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고구려)

고구려 5부- 翰苑(한원)

라디오에요 2010. 6. 28. 10:02

 

 

http://www.zinbun.kyoto-u.ac.jp/~takeda/edo_min/edo_bunka/syuitu/edono_kagaku_syuitu_shibu.html


魏略   魏 魚豢 撰

其國大有五族 有消奴部順准奴部樓桂部 微弱桂樓部代之 五部皆貴人之族也 一人内部即後漢書桂樓部一名黃部一名黃部 二曰北部即絶奴部即絶奴部即名後部一名黒部 三曰東即順奴部一名在部一名上部一名青部 四曰南部即奴部一名前一名赤部 五曰西部即消奴部也一名右部 其北部如燕内部 姓高即王族也 高麗稱無姓者皆内部也 又内部雖爲王宗列在東部之下 其國從事以東爲首故東部居上 同上

 

(머털도사가 퍼 온 翰苑(한원))

魏略曰

其國大有五族 有消奴部順准奴部樓桂樓部 徵弱桂樓部代之 五部皆貴人之族也 一人內部卽後漢書桂樓部一名黃部一名黃部 二曰北部即絕奴部即絶奴部即名後部一名黑部 三曰東即順奴部一名在部一名上部一名靑部 四曰南部即奴部一名前一名赤部 五曰西部即消奴部也一名右部 其北部如燕內部 姓高即王族也 高麗稱無姓者皆內部也 又內部雖爲王宗列在東部之下 其國從事以東爲首故東部居上

 

 

1, 內部(내부)= 桂樓部(계루부)= 桂婁部(계루부)= 黃部(황부)

2, 北部(북부)= 絕奴部(절노부)= 絶奴部(절노부)= 准奴部(절노부)= 奴部(노부)= 後部(후부)= 黑部(흑부)

3, 東部(동부)= 順奴部(순노부)= 部(좌부)= 上部(상부)= 青部(청부)

4, 南部(남부)= 桓那部(환나부)= 奴部(관노부)= 前部(전부)= 赤部(적부)

5, 西部(서부)= 消奴部(소노부)= 涓奴部(연노부)= 右部(우부)

 

 



孺留紀(유류기)

三年 甲辰 正月 分國中爲五部 以順奴奴賜沸流 治之 都彌鄒忽(密山) 以奴桂婁賜溫祚 治之 都牛壤 涓奴上治之 兼統黃龍卑離荇人茶諸國事 五部置沛者于台使者評者等職 三月 納禾黍女于後宮 五月 與太后如海山求神仙, 皇后及溫公主馬公主再思公主從之 山鹽山而還 東明神宮成 七月 以松讓女爲妃 作離宮於川凉谷之東西 與皇后溫公主居之 汗南王溫祚入朝 以牛壤狹小 請移都於尉那城(鏡泊湖東岸) 許之 上謂皇后曰 溫祚年雖十七 奏事明白 勝於沸流 南方無憂矣 皇后曰 沸流幼多疾病 未得敎誨 故徒善而已 溫祚自幼勇壯 馬黎敎之 故如此當爲陛下之一臂 上曰 豈徒臂哉 渠是我而我是渠也 皇后大喜曰 豈料聖恩如此哉 溫祚歸國 皇后欲往汗南曰 妾容皃已衰愧老牝 請赴汗犢 上止之曰 先帝以卿遺朕 而禁殉者欲固邦本也 卿若赴汗 與誰爲國 追念先帝 無使朕孤 依宗國 無失民望 皇后乃喜而止 十月 溫公主難産而崩 春秋二十 上哀慟之 減食二日 十二月 阿爾后生女玄

 

