奈解紀(나해기) 十八年 七月 以骨正女紅帽爲后 沙飡孫光隨吳人米會入吳 18년(A.D.274) 7월 骨正(골정)의 딸 紅帽(홍모)를 후로 삼았다. 沙飡(사찬) 孫光(손광)이 오나라 사람 米會(미회)를 따라서 오나라로 들어갔다. 二十一年 三月 紅后生于老太子 21년(A.D.277) 3월 紅后(홍후)가 于老(우로)태자를 낳았다. *于老(우로)가 태어난 해는 277년 3월, 나해 21년이다. *紅后(홍후)= 紅帽(홍모)를 말한다. *于老(우로)의 아버지는 奈解(나해)이며, 어머니는 紅帽(홍모)이다. --------------------------------------------------------------------------- 助賁紀(조분기) 二年 五月 甘文反 以于老太子爲大將軍 率謁明等往討之 2년(A.D.293) 5월 甘文(감문)국이 반란을 일으켰다. 于老(우로)태자를 大將軍(대장군)으로 삼아 , 謁明(알명) 등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293- 277= 16+1= 17살, 17살에 대장군이 되다. 四年 七月 于老太子率雲良興文登 大破倭人于沙道 乘風縱火 焚其船楫 賊皆赴水死 4년(A.D.295) 7월 于老太子(우로태자)가 雲良(운량)과 興文(흥문)을 이끌고 沙道(사도)에서 왜인을 대파하였다.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그 배와 노를 태우니, 적들은 모두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295 - 277= 18 +1 = 19살. *縱 세로 종 (2) 놓다. 쏘다. 纵矢; 활용단어참조 纵火; 활용단어참조 *赴 다다를 부/갈 부 ㉠다다르다 ㉡향하여 가다 ㉢나아가다 ㉣달려가다 ㉤들어가다 ㉥넘어지다 ㉦알리다 ㉧부고하다(訃告--: 사람의 죽음을 알리다) 十五年 正月 于老太子伊伐飡兼知軍政 碧忠稟主 年綻十六 其母柿忠攝行事 15년(A.D.306) 1월 于老(우로)태자는 伊伐飡(이벌찬)과 軍政(군정)을 겸하여 맡았다. 碧忠(벽충)을 품주로 삼았다. 나이가 꽃피는 16살이었다. 그 어머니 柿忠(시충)이 정사를 攝行(섭행)하였다. *306 - 277= 29 +1 = 30살. *兼 겸할 겸, 1. 2 배의. 2. [동] 겸하다. 함께 지니다. 동시에 하다. *知 알 지, (4) [동사]【문어】 주관(主管)하다. 관장하다. 맡아보다. 知县; 활용단어참조 知客; 활용단어참조 十六年 十月 句麗入寇比烈長岺 于老率二路將軍出擊之 我軍不利退保馬頭柵 夜甚寒士卒戰慄 于老躬燒柴葉而分暖解裘被傷卒 群心感激咸願死 戰賊追襲大敗 我軍乘勝欲長驅 于老曰 “彼衆我寡 可保而不可侵” 敵聞之乃退 16년(A.D.307) 10월 고구려가 비열(比烈), 장령(長岺)을 침범하였다. 우로(于老)태자가 2로(二路) 장군을 이끌고 출격(出擊)하였다. 아군이 불리해지자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에 너무 추워 사졸들이 추위에 떨었다. 우로가 몸소 울짱의 나무와 낙엽을 나누어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갑옷을 벗어 다친 병사들을 덮어주었다. 무리들의 마음은 감격하여 모두 죽기를 원하였다. 적과 싸워 추습하여 대패시켰다. 아군이 승기를 타고 멀리 쫓아 갈려고 하자, 우로가 말하기를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지키기만 하면 침범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적들이 이를 듣고 곧 물러났다. *307 - 277= 30 +1 = 31살. *衆= 多, 많다. *寡= 少, 적다. -------------------------------------------------------------------------------- 沾解尼今紀(첨해니금기) 四年 四月 倭獻土物 其太子求婚 于老戱之 ‘虜汝王爲鹽奴矣 何可婚乎’ 使怒歸和絶 4년(A.D.313) 4월 왜가 토산물을 바치고, 그 太子(태자)가 구혼하였다. 于老(우로)가 그 사신을 희롱하며 "너의 왕을 사로잡아 鹽奴(염노)로 만들겠다. 어찌 혼사가 가능하느냐" 라고 하였다. 사신이 화가 나서 돌아가 화친이 끊어졌다. * 313- 277= 36 +1= 37살. * 癸酉(계유)= 313년. ---------------------------------------------------------------------------------- 味鄒尼今紀(미추니금기) 七年 金兎 二月 乙弗殂 子斯由立 是爲釗也 7년 金兎= 辛卯(신묘) 331년,2월 乙弗(을불)이 죽었다. 아들 斯由(사유)가 즉위하였다. 이는 釗(쇠)이다. (고구려본기 미천왕 32년 331년 三十二年 春二月 王薨 葬於美川之原 號曰美川王 32년(331년) 봄 2월 왕이 죽었다. 미천원에 장사를 지냈다. 호를 미천왕이라고 하였다.) *고구려사초도 2월달로 일치. 四月 倭使至鶴浦 請與元上太公相見 不肯入朝 先是于老戱謂倭使曰 早晩虜爾王爲爨奴婢 盖元上拂于尼今及阿后 視王后如奴婢 而輕侮之心偶發於倭使 倭使歸報其王 王怒命斬其使 更以他使來求見 浦吏知有匈計 而告勿見 于老曰 吾以一國之太公 豈畏小虜 遂單騎往之 倭責其侮辱 于老曰 戱言也 倭不信之 焚之而去 命舟師迢之 不得 命厚葬之 爵其幼子訖解 惑曰 于老勇而善將兵 然高尤好自矜 不得衆心 故悒 悒有反志 尼今之臣與倭使相通 而密謀制之云 恐有內訌 而外伐也 尼今親弔太公而慰命元 曰 “太公之子 吾當之子 太公之妻 吾當妻之” 命元泣曰 “自春不雨 中外行禱 妾與太公 將禱于山 夢見大火 而疑之 豈有如此匈事乎” 尼今曰 “皆朕不德之致也” 乃會群臣於南堂 親問政刑得失 曰 “政刑失則 禱雨無益 今太公遭變 天久不雨 寡人與爾百官 當受其罰” 尼今遂自撻 阿后聞之 親臨止之 命末仇康檍日骨乞淑連音 出五道暗祭 理方得失 問民疾苦 時阿后與乞淑嬖臣好山浸淫 連音妻蘭石與后嬖裙白歡好如夫婦 良夫曰 “上好淫下 則天不雨” 尼今欲自責者使后欲反省 而反命乞淑連音等出外 而自便縱淫 識者歎之 4월 왜의 사신이 鶴浦(학포)에 도착하였다. 