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loc.gov/search/?in=&q=%E7%9B%9B%E4%BA%AC%E5%85%A8%E5%9C%96&new=true&st=
https://www.loc.gov/resource/g7823l.ct003248/?r=0.442,0.653,0.174,0.103,0
盛京全圖
Q: 오늘은 광개토비문 영락 14년조를 살펴볼까나..
A: 재미있는 주제군요.
Q: 그려..
영락 14년조는 광개토비문중에서 3면, 맨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문장을 말하지..
우선.. 解法者라는 일본놈이 올린 글을 참조해 가면 살펴 보자구..
이 게시판의 글은 내가 간간히 들어가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사이트이지..
http://www.asahi-net.or.jp/~xx8f-ishr/nicho18.htm
十四年甲辰 而倭不軌帯方界 和通残□ 至石城□ 連船□□□ 王躬率□□ 従平壌 □□ □鋒相遇
解法者라는 자가 올린 영락14년 해석문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뭐가 빠진 것 같지?
A: 帯方界 앞에, '侵入' 이라는 글자가 2개 빠져 있군요.
十四年甲辰 而倭不軌(侵入)帯方界
이렇게 말이죠.
Q: 응.. 맞았어.. '侵入' 이라는 글자가 빠져 있어..
解法者란 녀석이 올린 해석문에서는 빠져 있지..
A: 탁본을 봐야 하겠네요. 올린 사진은 解法者 일본놈이 올린 동경대 탁본이군요?
Q: 응.. 동경대 소장본인데.. 아주 좋은 순본은 아니지.. 그냥 참고용으로는 괜찮아..
A: 不軌(불괘)라는 문장이 보이는데.. 뜻이 뭔가요?
Q: 不軌(불괘)라는 말은 "법규를 어기다" "반역을 꾀하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되.. 일본놈도 '不法(불법)' 이라고 적어 놨지..
"② 「不軌」とは、「不法」という意味である。"
A: 和通残□ 에서 빠진 글자는 뭔가요?
Q: 응.. 일본놈이 다시 말하지..
⑤ 「残□至」の欠字であるが、「王 健群」は「兵」であるとする(前掲書 231頁)。
意味としてはそれで良いと思えるが、拓本を精査してもやはり判読できない。
왕건군은 빠진 글자를 '兵' 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듯하지?
A: 네.. '残兵= 백제의 군대' 을 말하겠네요..
Q: 응.. 404년, 영락 14년에 왜가 백제와 和通했다는 뜻이 되는거지..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대방땅으로 침입해 들어 온 사건을 말하는거지..
A: 2번째 사진은 뭔가요?
Q:
http://search.i815.or.kr/subContent.do
http://search.i815.or.kr/ImageViewer/ImageViewer.jsp?tid=ns&id=GU1912120803-01
저것은 권업신문 1912년 12월 8일자 신문기사를 오려낸 사진이야..
일본놈 해석문하고는 다르게 나와 있지?
A: 다르게 나와 있군요.
和通残兵
太王率兵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帯方界 和通残□ 至石城□ 連船□□□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帯方界 太王率兵 □石城島 連船渡海
http://db.history.go.kr/url.jsp?ID=gs_kh_001_0010_0010_0030
第三面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太王率兵自石城島運渡海迅抵帶方倭退追至勾
http://club.xilu.com/wave99/msgview-950484-24955.html 瀋故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太王率兵自石城島連船渡海迅抵帶方
(甲辰 = AD404년)
그런데, 4번째 글자는 똑같이 '兵'으로 되어 있군요.
Q: 응.. 왕건군이 허튼 소리는 안 했다는게 느껴지지?
4번째 글자가 똑같이 '兵'으로 나오니까.. 3번째 글자는 확실하지 않지만..
4번째 글자만큼은 '兵' 이라는 글자가 맞을 확율이 높은거지..
그 다음 글자를 볼까?
至石城□
건업신문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노?
A: '石城島' 라고 나오네요.
