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

多婆那国(다파나국)

라디오에요 2009. 1. 23. 09:03



http://www.asahi-net.or.jp/~xx8f-ishr/tabana=tango.htm

■□■□■ 第四代新羅王は日本人か(オロモルフ) ■□■□■

◆◆◆ 『三国史記』 ◆◆◆

 朝鮮最古の史書『三国史記』(1145年成立)の新羅本紀には、第四代の王について、つぎ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脱解尼師今、立。(一云吐解。)時年六十二。姓昔。妃阿孝夫人。脱解本多婆那國所生。其國在倭國東北一千里。・・・」
「脱解尼師今が即位した。(または吐解ともいう。)王はこの時、年が六十二歳であったが、姓は昔氏で、妃は阿孝夫人である。脱解はもと、多婆那国の生れで、その国は倭国の東北千(百)里の所にある。・・・(林英樹訳)」
「脱解尼師今が即位した〈吐解ともいう〉。王はこの時(A・D五七)、年が六十二歳で姓は昔氏、妃は阿孝夫人である。脱解王はもと多婆那国の出身で、その国は倭国の東北一千里のところにある。・・・(金思燁訳)」

(注1:このあと、朝鮮によくある伝説として、多婆那国の王の妃が卵を産んで海に流されて生まれ、海岸に漂着した――という話があります)

(注2:脱解尼師今は(トヘニサコム)で、尼師今(ニサコム)は王様といった意味だそうです。箱(船)から出てきたので脱解という名がついたという話も書かれています。多婆那国は(タバナ国)と読めます)

■□■□■ 제4대 신라왕은 일본인인가(오로모르후) ■□■□■

◆◆◆ 「삼국사기」 ◆◆◆

 조선 최고의 사서 「삼국사기」(1145년 성립)의 신라본기에는, 제4대의 왕에게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탈해니사금, 립.(일운토해.) 시 연 62.성석.비아타카오인.탈해혼다파나국양친.기국 재야마토국토호쿠 천 마을. ···」
「탈해니사금이 즉위하였다.〈(또는 토해라고도 한다.) 왕은 이 때, 해가 62세에 있었지만, 성은 석씨로, 왕비는 阿孝夫人이다. 탈해는 아래, 다파나국의 생으로, 그 나라는 야마토국의 東北 천리에 있다. ···(林英樹역)」
「탈해니사금이 즉위하였다.〈토해라고도 한다〉.왕은 이 때(A·D57), 해가 62세에성은 석씨, 왕비는 아타카오인이다. 탈해왕은 아래 다파나국의 출신으로, 그 나라는 야마토국의 토호쿠 천 마을의 곳에 있다. ···(金思燁역)」

(주 1:이후에, 조선에 자주 있는 전설로서 다파나국의 왕의 왕비가 알을 낳고 바다에 흘러가 태어나 해안에 표착한--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 2:탈해니사금은(트헤니사콤)으로, 니사 지금(니사 컴)은 임금님이라고 하는 의미라고 합니다.상자(배)에서 나왔으므로 탈해라고 하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쓰여져 있습니다. 다파나국은(타바나국)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 《籠神社》に残る伝説 ◆◆◆

 天橋立を参道にしている丹後の《籠神社》には、古代にこの地から一人の日本人が新羅に渡って王様になった――という伝説が残されているそうです。

◆◆◆ 『卑彌呼と日本書紀』と『卑弥呼一問一答』と『女性天皇の歴史』 ◆◆◆

 数年前に出しました上の三つの本(どれも栄光出版社刊行)でオロモルフは、この第四代の王が日本の丹後から渡った可能性が高い旨を記しました。
(つまり多婆那国とは日本の丹後地方の事であり、したがって第四代の新羅王は日本人だったのだろう――という推理です)

