(상번)
세째, 尙天花(상천화)
*현도군인지..낙랑군인지 모르지만.. 府(부)로 바뀌었다고 어디서 얼핏 본 것 같은데,, 여기서는 部(부)로 표시된게 이상합니다.
府(부) 대신 발음이 같으니까.. 部(부)로 표시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데, 영동7현에서 1개현이 빠져 달아 났을까요? 嶺東六部(영동6부)로 되었다는 건 분명 1개현이 어디로 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第七世 太祖皇帝紀(제7세 태조황제기) 28년, AD139년
二十八年 己卯 六月 西河太守尙岑與其弟蕃率貊騎 掠岺東都尉府珍寶而來 九月 岺東太守公孫玄來寇盖馬 敗去 穆度婁守西河 尙岑守安平(開原) 四月 盖馬獵漢山 而相北漢山城地 命有司始役 七月 羅霜菽 八月 末曷掠長岺 民去 十月 又來 天大雷 曷畏惧遁走
28년 己卯(기묘, AD139년) 6월, 西河太守(서하태수) 尙岑(상잠)은 그의 동생 蕃(번)과 함께 貊(맥)의 기병을 이끌고, 岺東都尉府(영동도위부)의 珍寶(진보)를 노략질하고 왔다. 9월, 岺東太守(영동태수) 公孫玄(공손현)은 盖馬(개마)를 침략하여 왔으나, 패하여 돌아갔다. 穆度婁(목도루)는 西河(서하)를 지켰고, 尙岑(상잠)은 安平(안평, 開原)을 지켰다.
*고구려사초에서는 岺東都尉府(영동도위부)라고 나와 있죠.
*岺東太守(영동태수) 公孫玄(공손현)은 자치통감에도 안 나오는 인물입니다.
어째거나.. 139년도에는 岺東都尉府(영동도위부)에 책임자가 있었다는거죠.
*盖馬(개마)는 고구려의 서쪽입니다. 추모경에 나오죠.
孝順皇帝下永和四年(己卯,公元一三九年)
春,正月,庚辰,逵等伏誅。事連弘農太守張鳳、安平相楊皓,皆坐死。辭所連染,延及在位大臣。商懼多侵枉,乃上疏曰:「《春秋》之義,功在元帥,罪止首惡。大獄一起,無辜者眾,死囚久系,纖微成大,非所以順迎和氣,平政成化也。宜早訖章,以止逮捕之煩。」帝納之,罪止坐者。二月,帝以商少子虎賁中郎將不疑為步兵校尉。商上書辭曰:「不疑童孺,猥處成人之位。昔晏平仲辭鄁殿以守其富,公儀休不受魚飧以定其位。臣雖不才,亦願固福祿於聖世!」上乃以不疑為侍中、奉車都尉。
三月,乙亥,京師地震。
燒當羌那離等復反;夏,四月,癸卯,護羌校尉馬賢討斬之,獲首虜千二百餘級。
戊午,赦天下。
五月,戊胡,封故濟北惠王壽子安為濟北王。
秋,八月,太原旱。
<자치통감 한기, 永和四年(영화4년), AD139년>
*尙岑(상잠)과 尙蕃(상번)이 노략질한 때가 6월달입니다.
자치통감 AD139년 기사에서는 6월 기사가 빠져 있죠.
아마도 노략질정도의 가벼운 침략정도라서 중국측 사서에서는 누락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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