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菊露秋寫(국로추사) 辰斯王(진사왕) 정서 1/2

라디오에요 2009. 1. 20. 10:11

 

 

 

2007년 10월달에 전에 해석을 해서 올린 국로추사 진사왕편입니다.
이를 다시 정서해 보도록 합니다.

菊露秋寫(국로추사)

辰斯王(진사왕)

[諱辰斯 枕流王弟] 在位七年
[휘는 진사, 침류왕의 동생] 재위 7년.

○丙戌 元年[羅三十年 麗二年]
병술 (386년) 원년 [신라 30년, 고구려 2년]

二月 王令國中 徵男女十五歲以上 大設關防 自靑木嶺 北距八坤城 西至大海 而衛戍
2월 왕이 나라안에 명하여 남녀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關防(관방)을 크게 설치하였다. 청목령에서부터
북쪽의 팔곤성까지 달하였다. 서쪽은 대해에 이르렀으며, 戍(수)를 지켰다.

八月 麗王 發兵攻濟 王遣鮮于老 說麗王曰 兩國之民罷於兵革 四境蕭然 未可以武決雄 願結和親 欲以慰下之心 大王策安決在乎 麗王默然良久 遂許和親 而返旆[見東史]
8월 고구려왕은 병사를 발진시켜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은 鮮于老(선우노)을 보내어 고구려왕을 설득하며 말하길, "양국의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달프고 사방의 경계는 적막하니, 武(무)로서 결웅하기는 어렵습니다. 화친을 맺기를 원합니다. 신하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길 바라며, 대왕께서는 安(안)을 택하여 결정하여 주시옵소서" 고구려 왕은 아주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화친을 허락하고 旆(기)를 돌려 되돌아갔다. [견동사]

○丁亥 二年[羅三十一年 麗三年]
정해 (387년) 2년 [신라 31년, 고구려 3년]

九月 王拜眞嘉謨爲達率 以韓豆知爲恩率使 伐靺鞨戰於關嶺 久圍不決 王乃使使持節引兵而還 [見濟史]
9월 왕은 眞嘉謨(진가모)를 배알하고 달솔로 삼았고, 韓豆知(한두지)를 은솔사로 삼았다. 말갈을 쳐서 關嶺(관령)에서 싸웠다. 오래동안 포위를 했으나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왕은 이내 사지절로 하여금 병사를 이끌고 돌아오게 하였다. [견제사]

○庚寅 五年[羅三十四年 麗六年]
경인 (390년) 5년 [신라 34년, 고구려 6년]

八月 王 以眞嘉謨爲車騎都尉 將兵數千 伐高句麗 拔都坤城 虜男女二百人而還 王大說 拜嘉謨爲兵官佐平[見濟史]
8월 왕은 진가모를 거기도위로 삼았다. 장병 수천명이 고구려를 쳐서, 都坤城(도곤성)을 함락시켰고, 남녀 2백명을 노획하여 돌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가모를 배알하고 兵官佐平(병관좌평)으로 삼았다.

○辛卯 六年[羅三十五年 麗七年]
신묘 (391년) 6년 [신라 35년, 고구려 7년]

正月 王修宮室鑿池 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정월 왕은 궁실을 고치고, 연못을 파고, 여러 종류의 이름있는 꽃으로 가산을 만들고, 기이한 새, 꽃, 짐승들을 길렀다.귀와 눈이 좋아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마음과 뜻은 즐기는 바이다.

四月 靺鞨襲擊濟北鄙 掠石峴城[見濟史]
4월 말갈이 백제의 북도를 침략하였다. 석현성을 빼앗았다. [견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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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신묘년 기사부터 점검해 봅시다.

正月 王修宮室鑿池 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王修宮室鑿池 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王修宮室 鑿池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띄워쓰기부터 잘못되었지요.

앞서 2개의 사서를 해석했으므로.. 王修宮室가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죠.

