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고구려)

松太后- 본기신편열전 52p.

라디오에요 2009. 5. 24. 14:12

松太后多勿候讓女也 明王初至卒本 先與都祖等治人疾病 而収拾人心 且聞松讓之仁厚 而請爲其臣 而出入 后知其非常人 而厚待之 夜必薦枕而娠 乃泣曰 "妾與郞君同枕 而娠子 不知郞君爲何 而寄此何時 而榮乎" 明王曰 "明日當知" 翌日聖王與讓會獵 而逐鹿下山 明王待之 射鹿而獻 聖王怒欲捕之 見其衣服 而怪之 問其來由 遂托后家 明王卽位 立爲后 生子都助解明大武及五公主閔中 而大武神七年崩 后妹二人亦爲明王后曰 二松后小松后

 

본기신편열전 52페이지.
松太后(송태후)는 多勿候(다물후) 松讓(송양)의 딸이다. 明王(명왕)이 처음에 卒本(졸본)에 이르러, 우선 都祖(
도조)등과 함께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어, 인심을 収拾(수습)하였다. 또한 松讓(송양)의 仁厚(인후)함을 듣고, 그의 신하가 되기를 청하며 出入(출입)하였다. 后(후)는 그가 非常人(비상인)임을 알고 그를 후대하였다. 밤에 필히 잠자리를 모시니, 임신하여 이내 울면서 말하길 "첩은 郞君(랑군)님과 동침하여 아들을 배었습니다. 郞君(랑군)님이 무엇때문에 여기에 기거하는지 모르나, 언제 드러내실 것입니까? "라고 하였다. 明王(명왕)이 말하길, "내일 바로 알게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다음날 聖王(성왕)은 松讓(송양)과 만나 사냥을 하였는데, 사슴을 쫓아 산을 내려왔다. 明王(명왕)은 그를 기다렸다가, 사슴을 쏘아 바치니, 聖王(성왕)은 화가 나서 그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그 복장을 보고 괴이하여 그 來由(래유)를 물으니, 마침내 后(후)의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明王(명왕)이 즉위하자, 后(후)로 삼았고, 아들 都助(도조), 解明(해명), 大武(대무), 및 다섯 公主(공주)와 閔中(민중, 解邑朱)을 낳고 大武神(대무신) 7년(AD24년)에 崩(붕)하였다. 松后(송후)의 妹(매, 여동생) 두 사람 역시 明王(명왕)의 后(후)가 되니, 二松后(이송후), 小松后(소송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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