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1年~33年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9년, AD134년

라디오에요 2009. 10. 12. 20:08

 

 

九年 正月 上與惠后德公骨久修朝南桃
9년(AD134년) 1월, 상은 惠后(혜후), 德公(덕공), 骨久(골구)과 함께 南桃(남도)에서 조회를 받았다.

 

*骨久로 수정.

 

二月 以明宣爲伊伐飡 閑帝爲稟主 乾水爲覆岩太守 妻以召氏 弩門爲一善州太守 允良爲水路軍事 活祇爲大城大師 以君己妻果老妻允良 以聖父密妻召于那妻君己

2월, 明宣(명선)을 伊伐飡(이벌찬)으로 삼았다. 閑帝(한제)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乾水(건수)를 覆岩太守(복암태수)로 삼았고, 召氏(소씨)를 처로 삼았다. 弩門(노문)을 一善州(일선주)의 太守(태수)로 삼았다. 允良(윤량)을 水路軍事(수로군사)로 삼았다. 活祇(활지)를 大城大師(대성대사)로 삼았다. 君己(군기)의 처 果老(과로)를 允良(윤량)에게 시집보냈다. 聖父(성부)의 密妻(밀처) 召于那(소우나)를 君己(군기)에게 시집보냈다.

 

*果老로 수정.

*果老(과로)는 聖父(성부)의 딸.

*明宣(명선)은 覆岩州(복암주)의 太守(태수)였다. 5년조 9월 참조.

 

三月 召文使玉上人等入朝 獻仙酒五十壺樂器七事 上與惠后引見 勞之 古陀耶君加西生一子二女 上命其弟加也往慰 賜米

3월, 召文(소문)의 사신 玉上人(옥상인)등이 입조하여, 仙酒(선주) 50병과 樂器(악기) 7벌을 바쳤다. 상은 惠后(혜후)와 함께 引見(인견)하였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古陀耶(고타야)의 君(군) 加西(가서)가 1남 2녀를 낳았다. 상은 그녀의 동생 加也(가야)에게 명하여 가서 위문하도록 하였고, 쌀을 하사하였다.

 

*獻仙酒五十壺 에서 壺(병 호)로 수정.

*事 = 件 = 個 = 벌(옷을 세는 단위), 기물(器物) 세는 양사().
*引見(인견)= 아랫 사람을 불러들여 만나 봄. 引接(인접).

*加西(가서)는 古陀耶(고타야)의 君(군)으로서 女子이다. 聖父(성부)의 딸이며, 남편은 叔公(숙공).

 

四月 權妻玄兒生上女多可 上洗之 刀良干羊公出獵 爲獸所傷而卒 其妻不怠請以其子艾公代之 許之

4월, 權妻(권처) 玄兒(현아)가 상의 딸 多可(다가)를 낳았다. 상이 씻어 주었다. 刀良(도량) 干羊公(간양공)이 사냥 나갔다가, 맹수에게 다쳐서 죽었다. 그의 처 不怠(부태)는 그의 아들 艾公(애공)으로서 그를 대신할 것을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五月 加西與夫叔公引其孿子入朝 獻靑牛三牝一牡 上與惠后視其兒 賜叔公衣酒 命農師大頭置靑牛典 畜之 北路軍母甘生遣使獻方物 奏曰 “妾夫吉門多年戍外 身家未好 子女思京 妾亦願見陛下許妾夫妻賜暇一年” 上問於聖父 聖父曰 “武臣思安非其道 可罪之” 史省曰 “身恙 而不許非骨肉之情乃勸聖父許之 以晉公爲北路軍事 婁麼爲軍母 召吉門歸京都 上命宅師起吉門宅于日知宅東 甘生與其子逃門謁聖父 逃門者甘生逃于吉門而生也 時方五歲 而俊美 有巧智 能令聖父笑 聖父愛之曰 “以汝之功可赦汝母罪” 吉門大喜 乃改其名曰功門 麥大豊 南路新縣多連歧者 上命農師集其穗薦于祖廟