王修宮室
= 왕은 宮室를 수리하였다.

鑿池造佳山
穿池造山
穿池造山

고구려사초와 백제본기에서는 穿(천)이 쓰였고 여기서는 鑿(착)이 쓰였습니다.

국가전자도서관에서 국로추사 원문에서 鑿(착)을 살펴보면
'의사'할 때의 醫 위의 글자, 殹(예)+ 金 이 붙어 있는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사전에서는 완전 똑같은 글자는 아니지만..이체자가 27가지정도가 나옵니다.

鑿= 뚫을 착, 구멍 조, 새길 촉  ㉠뚫다 ㉡파다 ㉢깎다 ㉣(쌀을)쓿다(곡식을 찧어 속꺼풀을 벗기고 깨끗하게 하다) ㉤집요하게 파헤치다 ㉥요란하게 두드리다 ㉦자세(仔細ㆍ子細)히 따지다 ㉧뚜렷하다 ㉨명확하다(明確--)...  

넘어가고..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에서 多種名花를 '다양한 종류의 이름있는 꽃들' 이렇게 해석했었는데.. 이렇게 하면 이 문장이 공중으로 떠버립니다.

'다양한 종류의 이름있는 꽃이 기이한 새를 길렀다.'

뒤의 문장은 해석이 되는데, 앞의 문장이 자리를 못 찾는거죠.

種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種 [동사]
(1) (씨를) 뿌리다. (모를) 심다. 기르다. 경작하다.  
(2)〈의학〉 접종하다.  

多種名花
= 이름있는 꽃들을 많이 심었다.

養奇禽華獸
= 기이한 새들과 화려한 짐승들을 길렀다.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

之所 구문이죠.

悉는 '갖추다' 가 적당한거 같네요.
그래서 해석해 보면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갖추고, 마음이 즐거운 것을 추구하였다.

다르게 의역할 수 있으니 적당히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四月 靺鞨襲擊濟北鄙 掠石峴城[見濟史]
=4월 靺鞨은 백제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石峴城을 빼앗았다. [견제사]

鄙 더러울 비/마을 비 ㉭변방(邊方), 변경(邊境)

北鄙= 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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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 王修宮室 鑿池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 1월 왕은 宮室을 수리하였다. 연못을 파고, 佳山을 만들고, 이름있는 꽃들을 많이 심고, 기이한 새들과 화려한 짐승들을 길렀다.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갖추고, 마음이 즐거운 것을 추구하였다.

四月 靺鞨襲擊濟北鄙 掠石峴城[見濟史]
= 4월 靺鞨은 백제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石峴城을 빼앗았다. [견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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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月 王令國中 徵男女十五歲以上 大設關防 自靑木嶺北距八坤城 西至大海 而衛戍
= 2월 왕은 나라안에 령을 내려 15살이상의 남녀를 징발하여 關防을 크게 설치하였다. 북쪽의 靑木嶺에서부터 八坤城까지인데 서쪽은 大海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戍을 방어하였다.

관방 [關防]
[명사]
1 국경을 지킴.
2 부정행위를 막음.
3 변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

设防  shèfáng    (1)[동사] 방어 시설을 하다. 방어진을 치다. 「步步设防; 곳곳에 방어 시설을 하다」 「设防地带; 방어 지대. 요새화 지대」   (2)[명사] 경계심(警戒心). 「互不设防; 서로 경계심을 풀다」

大設關防 自靑木嶺北距八坤城 西至大海 而衛戍
大設關防 自靑木嶺北距八坤城西 至大海 而衛戍

自靑木嶺北距八坤城西 부분은 關防을 설명하는 문장이죠.

自靑木嶺北
距八坤城西

<장소이름 + 방향> 식의 문장 구성으로 많이 되어 있으니까..
후자쪽으로 선택해도 좋습니다.

