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

포상8국 란의 배경.

라디오에요 2009. 1. 23. 08:20

백제왕기 고이왕

元年 甲申 九月 立素嬭后爲后 仇嬭爲副后
원년(A.D.264) 갑신 9월 素嬭后(소내후)를 后(후)로 삼았고, 仇嬭(구내)를 副后(부후)로 삼았다.

三年 丙戌 二月 沙伴王薨
3년(A.D.266) 갑술 2월 沙伴王(사반왕)이 죽었다.

五年 戊子 五月 田太后崩 春秋七十二 葬於仇知王陵 是年秋旱而蝗 田穀失稔 民相作盜 王巡行郡縣 以安撫之
5년(A.D.268) 무자 5월 田太后(전태후)가 죽었는데 춘추 72세였다. 仇知王陵(구지왕릉)에 장사를 지냈다. 이해 가을에 가물고 누리가 들어 밭의 곡식이 익지 않았다.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을 하였다. 왕이 군현을 순행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여 안정시켰다.

七年 庚寅 二月 築赤峴沙道二城 朦部民守之 十月 末曷來侵沙道城 焚門而走
7년(A.D.270) 경인 2월 赤峴(적현)과 沙道(사도) 두 성을 쌓아, 동부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명하였다. 10월 末曷(말갈)이 沙道城(사도성)을 침입하여 와서, 성문을 불사르고 도망갔다.

八年 辛卯 二月 太王有疾 赦因 秋 國南部蝗 民多饑 王自責曰 “寡人之世 災異如此”
8년(A.D.271) 신묘 2월 太王(태왕)이 병이 생겨 죄인들을 사면하였다. 가을, 나라의 남부에 누리가 들어, 백성들이 많이 굶주렸다. 왕이 자책하여 말하기를 “과인의 치세에 災異(재이)가 이와 같은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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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기 11년
十一年 三月 巡視西路
11년(A.D.267) 3월 서로(西路)를 순시하였다.

五月 夫余與浦上通謀
5월 부여(夫余)는 포상(浦上)과 通謀(통모)하였다.

十月 吉斗使加耶
10월 길두(吉斗)는 가야(加耶)에 사신으로 갔다.

十二年 正月 利音伊伐飡兼視軍政
12년(A.D.268) 1월 리음(利音)은 이벌찬이 되어, 군정을 겸하여 맡았다.  

五月 述明使加耶
5월 술명(述明)은 가야(加耶)에 사신으로 갔다.

十三年 二月 西巡一善沙伐至管城 撫慰將士 歷捺己召文而還 凡十有七日 立五太子祠 小光板公汗昔左玉紫井五仙也
13년(A.D.269) 2월 서쪽으로 일선(一善)과 사벌(沙伐)을 순시하여 관성(管城)에 이르러, 장사(將士)들을 위문하고, 날기(捺己)와 소문(召文)에서 거쳐 돌아왔는데 범 17일이 걸렸다. 立五太子祠 小光板公汗昔左玉紫井五仙也

四月 倭人犯境 利音率輕騎 擊退之
4월 왜인(倭人)이 변경을 침입하여, 리음(利音)이 경기(輕騎)를 이끌고 격퇴시켰다.

九月 加耶入朝 報河道新立 命美知往弔孝修
9월 가야(加耶)가 입조하여, 하도(河道)가 새로 즉위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미지(美知)에게 명하여 가서 효수(孝修)를 조문하도록 하였다.

나해기 14년 270년
十四年 正月 行白虎祭
14년(A.D.270) 1월 백호제(白虎祭)를 거행하였다.

*A.D.270은 庚寅년으로 白虎의 해이다.

七月 加耶王子于考太子 入告浦上八國入侵 請求 乃命于考與利音將六部兵往求之
7월 가야왕자(加耶王子) 우고태자(于考太子)가 들어와 포상8국(浦上八國)이 침입하였다고 고하였다.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고(于考)과 리음(利音)에게 명하여 6부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하도록 하였다.

八月 利音擊殺八國將軍 奪所虜六千人 還之 群臣賀之 乃獻俘獲于祖廟
8월 리음(利音)이 8국의 장군을 쳐서 죽이고, 붙잡힌 6천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군신(群臣)들이 치하하며, 이내 俘獲(부획,포로)들을 조상의 묘에 바쳤다.

河道以其女大理妻美知
하도(河道)는 그의 딸 대리(大理)를 미지(美知)에게 시집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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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기년이 틀리기 때문에..
포상8국의 란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265년에 신라는 풍년이었으나
266년 7월에 우박이 내리면서 흉년이 들지요.

268년 백제는 고이왕이 집권한지 얼마 안 되어,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받습니다.
백제는 말갈의 침입도 받고, 신라는 왜의 침입을 받죠.

269년에는 가야는 하도(河道)라는 인물이 새로 왕으로 선출됩니다.
이를 틈 타 270년 포상8국이 란을 일으킵니다.

포상8국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을테고.. 가야는 정권교체시기였습니다.


나해기 11년
十一年 三月 巡視西路
11년(A.D.267) 3월 서로(西路)를 순시하였다.


五月 夫余與浦上通謀
5월 부여(夫余)는 포상(浦上)과 通謀(통모)하였다.

부여, 즉, 백제는 267년 포상8국과 결탁을 하므로..
신라는 2차례나 가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서쪽의 경계를 강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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