좀 그럴 듯하게 보이네요.
Q: 만일 건업신문에 나온 해석문대로 '石城島'가 맞다면..
고지도에서 '石城島'가 표시된 곳이 바로 '대방땅'이 되는거지..
A: 고지도에서 '石城島'라는 지명을 찾아 봤나요?
Q: 찾아 봤지.. 고지도에 나오긴 나오지..
대개 고지도에서는 요동반도 남단 쪽에 '石城島'라는 섬이 표시가 되어 있지..
거기에는 고구려성이 유명한게 있지..
영락14년이 나온 탁본은 비석의 표면이 떨어져 나가기 전에.. 수량은 적지만 몇몇 탁본이 남아 있거든..
저 건업신문의 해석문도 남아 있던 탁본을 보고 해석문을 적은 그 계통의 하나인 셈이지..
A: 비석의 표면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 전에 뜬 탁본이 존재하는군요..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 至石城島 連船渡海□ 王躬率□□ 從平穰 □□先鋒 相遇王幢 要截盪刺 倭寇潰敗 斬殺無數
Q: 탁본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희귀한 편으로... 나름대로 영락 14년 비문 문장을 복원해 보았어..
連船渡海
건업신문에서는 連船(연선) 다음에 渡海(도해)라고 해 놨지?
A: 그렇게 해독해 놓았네요. 문맥은 잘 맞군요.
Q: 문맥은 잘 맞는 편이지..
건업신문에 나와 있는 해독문은 '榮禧(영희)'가 해독한 문장과는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르지..
'榮禧(영희)' 해독문은 이렇게 되어 있지..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太王率兵 自石城島 運□渡海迅 抵帶方倭 退追至勾 滿城然後 相遇王慬 自蕆盪㓨 殺倭潰取 斬煞無數
A: 건업신문과는 같으면서도.. 틀린 부분이 있군요.
Q: 다른 부분이 군데군데 있지.. 서로 달라..
A: 王躬率□□
이 문장에서 일본놈은 왕건군의 해석을 적어 놓았는데..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往討'라고 해 놨던데..타당한가요?
⑩これに続く欠字も判読不明である。「王 健群」は、最初の欠字を「住」あるいは「往」
とし、次の欠字を「討」と読んでいる(前掲書 231頁)。意味はともかく、拓本を
精査しても欠字である。彼の勝手な想像だと思える。
Q: 王躬率步騎
이렇게 뒤에는 步騎(보기)와 비슷한 문장이 와야지 문맥이 자연스러운거지..
그러므로 왕건군의 주장은 참조는 하되.. 믿지는 말아야 하지..
A: 從平穰 에서.. '從'은 '~로부터' 로 해석하는게 옳은거죠?
Q: 응.. 일본놈도 그렇게 해석해 놨지..
광개토왕이 평양에서 출발하여.. 전선으로 출발한 것을 나타냈으니까..
⑪「従」の意味は、「から」(出発点)と解して良い。これを「経由して」と解する者も
いるが(「白崎昭一郎」-前掲書 257頁)、王(広開土王)はこれまでも「平壌」
を拠点としていることから「から」(出発点)と考えるのが妥当であろう。
A: □□先鋒相遇 에서 앞의 결락자는 알아 내기 힘든가요?
Q: 현재로서는 파악하기가 힘든 편이지..
초기 원석탁본에서도 완전 결락되어 있는 편이라.. 일부 남아 있는 해석문을 기초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
先鋒(선봉)이라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지.. 문맥도 잘 맞는 편이고..
⑫「□鋒相遇」の最初にある欠字は読むことができないが、「先」で「先鋒」となるの
であろう。その後に続く「相遇」と相まって、「先鋒部隊が敵と遭遇した」となる。
A: 王幢(왕당)은 '왕의 깃발'을 뜻하는 말이죠?
⑬「王幢」(おうとう)とは、「王の旗印」のことをいう。
Q: 응.. 군대가 전쟁 나가면서.. 깃발을 앞장세워서 가는 것은 상식이지..