 しかし、ごく簡単に書いただけですので、ここで、もう少し考察してみます。

◆◆◆ 《롱신사》에 남는 전설 ◆◆◆

 天橋立아마노하시다테를 참배길로 하고 있는 丹後탄고의《籠神社롱신사》에는, 고대에 이 땅으로부터 한 명의 일본인이 신라에 건너 王様임금님이 된--라고 하는 전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 「비미호와 일본 서기」와 「히미코 일문일답」과 「여성 천황의 역사」 ◆◆◆

 몇 년전에 냈던 위의 세 개의 책(모두 영광 출판사 간행)에서 オロモルフ오로모르후는, 이 제4대의 왕이 일본의 탄고로부터 건넌 가능성이 높은 취지를 기록했습니다.
(즉 다파나국과는 일본의 丹後地方탄고지방의 일이며, 따라서 제4대의 신라왕은 일본인이였을 것이다-- 라는 추리입니다)

 그러나, 극히 간단하게 썼을 뿐이에요로, 여기서, 좀 더 고찰해 보겠습니다.

◆◆◆ 地理について ◆◆◆

『三国史記』には「倭国の東北千里」とあります。
 倭国とは日本のことですが、弥生時代においては、北九州の国々を主として倭国(一部朝鮮半島南端部を含む)と呼んでいたようです。
 それは、『三国志』の東夷伝を読めばわかります。
 だとしますと、北九州を起点にして「東北へ千里」の場所で脱解尼師今は生まれたことになります。

 北九州から東北へ進みますと、(日本海の孤島を別にしますと)人間の住んでいる場所で、王様のいそうな場所といいますと、日本列島の日本海側だけです。
 で、千里とはどのくらいかといいますと、仮に昔のシナの里を使っていたとしますと、魏の時代の里は、
「一里=435メートル」
 ――なので、
「千里=435キロメートル」
 ――となります。
 これを地図上で計りますと、鳥取から丹後のあたりになります。

 もちろん、単に遠方という意味で千里といった可能性もありますが、概略の距離を示しているとすれば、こうなるのです。

◆◆◆ 지리에 대해 ◆◆◆

「삼국사기」에는 「야마토국의 토호쿠 천리」라고 있습니다.
 야마토국과는 일본입니다만, 야요이 시대냄새나서는, 키타큐슈의 나라들을 주로 야마토국(일부 한반도 남단부를 포함한다)이라고 부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삼국지」의 동부지역 무사전을 읽으면 압니다.
 (이)라고 하면, 키타큐슈를 기점으로 해 「토호쿠에 천리」의 장소에서 탈해니사 지금은 태어난 것이 됩니다.

 키타큐슈로부터 토호쿠로 나아가면, (일본해의 고도를 따로 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장소에서, 임금님의 있을 것 같은 장소 라고 하여, 일본 열도의 일본해측 뿐입니다.
 그리고, 천리와는 어느 정도일까하고 말하면, 만일 옛 세멘시나의 마을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면, 위의 시대의 마을은,
「일리(약 3.93km)=435미터」
 ――그래서,
「천리=435킬로미터」
 ――됩니다.
 이것을 지도상에서 재면, 톳토리로부터 탄고의 근처가 됩니다.

 물론, 단지 먼 곳이라고 하는 의미로 천리라고 하는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개략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면, 이렇게 됩니다.

◆◆◆ 《丹後国》と《丹波国》 ◆◆◆

 丹後半島付け根の《籠神社》の伝説が、《多婆那国》=《丹後国》を暗示していて興味深いのですが、もともと丹後地方は、海洋族として知られた海部一族の勢力圏であり、大和朝廷も〈天照大神〉(伊勢神宮)の大和以外での最初の奉斎地に選んだほど重視していた所です。
 ですから、丹後の王権の王子の誰か(またはその一族)が、新羅に渡った可能性は大きいのですが、それはもちろん可能性の問題です。

