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고구려)

동천왕 벽비 해석

라디오에요 2009. 1. 25. 14:21

 

 

正始武侵宮 百殊固諫 慾铩
正始(정시)에 (관구검의) 군사가 宮(궁)을 침략하였다. 百殊(백수)는 (得來의) 간곡한 간언을 (따르지 않았고), (망명에서 돌아와) 죽으려고 하였다.

*铩[鎩] 창 살
(1)[명사] 고대의 긴 창의 일종.
(2)[동사]【문어】 손상하다. 해치다.

*得來는 관구검 침입 이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铩은 동천왕이 자살할려는 시도를 뜻한다고 봅니다.
*百殊(백수)= 왕에 대한 존칭.

다른벽비에서
正始武止 宮不從固諫 食蒿而死 殊还亡命 欲铩
正始(정시)에 전쟁이 그쳤다. 宮(궁, 동천왕)은 (得來의) 固諫(고간, 간곡한 간언)을 따르지 않았다. (得來는) 쑥을 먹다가 죽었다. 殊(수)는 亡命(망명)에서 돌아와, 죽으려고 하였다.


*蒿(호) = 쑥.


還亡命 存其固都 誠不耐城
亡命(망명)에서 돌아와, 그 固都(고도)를 보존하였고, 不耐城(불내성)에 정성을 다하였다.

遣訖 繼創邑都 護殊百位麓酋
訖(흘)을 보내어 邑都(읍도)를 만들기를 계속하였고, 殊(수)의 百位麓酋(백위록추)를 호위하였다.

委+台七年 十月 繼明王 封护寧東國 吏玄菟

魏 正始 7년(246년) 10월, 明王(명왕, 위 명제)을 계승하여, 寧東國(녕동국)을 封护(봉호)하였고, 玄菟(현도)를 다스렸다.

*吏= 다스릴 리.

沸流安泰 天歲禮樂世百濟高麗
沸流(비류)는 평안하고 태평해졌다. 天歲(천세)의 禮樂(예악)이 百濟(백제)와 高麗(고려)에게 이어졌다.

*安泰(안태) 편안(便安)하고 태평(太平)함
*世 ㉭ 대를 잇다

殊代天府 祖鄒牟王以城民之意
殊(수)는 天府(천부)을 대신하여, 城民(성민)의 뜻으로서 鄒牟王(추모왕)을 제사지냈다.


*祖 = 제사지내다.

秋八月 步騎二千戰儉혁(赤+見)峴岭 攻數千里 降士數千
가을 8월, 보기병 2천명이 혁현령에서 관구검과 싸워, 수천리를 공략하였고, 병사 수천명을 항복시켰다.

*초기에는 관구검을 이겼죠. 나중에는 관구검에게 패배합니다.

國宮前臣高伏儉鎩城北 王盲
나라의 宮(궁)과 옛 신하들이 성의 북쪽에서 칼에다 높이 엎드려 자살하였고, 왕은 돌아가시었다.

*盲 (1) [동사] 눈이 멀다. 보이지 않다.

記天地之中 銘存 永世隨登愿
천지의 중을 기록하여, 명판이 보존되어, 영세토록 기재된 염원을 따르리라.

*登 형용사로 기재(記載)한, 게재(揭載)된.

*愿 = 소원, 염원, 바람.

此碑永立 以傳百世 紹示百殊城民
이 비가 영원히 서서, 100세까지 전해져, 百殊(백수)의 城民(성민)에게 소개되고 보여지길 바란다.


삼국사기 동천왕 22년. 248년.
二十二年 春二月 新羅遣使結和 秋九月 王薨 葬於柴原 號曰東川王 國人懷其恩德 莫不哀傷 近臣欲自殺以殉者衆 嗣王以爲非禮禁之 至葬日 至墓自死者甚多 國人伐柴以覆其屍 遂名其地曰柴原
22년(248) 봄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시원(柴原)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동천왕이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왕은 예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것을 금하였다. 장례일이 되어 묘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땔나무를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을 柴原(시원)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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