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1年~33年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19년, 20년, AD144년, AD145년

라디오에요 2009. 10. 20. 07:56

 

 

 

十九年 正月 以摩帝爲伊伐飡 美禮爲稟主 吉門爲都護使 支所禮爲南路軍事 樊五爲京路軍事 加亥曷名爲軍母 吉元爲馬政大師 沙乙那爲馬母 車門允良爲別軍使 上幸美禮于政堂 上自昨冬 累幸摩帝宅 寵愛美禮 復其稟主 至是命入常侍 賜權妻毛多于摩帝 以爲密妻

19년(AD144년) 1월, 摩帝(마제)를 伊伐飡(이벌찬)으로, 美禮(미례)를 稟主(품주)로, 吉門(길문)을 都護使(도호사)로, 支所禮(지소례)를 南路軍事(남로군사)로, 樊五(번오)를 京路軍事(경로군사)로, 加亥(가해)와 曷名(갈명)을 軍母(군모)로, 吉元(길원)을 馬政大師(마정대사)로, 沙乙那(사을나)를 馬母(마모)로, 차문과 允良(윤량)을 別軍使(별군사)로 삼았다. 상은 政堂(정당)으로 美禮(미례)에게 행차하였다. 상은 작년 겨울부터 摩帝(마제)의 집으로 누차 행차하였다. 美禮(미례)를 총애하여, 다시 그녀를 稟主(품주)로 복귀시켰다. 이때 이르러 들어 오길 명하여 항상 시중들도록 하였다. 權妻(권처) 毛多(모다)를 摩帝(마제)에게 하사하여, 密妻(밀처)로 삼게 하였다.

 

五月 以君乙爲水路軍事 以權妻多利妻之 多利爲君乙之侄 情皃相似 潛通于井而有娠 上許與之吉 上召伊利生主之 是日以允良爲井頭 啓其爲別軍使

5월, 君乙(군을)을 水路軍事(수로군사)로, 權妻(권처) 多利(다리)를 그의 처로 삼았다. 多利(다리)는 君乙(군을)의 조카인데, 성격과 얼굴이 서로 닮았고, 井(정)에서 潛通(잠통)하여 임신하였다. 상은 그와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상은 伊利生(이리생)을 불러 결혼을 주관하도록 하였다. 이날 允良(윤량)을 井頭(정두)로, 啓其(계기)를 別軍使(병군사)로 삼았다.

 

*3월인지, 5월인지 원문이 불확실함.

 

*上章敦牂(상장돈장)에 君乙(군을)은 大樹(대수)의 아들이고, 多利(다리)는 계보도가 없다. 192년 2월 기사에서 多利(다리)는 일성이사금(윤공과 이리생의 아들)의 누나라고 하고, 결혼을 주관한 사람이 伊利生(이리생)이므로, 多利(다리)가 伊利生(이리생)의 딸이라고 추측된다. 伊利生(이리생)은 大樹(대수)의 딸이다. 즉, 君乙(군을)은 多利(다리)의 외숙부가 된다.

 

七月 居陀君斯牟遣使 稱臣曰 “臣父節公臨崩 命臣朝我祖國 今遣河波等上貢 請以骨女妻 臣以爲南藩” 上嘉其節 命以半阿妻之 賜爵阿飡 賜其母胡母大紫衣

7월, 居陀君(거타군) 斯牟(사모)가 사신을 보내, 臣(신)을 칭하며 말하기를 “臣(신)의 아버지 節公(절공)이 죽음에 임하여, 臣(신)에게 명하길 저의 조상의 나라(신라)를 알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河波(하파) 등을 보내 공물을 올리니, 骨女(골녀)를 처로 삼기를 청합니다. 臣(신)을 南藩(남번)으로 삼아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상은 그 절개를 칭찬하고, 半阿(반아)를 시집보내도록 명하였고, 벼슬 阿飡(아찬)을 하사하였다. 그의 어머니 胡母(호모)에게 大紫衣(대자의)를 하사하였다.

