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1年~33年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11년, 12년, AD136년, AD137년

라디오에요 2009. 10. 13. 17:31

 

 

十一年 正月 上有疾 聖父侍德公太子骨久妃君受朝南桃

11년(AD136년) 1월, 상은 병이 생겨, 聖父(성부)가 德公太子(덕공태자), 骨久(골구)의 妃(비)와 君(군)를 모시고 南桃(남도)에서 조회를 받았다.


二月 復以吉門爲伊伐飡 甘生爲稟主 摩帝爲按軍使 蝦盧爲大乘大師 啓其爲理方大師

2월, 다시 吉門(길문)을 伊伐飡(이벌찬)으로, 甘生(감생)을 稟主(품주)로 삼았다. 摩帝(마제)를 按軍使(안군사)로, 蝦盧(하로)를 大乘大師(대승대사)로, 啓其(계기)를 理方大師(리방대사)로 삼았다.


五月 惠后難産而崩 春秋五十四 上痛哀之 三日不食 群臣力救護之 葬后於蛇陵門 以雌神史省爲皇后 以權妻阿良爲聖母

5월, 惠后(혜후)가 難産(난산)으로 죽으니, 춘추 54살이였다. 상은 애통해 하며 3일동안 먹지 않았다. 郡臣(군신)들이 힘써 상을 救護(구호)하였다. 蛇陵門(사릉문)에 后(후)를 장사지냈다. 雌神(자신) 史省(사성)을 皇后(황후)로 삼았고, 權妻(권처) 阿良(아량)을 聖母(성모)로 삼았다.

 

*惠后(혜후)= 阿惠(아혜).  南解(남해)와 雲帝(운제)부인 사이의 딸.

*群臣으로 수정.

*救護(구호) ①도와서 보호(保護)함 ②부상자(負傷者)나 병자(病者)를 간호(看護)함


六月 上與史后受朝南桃 大宴骨門

6월, 상은 史后(사후)와 함께 南桃(남도)에서 조회를 받았다. 骨門(골문)에서 크게 연회를 하였다. 


九月 以白馬爲以伐飡 細婁爲稟主 吉門爲五軍都護使 屬于聖父

9월, 白馬(백마)를 伊伐飡(이벌찬)으로, 細婁(세루)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吉門(길문)을 五軍都護使(오군도호사)로 삼아서, 聖父(성부)에게 속하게 하였다.

 

*板久(판구)(136년 ~ 193년) 출생.


十二年 上與史后受朝高井

12년(AD137년) 상은 史省(사성)와 함께 高井(고정)에서 조회를 받았다.


二月 以摩帝爲伊伐飡 河馬爲稟主 白馬爲按軍使 賜船公穀五千石

2월, 摩帝(마제)를 伊伐飡(이벌찬)으로, 河馬(하마)를 稟主(품주)로, 白馬(백마)를 按軍使(안군사)로 삼았다. 船公(선공)에게 곡식 5천석을 하사하였다.

 

五月 金官加耶與月奈等七國作亂 命吉門爲征虜大將軍 討平之

5월, 金官加耶(금관가야)와 月奈(월나)등 7국이 亂(란)을 일으켰다. 吉門(길문)을 征虜大將軍(정로대장군)으로 삼아, 그들을 討平(토평)시켰다.

 

七月 命發良白馬築加召馬頭 上謂摩帝曰 “朕以寡德臨國無威 扶余加耶去益猖獗如之 何則好乎?” 摩帝曰 “臣之愚計莫如通色相親 以機制之” 上善之

7월, 發良(발량)과 白馬(백마)에게 명하여 加召城(가소성)와 馬頭城(마두성)을 쌓도록 하였다. 상은 摩帝(마제)에게 말하기를 “짐이 덕이 적은데도 나라를 맡아 위엄이 없고, 扶余(부여)와 加耶(가야)는 갈수록 더욱 猖獗(창궐)하여 이와 같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라고 하였다. 摩帝(마제)가 말하기를 “臣(신)의 어리석은 계략은 色(색)을 通(통)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 機智(기지)로서 그들을 제어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이를 옳다고 하였다.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8년, AD87년.

八年 秋七月 下令曰 朕以不德 有此國家 西鄰百濟 南接加耶 德不能綏 威不足畏 宜繕葺城壘 以待侵軼 是月 築加召馬頭二城

8년(서기 87) 가을 7월에 영(令)을 내려 말하였다.
"나는 덕이 없으면서도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여 있고 남쪽은 가야와 연접해 있다. 덕은 능히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이웃 나라를] 두렵게 하기에 부족하니 마땅히 성루(城壘)를 수리하여 침입에 대비하라!"
이 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의 두 성을 쌓았다.

 

 

*去益(거익)= 갈수록 더욱.

*연대편차 AD137년- AD87년= 50년.   12년- 8년= 3년 편차.

*加召城主(가소성주) 장세(長世)가 파사이사금기 20년, 145년 9월에 거타(居陀)를 구하려다 가야에게 사망한 기사가 있고, 馬頭城(마두성)은 143년 2월에 가야가 공격한 기록이 있으므로 모두 加耶(가야)를 대비하여 축성한 듯 하다.

*307년 10월에 내해이사금의 아들 于老(우로)가 고구려의 공격을 피해 마두책(馬頭柵)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十一月 以白子爲馬頭城主 車門爲加召城主 加爵一級 稟主河馬生三子 而危篤 命以權妻美禮爲摩帝密妻 代行稟主事

11월, 白子(백자)를 馬頭城主(마두성주)로, 車門(차문)을 加召城主(가소성주)로 삼았고, 벼슬 1급을 더하였다. 稟主(품주) 河馬(하마)가 셋째 아들을 낳았지만, 危篤(위독)하였다. 權妻(권처) 美禮(미례)를 摩帝(마제)의 密妻(밀처)로 삼도록 명하였고, 稟主(품주)의 일을 대행하게 하였다.

 

*十一月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