A: 要截(요절)은 무슨 뜻인가요?
Q: 要(요)는 '잠복하여 기다리다' 라는 군사적인 용어야..
要 (11) 잠복하여 노리다.
[예문] 將要而殺之〈孟子〉
⑭「要截盪刺」の「要」は「待ち伏せする」、「截」(せつ)は「断ち切る」、「盪」
(とう)は「ほしいままにする」、「刺は「刺す」、「斬る」、の意味である。これら
を合わせると、「待ち伏せして、縦横無尽に斬まくる」(ようせつとうし)となる。
截(절)이라는 글자도 '짜르다. 끊다' 라는 뜻이지..
切(절)과 같은 뜻이지만.. 부수에 戈(과)라는 글자가 내포하고 있어서..
주로 군사적인 용어로 쓰일 때 사용되는 글자인 셈이지..
A: 그렇구만요..
Q: 그래서 최종적으로 영락 14년 문장을 복원해 보았어..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 至石城島 連船渡海□ 王躬率□□ 從平穰 □□先鋒 相遇王幢 要截盪刺 倭寇潰敗 斬殺無數
連船渡海(연선도해) 라는 표현은 다들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을테지..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 至石城島 連船渡海边 王躬率□□ 從平穰 □□ 先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 斬殺無數
石城島이란 글자가 만일 맞다면,
왜 왜군이 石城島라는 섬에 도착했을까??
무엇때문에??
至石城島 連船渡海边
石城島에 도착해서는 連船渡海边(연선도해변)라고 적어 놨지..
"배를 서로 연결해서 해변을 건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A: 파도가 많이 치고.. 날씨가 안 좋았군요?
Q: 맞았어.. 그게 핵심이지..
왜군이 고구려를 침입하려고 들어 왔는데.. 하늘이 도와 주지 않은거지..
지리도 익숙치 않은 상태에서.. 오긴 왔는데.. 파도도 많이 치고.. 바람도 많이 불었을테지..
임시 피난처로 石城島에 도착했을텐데.. 그렇게 시간을 지체했을테니..
왜군은 어떻게 됬을까??
A: 해안선을 지키던 고구려 병사들에게 쉽게 발각이 되었겠군요?
Q: 응.. 바로 그거야..
왜군이 해안으로 상륙했을 때, 고구려 군사들은 해안에서 잠복해 있다가..
왜군을 완전 몰살시켰을거라는거지..
영락14년, 404년 왜군은 날씨가 안 좋은 상태에서 접근해 오다가.. 고구려군한테 쉽게 발각이 되어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을테지...
그런데, 3년후, 영락 17년, 407년은 완전 달라지지..
사람이 한번 속지 두번은 속지 않거든..
A: 영락17년에는 왜군과 고구려군이 정면대결을 펼쳤군요?
Q: 응.. 407년에는 왜군이 고구려 평양성 근처에까지 접근하여.. 양측 사상자도 많았고..
일대격전을 벌이고 나서야.. 고구려는 왜군을 물리칠 수가 있었어..