 さてつぎに、「多婆那国とは現在の丹後ではないか」という推理の根拠を、読みで示しますが、その前に丹後と丹波の関係を記します。

 現在の丹後は、かつての《丹後国》ですが、さらに昔は《丹波国》の一部でした。
 西暦713年に《丹波国》の(都から見て)後ろの方が独立して《丹後国》になったので、新羅云々の時代には《丹波国》と呼ばれておりました。
つまり、《籠神社》の一帯は、古代においては《丹波国》だったのです。

◆◆◆ 《단고노쿠니》와《단바노쿠니》 ◆◆◆

단고반도 밑의《롱신사》의 전설이,《다파나국》=《단고노쿠니》를 암시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만, 원래 탄고 지방은, 해양족으로서 알려진 가이후 일족의 세력권이며, 야마토 조정도〈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세징구) 다이와 이외로의 최초의 봉재지에 선택했을 정도 중시하고 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탄고의 왕권의 왕자인 누군가(또는 그 일족)가, 신라에 건넌 가능성은 큽니다만, 그것은 물론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다파나국과는 현재의 탄고가 아닌가」라고 하는 추리의 근거를, 읽기로 나타내 보입니다만, 그 전에 탄고와 탄바의 관계를 적습니다.

현재의 탄고는, 한 때의《丹後国단고노쿠니》입니다만, 한층 더 옛날은《丹波国단바노쿠니》의 일부였습니다.
서기 713년에《丹波国단바노쿠니》의(都에서 보고) 뒤가 독립해《丹後国단고노쿠니》가 되었으므로, 신라 운운의 시대에는《丹波国단바노쿠니》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즉,《롱신사》의 일대는, 고대에 있고는《丹波国단바노쿠니》였습니다.

◆◆◆ 《丹波国》の語源 ◆◆◆

 現丹後の《丹波国》は、《伊勢神宮》の外宮の神〈豊受大神〉で知られますように、田畑に恵まれて食べ物の生産に適した地方でした。
 で、《丹波》の語源ですが、もともとは田畑の豊富な場所という意味の《田庭》だったらしいと言われています。

 国語辞書に書かれておりますが、昔の「庭」の発音は(には)ですが、それが省略されて「場(ば)」という言葉が出来ました。
 日本語における「にわ」や「ば」は、仕事をする場所や家の近くの場所を意味しますが、漢字の意味は祭祀の場所です。
 日本においても、神聖な場所、汚してはいけない場所を意味していたようです。
 だから、こういう漢字を当てはめたのでしょう。

 ところで、「には」から「ば」が出来てから、「庭」という漢字は「ば」とも読むようになりました。
 オロモルフの知人に「大庭」さんという人がいますが、これは「おおば」と読みます。
 ですから、田の庭(田庭)の意味の「たには」が省略されて「たば」になり、それが「たんば」と読まれて《丹波》という漢字で書かれるようになった可能性が高いのです。
 つまり、現《丹後国》の弥生時代の呼び名は、《田庭(たば)国》であった可能性がかなりあるのです。

(以上は、オロモルフが語呂合わせ的に考えた話ではありません。国語の専門家によって編纂された多くの辞書類に記されていることを、オロモルフが纏めたにすぎません。この先はすこし小生の推理が入りますが・・・)

◆◆◆ 《단바노쿠니》의 어원 ◆◆◆

 현탄고의《단바노쿠니》는,《이세징구》의 외궁의 신〈토요우 대신〉으로 알려지도록, 전답을 타고 나 음식의 생산에 적절한 지방이었습니다.
 그리고,《탄바》의 어원입니다만, 원래는 전답의 풍부한 장소라고 하는 의미의《전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국어 사전에 쓰여져 있습니다만, 옛 「뜰」의 발음은(에는)입니다만, 그것이 생략 되어 「장소()」라고 하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에 있어서의 「정원」이나 「」는, 일을 하는 장소나 집의 가까이의 장소를 의미합니다만, 한자의 의미는 제사의 장소입니다.
 일본에 있어도, 신성한 장소, 더럽혀선 안 되는 장소를 의미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한자를 적용시켰겠지요.

