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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의 '동사'의 구절이 검색에서 걸려.. 살펴 보면.. ... 글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하는데 그 위에 성모(聖母)의 사당이 있어 국인들이 제사지내는 곳이다. 옛날 중국 황실[帝室]의 파소(婆蘇)라고 하는 여자가 신선의 방술(方術)을 얻어 지아비가 없는데도 임신을 하여 곧 삼한(三韓)에 들어와서 혁거세를 낳았다. 왕은... *여기에서는 파소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삼한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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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get=_blank>http://jksm.segye.com/Service4/ShellView.asp?TreeID=547&dataID=200309051451000032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지니고 있다. 나정우물에 표주박 모양의 알이 있었고, 왕만이 탈 수 있는 용마가 무릎을 꿇고 지켰다는 것은 박혁거세가 왕의 혈통임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박혁거세는 조선왕실과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었을까. 이에대해 '삼한비기(三韓秘記)' 구지(舊誌)에는 "박혁거세의 생모는 본래 부여제실(扶餘帝室)의 여자(공주)다"고 했다. 즉, "사로(斯盧: 신라)의 시왕(始王)은 선도산(仙挑山: 경주) 성모(聖母)의 아들인데, 옛 부여 제실(왕궁)의 여자 파소(婆蘇)가 남편없이 처녀 잉태하여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 흑룡강성에 인접한 강, 송하강의 지류)로부터 동옥저에 이르러 또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내을촌(柰乙村)에 이르러… 거서간(임금)이 되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한 또는 사라(斯羅: 신라)라 칭하였다." 또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壇實記)'에는 "부여제실의 여자 동신성모(東神聖母)인 파소(婆蘇)가 남자와 혼인하지 않은채 잉태하여… 진한 땅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 계림서악(鷄林西岳)에 성모사(聖母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모는 지선(地仙)이 되고 혁거세는 천선(天仙)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을 연상케 한다.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이적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 파소성모의 잉태지역이 부여가 아닌 중화(中華) 또는 한실(漢室)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오기(誤記) 아니면 왜곡이다. 즉, 당시 우신관(佑神館)에서 관반학사(館伴學士)로 위장한 북송(北宋) 제6대 황제 신종(神宗)의 대신 왕보(王輔)의 흉계에 의한 왜곡 날조일 수 있다는 말이다. 왕보는 김부식이 접한 인물이다. 사학계에 연구과제로 넘긴다. *동국여지승람, "해동이적" "'신단실기(神壇實記)" 같은 사서에 나온다네요. *여기서도 "진한 땅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 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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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get=_blank>http://blog.daum.net/chaogy/6649720 5 神母와 巫 ④ 한중 지모신 비교에서, <삼국유사>에는 진평왕 때 지혜라는 비구니가 불전을 수리하려 할 때 꿈에 한 선녀가 나타나 자신이 신모神母라고 밝히면서, 법사를 돕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을 파소婆蘇라고 하였으며,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에 내왕하여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왕이 편지를 소리개의 발에 붙여 말하기를 소리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 함으로 그대로 하였더니 그 소리개가 이 산에 머물므로 여기에 왕래하여 지선이 된 것이라고 한다. 신모가 지선이라는 말인데, 그가 파소(박혁거세의 어머니)이고, 파소는 중국황실의 딸이 아니라. 단국檀國의 하백이었던 소풍蘇豊의 손녀 하백녀의 후예라는 말이다. 일연스님이 그를 중국황실의 딸로 변조한 것이다. 파소는 그가 바다를 건너온 소성 문중 사람이라는 말이다. 불전을 수리하는데 하백녀가 나타난다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불전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 하백녀를 모시는 아기씨당을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혜로 불리는 스님이 실은 스님이 아니라 무당이었다고 보아야 하고, 당시에 무당에게 선교의 호칭인 선님이라는 호칭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왕래를 하며 지냈다는군요. *"단국檀國의 하백이었던 소풍蘇豊의 손녀 하백녀의 후예라는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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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t=_blank>http://blog.naver.com/l23014/90023734185 1. [신라] 시조는 혁거세며 성은 박시라. 초에 부여 [제실녀 동신 성모 파소 帝室女 東神 聖母 婆蘇]가 남편없이 잉태하여 부모가 쫒아 내니, 이에 진한땅으로 들어 가서 아이를 낳으니 이가 혁거세다. 양산촌에 버려지니 나정 숲 사이라. 사람이 와서 데려가 거두어 기르니 영특숙성하여 신덕이 있음이라. 이보다 먼저 조선 유민이(고조선족) 동해 물가 산과 골짜기에 분거하여 살았으니 여섯 촌락이 되었다. 이 육촌은 왈 알천 양산촌. 왈 돌산 고허촌. 왈 각산 진지촌. 왈 무산 대수촌. 왈 명활산 고야촌. 이니 이를 일 러 진한 육부라 한다. 나이 많은 늙은 노인 모두가 알천에 모여 의논 하여 말하기를 우리들 무리가 잉금이 없어 모든 백성이 방일 하니 덕이 잇는 자를 구하여 임금으로 함이 어떻할까 하니 . 때에 양산촌에 박혁거세가 있어 신성의 기질이 있는 지라. 고허촌장 소벌공이 육부 촌장과 더불어 추존 하여 왕으로 삼으니, 개천 2401 년. 단기 2276 년. 기원전.57 년 갑자년 4월 병진이니 때에 혁거세 나이 13 세라. 칭하기를 거서간이라 하고 국호를 사로라 하다가 후에 개칭 하여 신라라 하니, 거서간은 진한 말에 왕이오 혹은 귀한 사람을 칭 함이라 하니라. 전 56 世. 992 년. 계림 서악에 성모사聖母祠가 있다. [출처] 삼국의 건국 요약사|작성자 적송공아 *단군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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