3년 갑진(BC17년) 1월, 國中(국중)을 나누어 五部(5부)로 삼았다. 順奴(순노)와 奴(노)를 沸流(비류)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彌鄒忽(미추홀, 密山)에 도읍하였다. 奴(관노)와 桂婁(계루)를 溫祚(온조)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牛壤(우양)에 도읍하였다. 涓奴(연노)는 상이 다스렸다. 黃龍(황룡국), 卑離(비리국), 荇人(행인국), 茶(구다국)의 여러 國事(국사)를 겸하여 총괄하였고, 五部(5부)는 沛者(패자), 于台(우태), 使者(사자), 評者(평자)등의 직책을 두었다. 3월, 禾黍(화서)의 딸을 後宮(후궁)으로 맞아들였다. 5월, 太后(태후)와 함께 海山(해산)으로 가서, 神仙(신선)를 求(구)하였다. 皇后(황후) 및 溫公主(온공주), 馬公主(마공주), 再思公主(재사공주)는 그를 따랐다. 山(촉산)과 鹽山(염산)을 거쳐, 돌아왔다. 東明神宮(동명신궁)이 완성되었다. 7월, 松讓(송양)의 딸을 妃(비)로 삼았다. 川(골천)의 凉谷(량곡)의 동서에 離宮(리궁)을 지었다. 皇后(황후)와 溫公主(온공주)와 함께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汗南王(한남왕) 溫祚(온조)가 입조하여, 牛壤(우양)이 狹小(협소)하므로, 尉那城(위나성, 鏡泊湖東岸)으로 도읍을 옮기를 청하였다. 이를 허락하였다. 상은 皇后(황후)에게 말하길, " 溫祚(온조)는 비록 17살이지만,  奏事(주사)가 명백하여, 沸流(비류)보다 낫소. 南方(남방)은 걱정이 없구려." 皇后(황후)가 말하길, "沸流(비류)는 어려서 질병이 많아 敎誨(교회)를 받지 못했으므로 徒善(도선)한 것 뿐입니다. 溫祚(온조)는 어려서부터 勇壯(용장)하였고, 馬黎(마려)가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일찍히 폐하의 한쪽 팔이 되었습니다." 상이 말하길 "어찌 단지 한쪽 팔뿐인가?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다" 라고 하였다. 皇后(황후)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길 "어찌 이같은 성은을 생각하리오!" 라고 하였다. 溫祚(온조)가 귀국하니, 皇后(황후)는 汗南(한남)으로 가고 싶어 말하길 "첩의 용모는 이미 쇠하여 부끄러운 老牝(노빈)이 되었으니, 汗南(한남)으로 가서 犢(지독)하기를 청합니다" 상은 그만두라고 말하길 "선제께서는 짐에게 경을 남기셨소. 순장을 금했던 것은 나라의 근본을 단단히 하고자 함이였소. 경이 만약 汗南(한남)으로 간다면, 짐은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며, 先帝(선제)를 追念(추념)하겠소. 짐을 외롭게 하지 말고, 예전처럼 나라를 숭상하면서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 주시오" 라고 하였다. 皇后(황후)는 이내 기뻐하며 그만두었다. 10월,  溫公主(온공주)가 難産(난산)하여 죽었다. 나이 20살이였다. 상은 애통해 하며 2일동안 감식하였다. 12월, 阿爾后(아이후)는 딸 玄(현)을 낳았다.



孺留紀(유류기) 3년, BC17년.

三年 甲辰 正月 分國中爲五部 以順奴奴賜沸流 治之 都彌鄒忽(密山) 以奴桂婁賜溫祚 治之 都牛壤 涓奴上治之 兼統黃龍卑離荇人茶諸國 事五部置沛者于台使者評者等職
3년 갑진(BC17년) 1월, 國中(국중)을 나누어 五部(5부)로 삼았다. 順奴(순노)와 艴奴(발노)를 沸流(비류)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彌鄒忽(미추홀, 密山)에 도읍하였다. 灌奴(관노)와 桂婁(계루)를 溫祚(온조)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牛壤(우양)에 도읍하였다. 涓奴(연노)는 상이 다스렸다. 黃龍(황룡국), 卑離(비리국), 荇人(행인국), 勾茶(구다국)의 여러 나라를 겸하여 통치하였고, 五部(5부)를 다스리기 위해 沛者(패자), 于台(우태), 使者(사자), 評者(평자)등의 직책을 두었다.

 

*順奴(순노)와 奴(노)는 沸流(비류)가 다스렸다.  도읍은 彌鄒忽(미추홀)이다. - 東北(동북) 지방
*灌奴(관노)와 桂婁(계루)는 溫祚(온조)가 다스렸다.  도읍은 牛壤(우양)이다. - 南部(남부)

*涓奴(연노)는 類利王(유리왕)이 다스렸다. - 西部(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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