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비문이 올려진 대부분이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不歸□人, 躬率往討. 過富山, 負山, 至鹽水上, 破其三部洛六七百營, 牛馬群羊, 不可稱數. 於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 □城, 力城, 北豊, 王備獵, 遊觀土境, 田獵而還.
過富山 에서 過 로 나와 있는데,
이 過가 아니고, 叵 (어려울 파)입니다.
즉, '叵富山= 파부산'이란 얘기입니다.
巴夫山 같은게 어떨까요?
영락대제기 5년조를 보면
五年 乙未 二月 太后生子談聽于溫湯 上以卑離漸違王化 親征叵山(老頭?兒山) 富山(桃兒山) 負山(屈原嶺) 至鹽水(虎練河) 破其部落七百余 所獲牛馬羊豕万數 二后亦騎馬而從上 上以吐后有身 止之 而不聽 歸生女 名以三山
5년 을미 (AD395년) 태후가 온탕에서 아들 談聽(담청)을 낳았다. 상은 卑離(비리)가 점차 왕의 정책을 위반하니, 친히 叵山(파산, 老頭?兒山).富山(부산, 桃兒山),負山(부산, 屈原嶺)을 정벌하고, 鹽水(염수, 虎練河)까지 이르렀다. 그 부락 700여를 깨뜨리고 소, 말, 양, 돼지를 노획한 것이 수만이였다. 두 왕후 역시 말을 타고 상을 따랐다. 상은 吐后(토왕후)가 임신하여 금지하였으나 듣지않고 돌아와 딸을 낳았다. 이름을 三山(삼산)이라 지었다.
*王化= (1) 군주의 덕화(德化), (2) 국왕의 정치.
*有身= 有娠, 妊娠(임신)
그래서, 탁본에 나오는대로 叵副山(파부산)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王以碑麗 不歸□ 人躬率往 討過富山負山 至鹽水上
王以碑麗 不貢□ 又躬率住 討叵富山負山 至鹽水上
王以稗麗 不貢□ 又躬率住 討叵富山負山 至鹽水上
碑 는 주운대, 한국금석문등을 통해 보면, 碑 로 보이고..
不貢은 주운대 탁본에서 貢 비슷하게 보입니다.
稗麗(패려)라는 의견도 있죠.
又은 짐작이고.. 쌍구본에는 又로 나와 있죠.
한국금석문에서는 人 보다, 又 에 가깝게 보입니다. 주운대에서는 안 보이고..
躬의 뜻은 '몸소' 그런 뜻입니다.
率은 '거느릴 솔' 뒤에 목적어가 와야 자연스럽습니다.
住은 탁본에서는 '두인변'이 안 보입니다.
덧붙이자면.. 住 와 往(彳+ 生)는 별개의 또 다른 글자란 말이죠.
住= 거주하다 주, 사람의 姓(성)을 표현. 등으로 다른 글자입니다.
*負山에서 쌍구본은 잘못 나와 있는데, 山이 맞는 것이고..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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