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

迎烏郞(영오랑)= 延烏郞(연오랑)

라디오에요 2009. 1. 23. 08:59

 

 

阿達羅紀(아달라기 1p~, 벌휴기 23p~, 나해기 32p~, 조분기 38p~, 첨해 이사금 43p~, 미추 이사금 48p~, 유례 이사금 78p~, 기림 이사금  90p~, 흘해 이사금 93p~, 내물대성신제기 110p~ )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36.pdf


阿達羅紀(아달라기)
4年 四月 多婆那以迎烏郎爲君
4년(216년) 4월 多婆那(다파나)가 迎烏郎(영오랑)을 君(군)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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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延烏郞(연오랑)으로 나와 있어, 흔히 延烏郞(연오랑)으로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아달라기'에서는 迎烏郞(영오랑)으로 되어 있고, 延烏郞(연오랑)=迎烏郞(영오랑) 같은 말입니다.

*《영일읍지》원문을 확인해 보면, 迎烏郞(영오랑)으로 나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迎日邑誌(영일읍지)는 국가전자도서관(http://www.dlibrary.go.kr/)에서 원문을 볼 수 있으므로, 89p, 世界洞 란에 영오랑(迎烏郞)으로 확인됩니다.


http://cafe.naver.com/esolba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6

 

배용일(포항1대학 초빙교수)

Ⅰ.연오랑 세오녀 사료
연오랑 세오녀 신화 연구의 가장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연오랑(延烏郞)세오녀(細烏女)’와《영일읍지》의 ‘세계동(世界洞)’의 내용을 소개한다.

2.《영일읍지》의 ‘세계동’
예로부터 세곡이라 부르다가 후에는 누을(또는 혜곡)이라고 불렀다. 세 구역(원신흥·중흥·세계)을 합하여 세계동이라고 했다. 신라 아달라왕 때 영오랑·세오녀가 세계동의 못둑 위의 들에 집을 지어 살았던 곳이나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 남쪽에는 춘덕보가 있어 일월지로 통하고, 동쪽에는 순제가 있어 앞들에 물을 대고, 북쪽에는 옥령이 있고, 서쪽에는 도덕곡이 있다.(金鎔濟,《迎日邑誌》권1 ‘世界洞’ 원문생략)

《삼국유사》에서는 연오랑(延烏郞)이라 했으나《영일읍지》는 연(延)자를 영(迎영)자로 써서 영오랑(迎烏郞)이라 다르게 표기했다. 그러나 ‘연(延)’과 ‘영(迎)’은 음과 훈이 흡사하여 조선시대에는 영일현(迎日縣)과 연일현(延日縣)을 혼용해 온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같은 명칭이다.

《영일읍지》‘세계동’에서는 영오랑 세오녀가 집을 짓고 살았던 세계동 마을과 주위의 못·재·골짜기 등 구체적인 지형적 환경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일월지와 제천지(祭天地) 및 연오랑세오녀 거처를 비정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하여 당시 부부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세계동〉의 마을명과 주변의 못·재·골짜기의 명칭이 지금까지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동국여지승람》의「일월지 못 위에서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은 일월신화의 발생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신화는「동해 바닷가에 사는 해와 달의 정(精)인 연오랑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그곳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도일(渡日) 건국 사실이 자연환경의 지역성과 고대 신라왕국 성립기의 역사성을 토대로 상징화된 것이다. 즉, 당시 전개되었던 근기국(勤耆國)의 신라로의 편입, 선진문화의 일본전파 및 신라와 일본과의 문물교류를 반영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신화화한 것으로 추단된다.
특히 일월신화(日月神話)의 탄생지를 에워싼 여러 지명들과 이 지역의 가장 빠른 연중 일출시각 등은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포항지역만이 일월신화의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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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기이편
延烏郎  細烏女
第八阿達羅王卽位四年丁酉. 東海濱有延烏郎, 細烏女, 夫婦而居. 一日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而非眞王也.) 細烏怪夫不來. 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是時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求二人. 延烏曰.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朕之妃有所織細 . 以此祭天可矣. 仍賜其 .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 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 又都祈野.

*第八 阿達羅王卽位 四年 丁酉.

삼국유사에서 '아달라 4년 정유년'으로 나와 있어, 아달라 4년은 확실한 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丁酉= AD157년. 은 틀린 연도입니다.
아달라기에서처럼 AD216년이 옳은 연도입니다.