自靑木嶺北距八坤城西 至大海
= 靑木嶺 북쪽에서부터 八坤城 서쪽까지 이르렀다. (關防은) 大海까지 이르렀다.

距 (2) [동사] 떨어지다. 사이를 두다.
    相距数里; 몇 리 떨어져 있다
    距今已有十载; 지금으로부터 이미 십 년이 되었다

㉠상거하다(相距--: 서로 떨어져 있다), 떨어지다
㉡떨어져 있다
㉣이르다, 도달하다(到達--)

위의 해석에서는 距= 至 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위수 [衛戍]  [명사]
1 <군사>부대가 일정한 지역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면서 경비하는 일.
2 <역사>=수자리.

衛戍은 관용어로도 쓰이는 말인데 여기서는 '戍을 방어하다' 로 해 봤습니다.

최종해석은 이렇게 해 보았습니다.

二月 王令國中 徵男女十五歲以上 大設關防 自靑木嶺北距八坤城西 至大海 而衛戍
= 2월 왕은 나라안에 令을 내려 15살이상의 남녀를 징발하여 關防을 크게 설치하였다. 북쪽의 靑木嶺에서부터 서쪽의 八坤城까지인데 (關防은) 大海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戍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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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 麗王發兵攻濟 王遣鮮于老 說麗王曰 "兩國之民罷於兵革 四境蕭然 未可以武決雄 願結和親 欲以慰天下之心 大王策安決在乎" 麗王默然良久 遂許和親 而返旆[見東史]
= 8월 고구려왕은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은 鮮于老(선우로)를 보내 고구려왕을 설득하며 말하길, "양국의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달프고, 사방의 국경은 조용하니, 武로서 決雄할 수 없습니다. 和親을 맺기를 원합니다. 천하의 민심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大王께서 어떻게 계책을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고구려왕은 아주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화친을 허락하고 旆(깃발)을 되돌렸다. [견동사]

麗王發兵攻濟
고구려왕은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다.

王遣鮮于老 說麗王曰
백제왕은 鮮于老(선우로)를 보내 고구려왕을 설득하며 말하길,

이때 老는 '로'로 발음해야죠.

兩國之民罷於兵革 四境蕭然
=양국의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달프고, 사방의 국경은 조용하니,

罷= 고달플 피. 그만둘 파.
兵革 [명사]
(1)  무기의 총칭(總稱).  
(2)  전쟁.  

동의어 [兵戈] [兵戟] [兵甲] [兵械] [兵杖] [兵仗]

여기서 於는 '전쟁때문에 고달프니까' 이유,원인,근거를 나타냅니다. ~때문에,~로 인해.

四境
①사방의 경계(境界). 또는, 지경(地境). 사수(四垂) ②천하(天下). 세계(世界)

蕭然(소연) : 쓸쓸하고 고요함. 쓸쓸하고 황량함
蕭 쓸쓸할 소/맑은대쑥 소
㉠쓸쓸하다㉡시끄럽다㉢바쁘다㉣(바람이) 불다㉤떨어지다㉥(말이) 울다㉦맑은대쑥(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물건 소리

未可 wèikě
[조동사] …할 수 없다.  

未可以武決雄 願結和親
= 武로서 決雄할 수 없습니다. 和親을 맺기를 원합니다.

以는 당연히 '~로서'의 수단,방법을 나타내지요.

欲以慰天下之心 大王策安決在乎

欲以慰下之心  天의 누락.
欲以慰天下之心

원문을 본 바 天이 빠졌습니다.

慰= 위로하다. 안정시키다.

이때 以은 생각해 볼 품사이군요.
"欲以" 검색으로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以의 뜻은 借此来 라는 뜻으로 이(것으)로써. 이 기회를 빌어서 라는 뜻입니다.
侯生摄敝衣冠,直上载公子上坐,不让,欲以观公子。"

글쎄요...

