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나라,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周나라는 상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燕나라
기원전 315년, 연왕 쾌(燕王 噲)는 재상인 자지(子之)를 총애하여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선양을 하였던 일을 예로 삼아 재상인 자지에게 선양을 하였고, 이로 인해 태자 평(太子平)과 장군 시피(市被)가 거병하여 연나라에 내전이 일어났다. 태자 평과 시피가 전사하고, 이 틈을 타고 다음 해에 제나라가 태자의 원군을 자칭해 군사를 일으켜 침공하였고,
기원전 313년에는 연왕을 자칭한 자지가 살해되고 연왕 쾌가 자살하였다.
기원전 312년, 한나라에 달아나 있던 공자 직(연왕 쾌의 서자)이 제나라의 속국이 되는 조건으로 연왕에 즉위하였는데 그가 연 소왕(昭王)이다. 소왕 때에 장수 진개(秦開)가 고조선(古朝鮮)을 침략하여 랴오닝성 만번한지역까지 영토을 확장하였고,
기원전 285년에는 장수 악의(樂毅)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제나라를 공격해 수도와 대부분 지역을 함락시켰다.
기원전 226년, 연왕 희(燕王喜)의 아들 태자 단(太子丹)은 위나라 장수 형가(荊軻)와 진개(秦開)의 손자 진무양(秦舞陽)을 진(秦)나라에 보내어 진 시황제(秦始皇帝) 암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연왕 희는 요서, 요동으로 도망쳤으나 진나라 군대에 포위되었다. 연왕 희는 아들 태자 단을 죽이고 그 목을 진 시황제에게 바치면서 선처을 구하지만 진 시황제는 연왕 희와 잔존 세력을 공격하여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위만(衛滿)의 입국 연대는 노관이 흉노로 망명한 해(서기전 195)와 비슷하나 그의 거병과 찬탈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사기(史記)』조선전(朝鮮傳)에는 이를 효혜고후시(孝惠高后時: 서기전 194∼서기전 180)라고 하였다. 대체로 이 사이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에서 원조 받은 병력과 물자로써 이웃의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소읍(小邑)을 쳐서 자기 지배하에 넣은 결과, 그 땅이 수천리에 달하였다. 위만이 죽고 손자 우거왕(右渠王)에 이르러서는 한나라와 대립하였으며,
서기전 108년에 한나라 무제(武帝)의 동방침략에 의해 위만조선은 멸망하였다.
<사기 자서(自序)>에는 “연나라 태자(太子) 단(丹)이 진(秦)에 쫓겨 요동으로 달아난 틈을 이용하여, 만(滿)은 그 유민들을 수습하여 해동으로 데리고 가서 진번(眞番) 등의 땅을 안정시키고 한(漢)나라 황실의 외번을 지키는 외신이 되었다.” 라고 하였다. 연(燕)나라 태자(太子) 단(丹)이 진(秦)에 쫓겨 요동으로 달아난 시기는 기원전 227년경 이었다. 이때 만(滿)은 연(燕)나라 유민들을 이끌고 진번(眞番)으로 간 것이다.
기원전 227년경 연(燕)나라가 진(秦)에 의해 패망할 당시 만(滿)은 연(燕)나라 유민들을 이끌고 진번(眞番)에 정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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