5월, 加西(가서)가 남편 叔公(숙공)과 함께 그녀의 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입조하여, 푸른 소 암컷 3마리와 숫컷 1마리를 바쳤다. 상은 惠后(혜후)와 함께 그 아이를 살펴보았다. 叔公(숙공)에게 옷과 술을 하사하였다. 農師大頭(농사대두)에게 명하여 靑牛典(청우전)을 설치하여 기르도록 하였다. 北路軍母(북로군모) 甘生(감생)이 방물을 바치며 아뢰기를 "첩의 남편 吉門(길문)은 수년동안 밖을 지켰기에, 몸과 집안이 좋지 않고, 자녀들은 서울을 그리워하니, 첩 역시 陛下(폐하)께서 첩의 夫妻(부처)에게 1년 휴가를 하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聖父(성부)에게 문의하였다. 聖父(성부)가 말하길 "武臣(무신)이 편안함을 생각한다면 道(도)가 아니니, 죄줄 만하다." 라고 하였다. 史省(사성)이 말하길 "몸이 병들었는데도, 허락하지 않는 것은 骨肉(골육)의 정이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이내 聖父(성부)가 허락해 주기를 권하였다. 晉公(진공)을 北路軍事(북로군사)로 삼았고, 婁麼(루마)를 軍母(군모)로 삼았다. 吉門(길문)을 불러 京都(경도)로 돌아오게 하였다. 상은 宅師(택사)에게 명하여 日知宅(일지택) 동쪽에 吉門(길문)의 집을 짓도록 하였다. 甘生(감생)은 그녀의 아들 逃門(도문)과 함께 聖父(성부)을 알현하였다. 逃門(도문)이란 자는 甘生(감생)이 吉門(길문)에게 도망가서 낳은 아이였다. 이때 막 5살이였지만, 俊美(준미)하고 巧智(교지)가 있어, 聖父(성부)를 웃게 할 수 있었다. 聖父(성부)가 그를 좋아하며 말하길 "너의 공으로서 너의 어머니의 죄를 사면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였다. 吉門(길문)은 크게 기뻐하며 이내 그의 이름을 고쳐 功門(공문)이라 하였다. 보리가 大豊(대풍)이라서, 南路新縣(남로신현)에서는 가지를 친 것이 많았다. 상은 農師(농사)에게 명하여 그 이삭을 모아 祖廟(조묘)에 올리도록 하였다.

 

*乃改其名曰로 수정.

*起  ⑤ 세우다. 지음.
    [예문] 復起屋必以大〈漢書〉

*方 (22) 바야흐로. 이제 막.
    [예문] 血氣方剛〈論語〉

*삼국유사 우사절유택(又四節遊宅)에 의하면, 춘택(春宅)은 동야택(東野宅)임. 

*聖父(성부) = 許婁(허루).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5년, AD84년

五年 春二月 以明宣爲伊湌 允良爲波珍湌 夏五月 古陁抒郡主獻靑牛 南新縣麥連歧 大有年 行者不齎糧

5년(서기 84) 봄 2월에 명선(明宣)을 伊湌(이찬)으로 삼고 윤량(允良)을 波珍湌(파진찬)으로 삼았다. 여름 5월에 고타군주(古陁抒郡主)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다. 남신현(南新縣)에서 보리줄기가 가지를 쳤다. 크게 풍년이 들어 여행하는 사람이 양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연대편차 AD134년- AD84년= 50년.

 

六月 以吉門爲伊伐飡 甘生爲稟主 以明宣爲骨門伊飡 閑帝爲骨母

6월, 吉門(길문)을 伊伐飡(이벌찬)으로 삼았다. 甘生(감생)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명선(明宣)을 伊飡(이찬)으로 삼았고, 閑帝(한제)를 骨母(골모)로 삼았다.

