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왜)

신공 62년의 已本旱岐(이본한기)

라디오에요 2010. 7. 17. 08:23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攝政六二年(壬午 二六二)二月◆     400.   (400- 262= 138년 편차)

六十二年。新羅不朝。卽年遣襲津彦擊新羅。〈百濟記云。壬午年。新羅不奉貴國。貴國遣沙至比跪令討之。新羅人莊餝美女二人。迎誘於津。沙至比跪受其美女。反伐加羅國。加羅國王已本旱岐。及兒百久至。阿首至。國沙利。伊羅麻酒。爾汶至等。將其人民。來奔百濟。百濟厚遇之。加羅國王妹旣殿至。向大倭啓云。天皇遣沙至比跪。以討新羅。而繩新羅美女捨而不討。反滅我國。兄弟人民皆爲流沈。不任憂思。故以來啓。天皇大怒。旣遣木羅斤資。領兵衆來集加羅。復其社稷。一云。沙至比跪知天皇怒。不敢公還。乃自竄伏。其妹有幸於皇宮者。比跪密遣使人間天皇怒解不。妹乃託夢言。今夜夢。見沙至比跪。天皇大怒云。比跪何敢來。妹以皇言報之。比跪知不兔。入石穴而死也。〉

 

大日本史 卷之二百卅七 列傳第百六十四 諸蕃六

初丙寅歲,斯摩宿禰【姓闕。】使於卓淳國。其王末錦旱岐告斯摩曰:「甲子歲,百濟人久氐、彌州、流莫古三人來于此,曰:『百濟王使臣等使於日本朝,故來假路。』時海路未通,乃告以實。久氐歸其國,具船楫,且曰:『貴朝使至者急相報。』今即為可相報。」斯摩即遣傔人爾波移、卓淳人過古於百濟,慰諭其王。【○本書一說引百濟記曰,壬午歲,葛城襲津彥討新羅。襲津彥納新羅女幣,捨而不討,反伐加羅。其王己本旱岐及子百久氐、阿首至、國沙利、依羅麻酒、爾汶至等,率其人民奔百濟。百濟厚遇之。己本旱岐遣其妹既殿至入朝,告襲津彥納新羅美女,反討加羅。帝大怒,即召木羅斤資往加羅,安集人民,復其社稷。此說與本書異,故不採。】應神帝十四年,弓月君率百二十縣人口歸化,為新羅所閼,人口咸留加羅。使葛城襲津彥召其人口,襲津彥亦為新羅所遏,三年而不還。平群木菟、的戶田奉詔至加羅,觀兵於新羅之境。新羅懼,還襲津彥及人口。【日本紀。】二十五年,大倭木滿致稱承朝旨,專于任那。帝聞,徵還之。【日本紀本書一說引百濟記。】雄略帝七年,以吉備上道田狹為任那國司。明年,高麗攻新羅。新羅使人告任那王曰:「弊邑為高麗所攻,危過於累卵。伏請王為弊邑乞救日本府行軍元帥。」任那王為請膳斑鳩、吉備小梨、難波赤目子,救新羅。斑鳩等往救之,大破高麗軍而還。顯宗帝三年,紀大磐【○本書或作生磐。】據任那,交通高麗、欲并吞三韓。營建官府,自稱神聖。用任那左魯那奇、他甲背等計,殺百濟適莫爾解於爾林。築帶山城,梗垂東道,斷運糧津 百濟遣兵攻帶山城,大磐兵食共盡逃還。百濟殺左魯那奇、他甲背等三百餘人。【日本紀。】

 

 

已本旱岐(이본한기)

 

일본서기 신공 62년의 주석에 작은 글씨로 들어가 있는 백제기의 내용입니다.

보통 일본서기 text판에서는 己本旱岐(기본한기)로 되어 있죠.

 

그런데, 이 가라국왕의 이름은 己本旱岐(기본한기)가 아니라, 바로 已本旱岐(이본한기)라는 것입니다.

 

일본서기 원본에는 巳本旱岐(사본한기)로 나와 있으나,

巳(사)라는 글자를 일본어사전으로 찾아 보면,

 

 

     

뱀 사(총획수 3획) 부수:(3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