元上太公(원상태공)에게 相見(상견)을 청하였으나, (우로는) 기어이 입조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于老(우로)는 왜의 사신에게 희롱하며 말하길 "조만간에 너희 왕을 잡아 부엌떼기 노비로 삼겠다" 라고 하였다. 元上(원상)은 尼今(니금)과 阿后(아후)를 멸시하였기에 왕후를 노비처럼 대하였는데다, 輕侮(경모)한 마음으로 인해 왜의 사신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였다. 왜의 사신이 돌아가 왜왕에게 보고하자 왜왕은 노하여 그 사신을 참수하기를 명하였고, 다른 사신이 다시 와서 접견을 청하였다. 浦吏(포리)가 흉계가 있음을 알고 만나지 말라고 고하였으나, 于老(우로)는 말하길 "나는 한 나라의 태공으로서 어찌 小虜(소로)를 두려워하겠느냐" 하였다. 마침내 單騎(단기)로 가니, 왜가 그 모욕을 책망하였다. 우로가 말하길 "농담이였다" 라고 하였다.왜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그를 불태우고 떠나갔다. 舟師(주사;水軍)에게 명하였으나 멀리 갔으므로 잡지 못하였다. 후하게 장례하도록 명하였다. 어린 아들인 訖解(흘해)에게 작위를 내렸다. 혹은 말하길, 于老(우로)는 용감하고... 우노는 용감하고 장병을 잘 다루었으나, 그런 연유로 스스로 자랑하기를 좋아하기가 대단하여 군중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근심하였는데, 근심이란 반란을 일으키려는 뜻이다. 니금의 신하와 왜의 사신이 서로 통하여 은밀히 그 음모를 제어하려는 뜻이 있었다고도 한다. 아마도 내홍(內訌, 내부에서 저희들끼리 하는 분쟁)이 있었으며 외세로부터 베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니금이 태공의 죽음에 친히 조문하고 명원(命元)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태공의 아들은 마땅히 나의 아들이며, 태공의 처는 마땅히 나의 처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명원이 울면서 말하기를 “봄부터 비가 오지 않아 나라 안팎에서 기도하고 있으므로, 첩과 태공이 장차 산에 올라 기도를 하려 하였는데, 꿈에 큰 불이 나서 이를 의심하였습니다. 어찌 이와 같이 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하고 하였다. 니금이 말하기를 “모두 짐의 부덕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을 부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하들을 남당(南堂)에 모이게 하여 친히 정치와 형벌의 잘잘못을 물어 말하기를 “정치와 형벌의 잘못으로 비를 기도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익한 것이다. 지금 태공이 변란을 맞아 하늘에서 오랫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니 과인(寡人)과 너희 백관(百官)들은 마땅히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니금이 스스로 매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후가 그 소리를 듣고 친히 임하여 매질을 그치도록 하였다. 말구(末仇), 강억(康檍), 일골(日骨), 걸숙(乞淑), 연음(連音)에게 명하여 5도로 나아가 몰래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리방(理方, 관청명)으로 하여금 잘잘못을 살피고, 백성으로 질병과 고통을 살피게 하였다. 이때 아후와 걸숙과 사랑을 받는 신하 호산(好山)이 음란함에 빠져들었다. 연음의 처 난석(蘭石)과 후(后)의 사랑을 받는 군백(裙白)이 좋아하고 기뻐하며 부부처럼 지냈다. 양부(良夫)가 말하기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음란함을 좋아하므로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니금이 자책(自責)하고자 한 것은 후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것이지만, 걸숙과 연음 등이 명에 반(反)하여 밖으로 나가 스스로 제멋대로 편안하게 음란함을 즐겼다.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탄식하였다. *肯 긍 [조동] 기꺼이 …하다. …하길 원하다. [어떤 요구나 요청 등을 받아들여 그에 따라 행동이나 동작을 취한다는 의도를 나타냄]. 我这么热情地邀请他,他还是不肯来吗? - 내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그를 초대하는데 그는 여전히 오려고 하지 않습니까? [조동사] 기꺼이 …(하려) 하다. [외부로부터의 요청·요구를 받아들여 그대로 행동·동작을 취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며, 의지를 나타내는 ‘要’보다 소극적임] 我请他来, 他怎么也不肯来; 나는 그를 오라고 청하였는데, 그는 아무리 해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 *元上太公= 于老 *331년- 313년= 18년후 왜가 보복. *어린 아들인 訖解(흘해)가 3살때 일어난 일. *331년- 277년 +1= 55살. 331년 우로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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