 

*이 기사는 파사이사금기 20년, AD145년 9월, 가야와 전쟁의 원인이 되고, 487년 10월에는 居陀(거타)와 阿羅(아라)의 국경분쟁 기사가 있다.

 

九月 以順貞角干爲六部頭上 彡善仙母頭上

9월, 順貞(순정) 角干(각간)을 六部頭上(6부두상)으로, 彡善(삼선)을 仙母頭上(선모두상)으로 삼았다.

 

 

 

二十年 正月 發良爲伊伐飡 干時爲稟主

20년(AD145년) 1월, 發良(발량)을 伊伐飡(이벌찬)으로, 干時(간시)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七月 大風三日 大井南神樹自倒 命巫祓之

7월, 큰 바람이 3일 동안 불었다. 大井(대정)의 南神樹(남신수)가 스스로 넘어졌다. 무당에게 굿을 하도록 명하였다.

 

*大井(대정)은 金城(금성)과 같은 곳이다.

 

九月 加耶女與半阿爭位 加耶襲居陀 長世聞急救之 戰沒 上怒 命吉門率京騎一千 引南水勇士五千三路掩殺 大獲勝利

9월, 加耶女(가야녀)와 半阿(반아)가 자리를 다투었다. 加耶(가야)가 居陀(거타)를 습격하였다. 長世(장세, 加召城主)가 소식을 듣고 급히 구하러 갔으나, 싸우다 죽었다. 상은 노하여, 吉門(길문)에게 명하여 京騎(경기) 1천명을 이끌게 하였고, (상은) 南水(남수, 南路와 水路)의 勇士(용사) 5천명과 三路(3로)를 이끌고 습격하여 (적을) 죽였고, 勝利(승리)를 크게 얻었다.

 

*신라본기와의 비교에 의해, 파사이사금이 직접 전쟁에 뛰어 든 것이 확인됨.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17년, AD96년.

十七年 秋七月 暴風自南 拔金城南大樹 九月 加耶人襲南鄙 遣加城主長世拒之 爲賊所殺 王怒率勇士五千 出戰敗之 虜獲甚多

17년(서기 96) 가을 7월에 폭풍이 남쪽에서 불어 金城(금성) 남쪽의 큰 나무가 뽑혔다. 9월에 加耶人(가야인)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였으므로 가성주(加城主) 장세(長世)를 보내 막게 하였으나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왕이 분노하여 용맹한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나가서 싸워 그들을 깨뜨렸는데, 사로잡거나 죽인 자가 매우 많았다.

 

*AD145년- AD96년= 49년 편차.   20년- 17년= 3년 편차.

*吉門(길문)이 가야 전쟁에 참석한 사항이 빠져 있음.


十月 上與美禮入冬宅 愛有公 稟主干時妬之曰 “妾以承寵稟主 反屈於前稟乎” 上曰 “汝亦生子如此 則當如此” 干時曰 “人言夫今不好色 我謂大好色” 上怒復以美禮爲稟主 摩帝伊伐飡 流發良干時于推火

10월, 상은 美禮(미례)가 冬宅(동택)으로 들어갔다. 사랑은 공평함이 있었지만, 稟主(품주) 干時(간시)가 이를 질투하며 말하기를 “妾(첩)은 총애를 받는 稟主(품주)로서 전의 稟主(품주)에게 반대로 굽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너도 역시 이처럼 아들을 낳으면, 마땅히 이와 같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干時(간시)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夫今(부금)께서는 色(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저는 色(색)을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노하여 다시 美禮(미례)를 稟主(품주)로, 摩帝(마제)를 伊伐飡(이벌찬)으로 삼았다. 發良(발량)과 干時(간시)를 推火(추화)로 유배보냈다.

 

*謂 (2) 생각하다. 생각하건대.
    [예문] 人皆謂 卿但知經術 不曉時務〈宋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