 그런데, 「에는」으로부터 「」가 되어있어로부터, 「뜰」이라고 하는 한자는 「」(이)라고도 읽게 되었습니다.
 오로모르후의 지인에게 「오오바」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오오바」라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논의 뜰(전정)의 의미의 「에는」이 생략 되어 「」가 되어, 그것이 「」(이)라고 읽혀져《탄바》라고 하는 한자로 쓰여지게 된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현《단고노쿠니》의 야요이 시대의 통칭은,《전정() 국》인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이상은, 오로모르후가 말 맞추기적으로 생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국어의 전문가에 의해서 편찬 된 많은 사전류에 기록되고 있는 것을, 오로모르후가 모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이 앞은 조금 소생의 추리가 들어갑니다만···)

◆◆◆ 《多婆那国》と《丹後国》 ◆◆◆

 以上から、
 現在の丹後地方は、もと《丹波国》であり、それはさらに前には《田庭国》と呼ばれていた可能性が高いわけです。
 さて、日本語では、多くの場合、《出雲国》は「いずもの国」、《尾張国》は「おわりの国」・・・というように、国の前に「の」をつけて発音するのが普通です。
 ですから発音をきちんと書けば、《田庭国》は、「たにはの国」から庭(には)→場(ば)の変形がなされて「たばの国」(田畑のある場所!)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さらにそれが「たんばの国」になって《丹波国》と書かれるようになったと推理できます。

 したがいまして、現在の《丹後地方》は、弥生時代には「たばの国」と呼ばれていた可能性が高く、それをローマ字で書きますと、
『TABANO国』
 ――となります。

 ところで『三国史記』の《多婆那国》は、音で読んで「タバナ国」、ローマ字にしますと、
『TABANA国』
 ――です。
 つまり、ほとんど同じ発音なのです!

 ですから、古代の新羅の人たちが、日本人の現丹後地方の呼び方をそのまま音写して、《多婆那国》と記した可能性はきわめて高いと思われます。

(これに反発する韓国人は多いでしょうが、高天原は韓国に有ったとか、奈良文化は朝鮮人が創ったとかいう牽強付会話よりは、ずっとラショナルだと思います)

◆◆◆ 《다파나국》과《단고노쿠니》 ◆◆◆

 이상으로부터,
 현재의 탄고 지방은, 아래《단바노쿠니》이며, 그것은 한층 더 전에는《田庭国전정국》으로 불리고 있던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많은 경우,《이즈모노쿠니》는 「있지 않고 것국」,《오와리국》은 「끝의 나라」···(와)과 같이, 나라의 앞에 「의」를 붙여 발음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까 발음을 제대로 쓰면,《전정국》은, 「에는의 나라」에서 정(에는)→장()의 변형이 이루어져 「의 나라」(전답이 있는 장소!)(으)로 불리게 되어, 한층 더 그것이 「의 나라」가 되고《丹波国단바노쿠니》라고 쓰여지게 되었다고 추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탄고 지방》은, 야요이 시대에는 「의 나라」라고 불리고 있던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로마자로 쓰면,
「TABANO국」
 ――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다파나국》은, 소리로 읽어 「타바나국」, 로마자로 하면,
「TABANA국」
 ――입니다.
 즉, 거의 같은 발음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의 신라의 사람들이, 일본인의 현탄고 지방의 부르는 법을 그대로 소리 찍고,《다파나국》으로 적은 가능성은 극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에 반발하는 한국인은 많을 것입니다만, 타카마가하라는 한국에 있었다든가, 나라 문화는 조선인이 만들었다든가 말하는 견강 부회이야기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다고 생각합니다)