 

九月 穀大登 大農大師尹公角干與其妻伊利生大母行大場于南郊 上與惠后幸之 賜酒父老 頌聲遍野 是夜 伊利生夢見 儒理尼今以大穗授之曰 “可以爲神穗” 乃告于尹公 尹公曰 “大兆也 不可語人 可以驗之” 遂沐浴 行禱而合宮 果得神胎 公夫妻自喜于心曰 “吾夫妻久淪不明 今有大慶 無以報神 只可垂憐民草 無失慈愛也”

9월, 곡식이 크게 풍년이 들었다. 大農大師(대농대사) 尹公(윤공) 角干(각간)은 그의 처 伊利生大母(이리생대모)와 함께 南郊(남교)에서 大場(대장)을 거행하였다. 상은 惠后(혜후)와 함께 幸(행)하여, 父老(부로)들에게 술을 하사하니, 칭송하는 소리가 들을 뒤덮었다. 이날밤 伊利生(이리생)은 꿈에 儒理尼今(유리니금)을 만났는데, 큰 이삭을 주며 말하길 "神(신)의 이삭이라 할 만하다" 라고 하였다. 尹公(윤공)에게 고하니, 尹公(윤공)이 말하길 "대단한 조짐이로다.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고, 시험해 볼만하다" 라고 하였다. 목욕을 끝내고 기도를 하고, 合宮(합궁)하였다. 과연 神胎(신태)를 얻으니, 公(공)의 夫妻(부처)는 저절로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하길 "우리 夫妻(부처)가 오랫동안 몰락하여 드러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큰 경사가 생겨 神(신)께 보답할 수 없지만, 다만 民草(민초)들을 垂憐(수련)하여, 慈愛(자애)를 잃음이 없게 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大農大師로 수정.

*賜酒父老은 賜酒于父老가 되어야 함.

*伊利生夢見로 수정.
*尼今의 尼 글자는 아래에 口+七 같은 글자가 붙어 있음.

*頌聲(공성) = (태평 성대·공덕 ) 칭송하는 소리.

*神穗(신수) = 神의 이삭.

*驗(험) = 試驗하다.
*遂(수) (2) 이루다.
   ① 성취하다.
    [예문] 置而不遂〈國語〉
   ② 마치다. 끝냄.
    [예문] 逡巡而退 其不遂〈逸周書〉
*吾夫妻久淪에서 久로 수정.

*淪(륜)1. 침몰(沈沒)하다. 2. 몰락하다. (불리한 지경에) 빠지다.

*沈淪(침륜) ①침몰(沈沒) ②재산(財産)이나 권세(權勢) 등(等)이 없어져서 보잘 것 없이 됨.

*明 (4) 나타나다. 똑똑히 드러남.
    [예문] 以通神明之德〈易經〉

*可 ⑤ [可…]…해야 한다.
    [예문] 可急使守函谷關〈漢書〉

*無以 = ~할 수 없다. ~할 도리(방도)가 없다.

*垂憐(수련) ①가엾게 생각하여 돌봄 ②불쌍하게 여기어 동정(同情)함.


十二月 行大祭閼川 加耶樂浪召文之民亦許入列 家給人足 行不賚粮 狗不食糟 以白公子啓其爲京都兵官 乃加其之兄子也 娶加其女加大爲妻 亦聖父婿也

12월, 閼川(알천)에서 大祭(대제)을 거행하였다. 加耶(가야), 樂浪(낙랑), 召文(소문)의 백성들 역시 入列(입렬)이 허락되었다. 집집마다 넉넉하였고 사람들은 풍족하였고, 식량을 내려주지 않아도 되었고, 개는 지게미를 먹지 않았다. 白公(백공)의 아들 啓其(계기)를 京都兵官(경도병관)으로 삼으니, 바로 加其(가기) 형의 아들이다. 加其(가기)의 딸 加大(가대)를 취하여 처로 삼았다. 또한 聖父(성부)의 사위였다.

 

*家給人足(가급인족)= 집집마다 살림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 살기 좋음. <漢書>

*行不賚粮= 不行賚粮.  도치문장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