http://www.asahi-net.or.jp/~xx8f-ishr/nicho18.htm
◆◆◆ 広開土王碑(23) 投稿者:解法者 投稿日:2011年 2月16日(水)13時00分19秒◆◆◆
>碑文の解釈(20)<
5.「十四年甲辰」条
「十四年甲辰而倭不軌帯方界和通残□至石城□連船□□□王躬率□□従平壌□□□鋒
相遇王幢要截盪刺倭寇潰敗斬殺無数」(第3面3行7字~4行20字)
① 「十四年甲辰」とは、「広開土王の在位14年甲辰年〔405年〕)」をいう。
② 「不軌」とは、「不法」という意味である。
③ 「帯方界」とは、あの有名な「楽浪・帯方、倭人有り」の「帯方」をいい、現在の
北朝鮮の黄海道(38度線の北側)一帯を指す。
④ 「和通」、「和」については拓本を精査すると「禾」が見られるので、その後の「残」
(「百済」)との関連から、「和」としても誤りはなかろう。「通」については、これを
欠字だとする者が多いが(「白崎昭一郎」-前掲書 253頁、「武田幸男」-前掲書
318頁)、拓本を精査すると「?」が確認され、やはり、その後の関連から「通」で
あると判断した。「王 健群」も同様の見解である(前掲書 231頁)。意味は、「倭」
と同盟した」である。
⑤ 「残□至」の欠字であるが、「王 健群」は「兵」であるとする(前掲書 231頁)。
意味としてはそれで良いと思えるが、拓本を精査してもやはり判読できない。
⑥ 「石城」、固有名詞である。ただ、場所は確認できないが、「倭軍」と「帯方界」で
戦闘を交えていることから、黄海道にあったと考えられよう。
⑦ 「連船」、これはそのとおり判読できるが、「単に船を連ね」と読むのが一般的であり
(『天皇と日韓古代戦史』牛島康允 自然と科学社 1993年12月25日 189頁、
「白崎昭一郎」-前掲書 255頁)、異論を見ない。解釈はこれで良いと思う。
問題は、その主語が何かである。まず、主語を「倭」とする考えがある(「朴 時亨」
-前掲書232頁、「上田正昭」〔『日本古代国家論究』塙書房 1969年11月 73
頁〕、「武田」①-135頁)。これは明治時代からある考え方で(「菅 政友」
〔「高麗好太王碑銘考」[『史学会雑誌』第2編第24号 51頁]〕、「那珂通世」
〔「高句麗古碑考」[『史学会雑誌』第4編第49号 43頁]〕)、ほぼ、通説化して
いた。それでも主語を「高句麗」とする考えがあった(「福田芳之助」〔『新羅史』
若林春和堂 1927年 89頁〕。しかし、これは福田が勝手に碑文に「大王」(
「高句麗王」)を挿入したもので、信じるに値しない。だが、こういう考えも有り得る
のではないかとの疑問が投げかけられている(「高句麗広開土王碑文の再検討」佐伯有
清〔『続日本古代史論集上巻』阪本太郎博士古稀記念会 吉川弘文館1972年7月1日
40頁〕)。しかし、これは疑問だけで、主語が「高句麗王」とは断定してない。ただ、
前の部分が「倭」が主語になっていることから、ここでの主語もやはり「倭」と解する
のが妥当ではないかと思える。
◆◆◆ 広開土王碑(24) 投稿者:解法者 投稿日:2011年 2月18日(金)13時05分43秒◆◆◆
>碑文の解釈(21)<
⑧「連船」に続く欠字は全く読むことができない。おそらく「倭軍」が攻略した城など
が入ると思えるが、わからない。
⑨「王躬率」は、「王(広開土王)が自ら軍を率いて出陣した」の意味である。
⑩これに続く欠字も判読不明である。「王 健群」は、最初の欠字を「住」あるいは「往」
とし、次の欠字を「討」と読んでいる(前掲書 231頁)。意味はともかく、拓本を
精査しても欠字である。彼の勝手な想像だと思える。
⑪「従」の意味は、「から」(出発点)と解して良い。これを「経由して」と解する者も
いるが(「白崎昭一郎」-前掲書 257頁)、王(広開土王)はこれまでも「平壌」
を拠点としていることから「から」(出発点)と考えるのが妥当であろう。
⑫「□鋒相遇」の最初にある欠字は読むことができないが、「先」で「先鋒」となるの
であろう。その後に続く「相遇」と相まって、「先鋒部隊が敵と遭遇した」となる。
⑬「王幢」(おうとう)とは、「王の旗印」のことをいう。
⑭「要截盪刺」の「要」は「待ち伏せする」、「截」(せつ)は「断ち切る」、「盪」
(とう)は「ほしいままにする」、「刺は「刺す」、「斬る」、の意味である。これら
を合わせると、「待ち伏せして、縦横無尽に斬まくる」(ようせつとうし)と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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