이때 欲= ~하고자 하다.의 뜻은 아니고, 의무의 용법이라 생각합니다.
앞의 문장에 願이 나왔으므로, 또다시 나올 리가 없죠.

欲(3) [조동사] …해야 한다.
    胆欲大而心欲细; 대담하고도 세심해야 한다

그래서 해석해 보면,

欲以慰天下之心
=천하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大王策安決在乎

여기서 중심적인 동사와 목적어를 찾으면
決策 입니다.

결책 [決策]  [명사] 방책을 결정함.

在 (5) [동사] …에 있다. …에 달려 있다.
    事在人为; 【성어】 일의 성공 여부는 사람이 하는 바에 달려 있다
    兵不在多在精; 【속담】 병사는 수가 아니라 정예화(精銳化)에 달려 있다
    此次学习目的在增进知识; 이번 학습의 목적은 지식을 늘리는데 있다

決大王策= 대왕의 계책을 결정하다.
在大王策安決= 대왕의 계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乎는 의문문이기보다는 추측이나 반어용법같습니다.
乎가 나오므로 해서 문장순서가 바뀌었죠. 어렵습니다.

大王策安決在乎
= 大王의 계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달려 있잖습니까?

麗王默然良久 遂許和親 而返旆[見東史]
=고구려왕은 아주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화친을 허락하였고 깃발을 되돌렸다.[견동사]

默然良久 사자성어책에 나오는군요. 관용적 표현입니다.
良久默然이라 해야 되겠지만, 굳어진 표현이죠.

良久= 아주 오래동안
默然= 묵연하다  [형용사]잠잠히 말이 없다.

默= 잠잠할 묵
㉠잠잠하다 ㉡입 다물다 ㉢묵묵하다

返= 돌아가다. 돌아오다. 되돌리다
旆= 패 깃발, 기
市 5획과 달리 이 부수는 4획으로 위에서 아래로 바로 그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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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月 王拜眞嘉謨爲達率 以韓豆知爲恩率 使伐靺鞨戰於關嶺 久圍不決 王乃使使持節引兵而還 [見濟史]
9월 왕은 眞嘉謨(진가모)를 拜하여 達率(달솔)로 삼았고, 韓豆知(한두지)를 恩率(은솔)로 삼았다. 말갈을 치게 하여, 關嶺(관령)에서 싸웠다. 오래동안 포위를 했으나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왕은 이내 使持節(사지절)로 하여금 병사를 이끌고 돌아오게 하였다. [견제사]

*以韓豆知爲恩率 使伐靺鞨

전에도 使을 앞에다 붙이냐 마느냐로 고민했었는데..
達率과 恩率의 관직명이 같게 함으로써 통일성도 유지하고..

使= ~하게 하다.~시키다. 의 의미이므로 뒤의 동사에 붙어도 되죠.
그래서 띄워쓰기를 변경합니다.

八月 王 以眞嘉謨爲車騎都尉 將兵數千 伐高句麗 拔都坤城 虜男女二百人而還 王大說 拜嘉謨爲兵官佐平[見濟史]
8월 왕은 眞嘉謨(진가모)를 車騎都尉(거기도위)로 삼았다. 병사 수천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서, 都坤城(도곤성)을 함락시켰고, 남녀 2백명을 노획하여 돌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嘉謨(가모)를 拜하여 兵官佐平(병관좌평)으로 삼았다.

將兵數千 에서 將이 문제입니다.

將 (2) [동사]【문어】 (군대를) 거느리다. 지휘하다. 통솔하다.
    韩信将兵, 多多益善; 한신은 병졸을 통솔함에 있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한다

將= 率= 引 과 비슷한 뜻으로.. '이끌다'의 동사용법이 있죠.
여기서도 동사로 보는게 적합합니다.

將兵數千
= 병사 수천명을 이끌다.

