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태조왕
太祖大王, 或云 國祖王, 諱宮. 小名於漱, 琉璃王子 古鄒加再思之子也. 母太后扶餘人也. 慕本王薨, 太子不肖, 不足以主社稷, 國人迎宮繼立王, 生而開目能視, 幼而岐嶷, 以年七歲, 太后垂簾聽政.
太祖大王(태조대왕)은 혹은 國祖王(국조왕)이라고 한다. 諱는 宮이고, 小名은 於漱(어수)이다. 琉璃王의 아들인 古鄒加 再思의 아들이다. 어머니 太后는 扶餘人이다. 慕本王이 죽자, 태자가 불초하여, 사직을 주관하기에 부족하였다. 國人들은 宮을 맞아들여 王을 세우고 이었다. (宮은) 태어나서 눈을 떠서 볼 수가 있었고, 어려서 뛰어났다. 나이 7살에, 太后가 垂簾聽政(수렴청정)하였다.
위의 해석은 제가 한 것으로.. 아래는 인터넷에 나오는 해석이죠.
삼국사기 태조왕
太祖大王, 或云國祖王, 諱宮. 小名於漱, 琉璃王子古鄒加再思之子也. 母太后扶餘人也. 慕本王薨, 太子不肖, 不足以主社稷, 國人迎宮繼立, 王生而開目能視, 幼而岐嶷, 以年七歲, 太后垂簾聽政.
태조대왕(太祖大王)<혹은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하였다>의 이름은 궁(宮)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於漱)이며, 유리왕의 아들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이다. 어머니 태후(太后)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었을 때 태자가 불초하여 사직을 주관하기에 부족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이하여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은 나면서부터 눈을 떠서 볼 수 있었고 어려서도 (남보다) 뛰어났다. (즉위할 때) 나이가 7살이었으므로 태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다.
國人迎宮繼立王, 生而開目能視, 幼而岐嶷
= 國人은 宮을 맞아들여 王을 세우고 계승하였다. (宮은) 태어나서 눈을 떠서 볼 수가 있었고, 어려서 뛰어났다.
以年七歲, 太后垂簾聽政. 이 문장이 문제가 됩니다.
제가 해석한 것은 以을 시간의 전치사 '~에'로 해석했고..
인터넷 해석은 이유를 나타내는 '~ 때문에'로 해석을 한거죠.
인터넷 해석문은 앞의 문장, 國人迎宮繼立의 영향을 받아, 마치 7살에 宮이 즉위한 것처럼 괄호를 넣어서,(즉위할 때)로 해석해 놨죠. 하지만, 다른 사서 고구려사초는 다른 얘기를 합니다.
神明仙帝紀 2년= AD74년
◎ 二年甲戌, 正月, 立<宮>太子為東宮. 與<芦>皇后習政事. 是年, 七歲, 能知大體, 事多得中. 八月, <濟>侵<羅>邊. 十月, <朱那>反. <漢>, 攻<西域><車師>, 破之.
○ 2년 [AD74] 갑술, 정월, <궁>태자를 동궁으로 세웠는데, <호>황후와 함께 정사를 익혔다. 그 해의 나이는 7살이었는데, 능히 정사의 큰 줄거리를 깨달았고, 운영함에 적중함이 많았다. 8월, <백제>가 <신라>의 변방을 침입했다. 10월, <주나>가 반란하였다. <한>이 <서역>의 <차사>를 쳐서 파하였다.
宮은 7살에 東宮이 된거지.. 즉위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죠. 또한 태조왕은 45살에 즉위했다고 나오죠.
이런 사항은 해석에 의해 휘말리기도 하고.. 다른 문헌이 없다면 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매우 어려운 사항입니다.
*垂簾聽政(수렴청정)= 발을 내리고 정사(政事)를 듣는다는 뜻으로, 나이 어린 임금이 등극(登極)했을 때 왕대비(王大妃)나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왕을 도와서 정사(政事)를 돌봄을 이르는 말
垂簾聽政(수렴청정)이란 말은 한자사전에 태자가 즉위하였을 때, 태후가 정사를 돌본다고 나와 있으나..
반드시 태자가 즉위하였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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