★『日本書紀』卷六 垂仁天皇 三年(甲午 前二七)三月◆三年 春三月。新羅王子天日槍來歸焉。將來物。羽太玉一箇。足高玉一箇。鵜鹿鹿赤石玉一箇。出石小刀一口。出石■一枝。日鏡一面。熊神籬一具。幷七物。則藏于但馬國。常爲神物也。〈一云。初天日槍。乘艇泊于播磨國。在於完粟邑。時天皇遣三輪君祖大友主與倭直祖長尾市於播磨。而問天日槍曰。汝也誰人。且何國人也。天日槍對曰。僕新羅國主之子也。然聞日本國有聖皇。則以己國授弟知古而化歸之。仍貢獻物葉細珠。足高珠。鵜鹿鹿赤石珠。出石刀子。出石槍。日鏡。熊神籬。膽狹淺大刀。幷八物。仍詔天日槍曰。播磨國完粟邑。淡路島出淺邑。是二邑。汝任意居之。時天日槍啓之曰。臣將住處。若垂天恩。聽臣情願地者。臣親歷視諸國。則合于臣心欲被給。乃聽之。於是。天日槍自菟道河泝之。北入近江國吾名邑而暫住。復更自近江。經若狹國西到但馬國則定住處也。是以近江國鏡谷陶人。則天日槍之從人也。故天日槍娶但馬出嶋人。太耳女。麻多烏。生但馬諸助也。諸助生但馬日楢杵。日楢杵生淸彦。淸彦生田道間守也。〉

 

*일본서기에서는 수인천황 3년조에 천일창 기사가 나오는데..

일본 개인 홈페이지 http://members3.jcom.home.ne.jp/wakoku-keisei/suinin.html 에서 수인천황을 참조로 해 보면,
誉津別王이라는 주인장은 수인천황의 원년을 212년으로 보고 있죠.

212年  垂仁即位(太歳壬辰)
       墨坂神、大坂神を祀る(崇神9)

이는 일본서기 태세기년이 壬辰(임진)= AD212년으로 나와 있는 것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日本書紀』卷六 垂仁天皇 元年(壬辰 前二九)正月 戊寅《二》◆元年 春正月 丁丑朔 戊寅。皇太子卽天皇位。

또한, 誉津別王는 천일창 기사의 연대를

214年  異俗の人が多く帰化する(崇神11)
       新羅の王子、天日槍が来帰(垂仁3)

214년으로 추정하고 있죠.

多婆那(다파나), タバ ナ=たばな= 타바나.

*多 음독 タ 훈독 おおい
*婆 음독 バ 훈독 ばば
*那 음독 ナ

多婆那(다파나)의 일본어 발음이 '타바나'이므로
但馬國(단마국)과 발음이 유사합니다.
일본인들은 흔히 丹後지방을 多婆那(다파나)국으로 많이 얘기합니다.
但馬과 丹後는 서로 붙어 있는 곳으로 오사카 서북쪽에 위치한 지방입니다.

http://www.kenkenfukuyo.org/reki/ormoru/himiko/himiko36.html

朝鮮の古代史書『三国史記』の新羅本記に、第四代の王・脱解尼師今は多婆那国の生まれで、その国は倭国の東北千(百)里の所にある――と記されています。
 卵として生まれ、卵のままで海に流され、新羅に着いたときには、誕生して小児になっていたという伝説です。
九州を昔の倭国とすれば、多婆那国は丹波国となります。多婆那はタバナと読めるので、じつによく似た名前であり道順も一致しています。
 じつはこの伝説に近い話が《籠神社》の海部家にも伝わっていて、丹波の人が新羅にわたって新羅の王を補佐して功績をあげ、のちに王になった――とされているそうなのです。
 もちろんこれをそのまま史実にするわけにはいきませんが、丹波と朝鮮半島の往来や交易が弥生時代からあったことは確実であり、史実を反映した伝説なのかもしれません。
 朝鮮半島の南部には、弥生時代から多くの日本人が進出して活躍し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

조선의 고대사서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제4대의 왕·탈해니사금은 다파나국의 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의 토호쿠 천(백) 리의 곳에 있다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알로서 태어나 알인 채로 바다에 흐르게 되어 신라에 도착했을 때에는, 탄생해 小児(소아)가 되어 있었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큐슈를 옛 야마토국 그렇다면, 多婆那国다파나국은 丹波国단바노쿠니가 됩니다. 다파나는 타바나라고 읽을 수 있으므로, 실로 잘 닮은 이름이며 순서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가《籠神社롱신사》의 海部家(가이후가)에도 전해지고 있어, 丹波(탄바)의 사람이 신라에 걸쳐서 신라의 왕을 보좌해 공적을 올려 후에 왕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사실로 할 수는 없지만, 탄바와 한반도의 왕래나 교역이 야요이 시대로부터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사실을 반영한 전설인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의 남부에는, 야요이 시대로부터 많은 일본인이 진출해 활약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籠神社롱신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올까요?
그것이 역사의 비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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