여기까지 진사왕 절반의 정서를 마칩니다. 혹시나 틀린 점은 지적해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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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露秋寫(국로추사)

http://yoksa.aks.ac.kr/jsp/aa/ImageView.jsp?aa10up=kh2_je_a_vsu_B3B%5E59_000&aa10no=&aa15no=&aa20no=&pageno=&imgnum=JE_A_B3B%5E59_001_000672&imgsize=

辰斯王(진사왕)

[諱辰斯 枕流王弟] 在位七年
[휘는 진사, 침류왕의 동생] 재위 7년.

○丙戌 元年[羅三十年 麗二年]
병술 (386년) 원년 [신라 30년, 고구려 2년]

二月 王令國中 徵男女十五歲以上 大設關防 自靑木嶺北距八坤城西 至大海 而衛戍
2월 왕은 나라안에 令(령)을 내려 15살이상의 남녀를 징발하여 關防(관방)을 크게 설치하였다. 북쪽의 靑木嶺(청목령)에서부터 서쪽의 八坤城(팔곤성)까지인데, (關防은) 大海(대해)까지 이르렀고 戍(수)을 방어하였다.

八月 麗王發兵攻濟 王遣鮮于老 說麗王曰 "兩國之民罷於兵革 四境蕭然 未可以武決雄 願結和親 欲以慰天下之心 大王策安決在乎" 麗王默然良久 遂許和親 而返旆[見東史]
8월 고구려왕은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은 鮮于老(선우로)를 보내 고구려왕을 설득하며 말하길, "양국의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달프고, 사방의 국경은 조용하니, 武(무)로서 決雄(결웅)할 수 없습니다. 和親(화친)을 맺기를 원합니다. 천하의 민심을 위로하려고 하시면 大王(대왕)의 계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달려 있잖습니까?" 라고 하였다. 고구려왕은 아주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화친을 허락하고 旆(패, 깃발)을 되돌렸다. [견동사]

○丁亥 二年[羅三十一年 麗三年]
정해 (387년) 2년 [신라 31년, 고구려 3년]

九月 王拜眞嘉謨爲達率 以韓豆知爲恩率 使伐靺鞨戰於關嶺 久圍不決 王乃使使持節引兵而還 [見濟史]
9월 왕은 眞嘉謨(진가모)를 拜(배)하여 達率(달솔)로 삼았고, 韓豆知(한두지)를 恩率(은솔)로 삼았다. 靺鞨(말갈)을 치게 하여 關嶺(관령)에서 싸웠다. 오래동안 포위를 했으나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왕은 이내 使持節(사지절)로 하여금 병사를 이끌고 돌아오게 하였다. [견제사]

○庚寅 五年[羅三十四年 麗六年]
경인 (390년) 5년 [신라 34년, 고구려 6년]

八月 王 以眞嘉謨爲車騎都尉 將兵數千 伐高句麗 拔都坤城 虜男女二百人而還 王大說 拜嘉謨爲兵官佐平[見濟史]
8월 왕은 眞嘉謨(진가모)를 車騎都尉(거기도위)로 삼았다. 병사 수천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서, 都坤城(도곤성)을 함락시켰고, 남녀 2백명을 노획하여 돌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嘉謨(가모)를 拜(배)하여 兵官佐平(병관좌평)으로 삼았다.

○辛卯 六年[羅三十五年 麗七年]
신묘 (391년) 6년 [신라 35년, 고구려 7년]

正月 王修宮室 鑿池造佳山 多種名花 養奇禽華獸 以悉耳目之所好 窮心志之所樂矣
1월 왕은 宮室(궁실)을 수리하였다. 연못을 파고, 佳山(가산)을 만들고, 이름있는 꽃들을 많이 심고, 기이한 새들과 화려한 짐승들을 길렀다.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갖추고, 마음이 즐거운 것을 추구하였다.

四月 靺鞨襲擊濟北鄙 掠石峴城[見濟史]
4월 靺鞨(말갈)은 백제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石峴城(석현성)을 빼앗았다. [견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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