◆◆◆ 古代の朝鮮の文献 ◆◆◆

 日本の場合には、『古事記』『日本書紀』『風土記』のようなきわめて古くかつ豊穣な文献が残されていますが、朝鮮半島では『三国史記』といっても12世紀半ばの作です。
 また、日本の場合は『万葉集』で代表されるような、飛鳥時代やさらにその前の日本語(話し言葉)を推理できる(漢文/シナ語ではなく万葉仮名の)文献が残されていますが、朝鮮には残されていません。
 『三国史記』も漢文です。
 したがって古代の朝鮮語が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かは、日本にくらべて遙かに曖昧であり、古代の日本と朝鮮を言語面で比較するのは困難です。
 そういうわけで、渡部昇一先生のように、別の観点から百済の要人たちは日本語を話し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推理するほかはありません。

(しかし、『万葉集』を古代朝鮮語で読む――などというトンデモ本が出るので困ります。この種の本は、韓国の反日的な学者ですら批判しておりますのに、まじめな保守派の人が騙されたりいたします。解法者さんのおられる掲示板はすぐに訂正されますからいいのですが、注意する人がいなくてそのままの掲示板が多いようです)

◆◆◆ 最後に一言 ◆◆◆
いつも不思議に思うのですが、アチラの国からはメチャクチャな話が無数に聞こえてくるのに、日本では、保守派ですら、こういう話をしようとしません。
なぜでしょうか?
すくなくとも、日本神話の高天原は韓国の高霊市にあった――などという話よりは蓋然性が高いと思います。
▼ご紹介
『卑彌呼と日本書紀(第3刷)』栄光出版社(3800円)
『卑弥呼一問一答(第2刷)』栄光出版社(1300円)
『女性天皇の歴史(第2刷)』栄光出版社(1300円)

この中の『女性天皇の歴史』には、桓武天皇問題(朝鮮からの帰化人問題)や〈三足烏〉問題などの論考もあります。
(完)
◆◆◆ 고대의 조선의 문헌 ◆◆◆
일본의 경우에는, 「고사기」 「일본 서기」 「풍토기」와 같은 극히 낡고 한편 풍양인 문헌이 남아 있습니다만, 한반도에서는 「삼국사기」라고 해도 12 세기 중반의 작입니다.
또, 일본의 경우는 「만엽집」으로 대표되는, 아스카 시대나 한층 더 그 전날본어(회화체)를 추리할 수 있는(한문/세멘시나어는 아니고 망요 가명의) 문헌이 남아 있습니다만, 조선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삼국사기」도 한문입니다.
따라서 고대의 조선어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는, 일본에 비해서 아득하게 애매하고, 고대의 일본과 조선을 언어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한 (뜻)이유로, 와타나베 쇼우이치 선생님과 같이, 다른 관점에서 (쿠다라)백제의 요인들은 일본어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와 추리하는 것 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엽집」을 고대 조선어로 읽는다-- 등이라고 하는 톤 데모책이 나오므로 곤란합니다.이런 종류의 책은, 한국의 반일적인 학자로조차 비판하고 있는데도, 성실한 보수파의 사람이 속거나 하겠습니다.해법자씨가 계시는 게시판은 곧바로 정정되기 때문에 좋습니다만, 주의하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의 게시판이 많은 듯 합니다)
◆◆◆ 마지막에 한마디 ◆◆◆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합니다만, 아치라의 나라에서는 형편없는 이야기가 무수히 들려 오는데, 일본에서는, 보수파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적어도, 일본 신화의 타카마가하라는 한국의 고령시에 있던-- 등이라고 하는 이야기보다는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소개
「비미호와 일본 서기( 제3쇄)」영광 출판사(3800엔)
「히미코 일문일답( 제2쇄)」영광 출판사(1300엔)
「여성 천황의 역사( 제2쇄)」영광 출판사(1300엔)

이 안의 「여성 천황의 역사」에는, 간무 천황 문제(조선으로부터의 귀화인 문제)나〈3켤레까마귀〉문제등의 논고도 있습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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