祗摩紀(지마기) PDF파일 1p ~ 52p. 재위33년 분량.
逸聖紀(일성기) PDF파일 53p ~ 92p. 재위21년 분량.
土豕 元年 正月 太公摩帝薨 葬以王禮
土豕(토시, 己亥) 원년(AD159년) 1월, 太公(태공) 摩帝(마제)가 죽으니, 王(왕)의 禮(례)로서 장사지냈다.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원년, AD112년.
祇摩尼師今 立 或云祇味 婆娑王嫡子 母史省夫人 妃金氏愛禮夫人 葛文王摩帝之女也 初婆娑王獵於楡湌之澤 太子從焉 獵後 過韓歧部 伊湌 許婁饗之 酒酣 許婁之妻 携少女子出舞 摩帝伊湌之妻 亦引出其女 太子見而悅之 許婁不悅 王謂許婁曰 "此地名大庖 公於此 置盛饌美醞以宴衎之 宜位酒多 在伊湌之上" 以摩帝之女 配太子焉 酒多後云角干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혹은 지미(祇味)라고도 하였다.> 파사왕(婆娑王)의 친아들이고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다. 왕비는 김씨(金氏)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葛文王) 마제(摩帝)의 딸이다. 일찍이 파사왕(婆娑王)이 유찬(楡湌)의 못 가에서 사냥할 때 태자(太子)가 따라 갔다. 사냥을 마친 후에 한기부(漢歧部)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찬(伊湌) 허루(許婁)가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자 허루(許婁)의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서 춤을 추었다. 이찬(伊湌) 마제(摩帝)의 아내 역시 자기 딸을 이끌고 나왔는데, 태자(太子)가 보고서 기뻐하였다. 허루가 언짢아 하자, 왕이 허루에게 말하였다.
"이곳 땅 이름이 대포(大庖)인데, 공은 이곳에서 잘 차린 음식과 맛좋은 술을 마련하여 잔치를 열어 즐겁게 해주었으니 마땅히 주다(酒多)의 위계를 주어 이찬(伊湌)보다 위에 있게 하겠다."
그리고는 마제(摩帝)의 딸을 태자(太子)의 짝으로 삼았다. 주다(酒多)는 후에 각간(角干)이라 일컬어졌다.
*AD159년- AD112년= 47년 편차.
二月 上與愛后親祀祖廟 賜酺骨門 昌永伊飡 宮孝稟主 玉權水路 羊皇水母 啓其別軍使 申權吉飡 順宣斗胡級飡 翌宗京路 狗日京母 昕連護城大師
2월, 상은 愛后(애후)와 함께 친히 祖廟(조묘)에 제사지내고, 骨門(골문)에게 酺(포, 酒食, 술과 음식)을 하사하였다. 昌永(창영)을 伊飡(이찬)으로, 宮孝(궁효)를 稟主(품주)로, 玉權(옥권)을 水路(수로)로, 羊皇(양황)을 水母(수모)로, 啓其(계기)를 別軍使(별군사)로, 申權(신권)을 吉飡(길찬)으로, 順宣(순선)과 斗胡(두호)를 級飡(급찬)으로, 翌宗(익종, 제거의 아들)을 京路(경로)로, 狗日(구일)을 京母(경모)로, 昕連(흔련)을 護城大師(호성대사)로 삼았다.
*酺(포)= 연회, 술과 음식, 酒食(주식)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2년, AD113년.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拜昌永爲伊湌 以參政事 玉權爲波珍湌 申權爲一吉湌 順宣爲級湌 三月 百濟遣使來聘
2년(AD113년) 봄 2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창영(昌永)을 이찬(伊湌)으로 삼아 정치에 참여시켰다. 옥권(玉權)을 파진찬(波珍湌)으로 삼고 신권(申權)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급찬(級湌)으로 삼았다. 3월, 백제(百濟)가 사신을 보내와서 예방(禮訪)하였다.
*AD159년 -AD113년= 46년 편차. 지마이사금 2년- 지마기 1년= 1년 편차.
三月 扶余使來吊先今 獻方物 上洗愛后女淡理
3월, 扶余(부여)의 사신이 와서 先今(선금)을 조문하였고 方物(방물)을 바쳤다. 상은 愛后(애후)의 딸 淡理(담리)를 씻어주었다.
七月 上與太聖愛后遊音汁伐 試射士
7월, 상은 太聖(태성, 史后= 史省)과 愛后(애후)와 함께 音汁伐(음즙벌)을 여행하였고, 射士(사사)를 시험하였다.
二年 正月 以馬知那爲神籬將軍 莫兮南路 加車南母
2년(AD160년) 1월, 馬知那(마지나)를 神籬將軍(신리장군)으로, 莫兮(막혜)를 南路(남로)로, 加車(가거)를 南母(남모)로 삼았다.
三月 降雹傷麥 昌永請免 不許 允良西路 白馬卒故也 遣大頭逸聖于州郡 按民察吏 五厚獻阿瑟羅地
3월, 떨어지는 우박이 보리를 상하게 하였다. 昌永(창영)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允良(윤량)을 西路(서로)로 삼았는데, 白馬(백마, 西路軍事)가 죽었기 때문이였다. 大頭(대두) 逸聖(일성)을 州郡(주군)으로 보내, 백성들을 살피고 관리들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五厚(오후)가 阿瑟羅(아슬라)의 땅을 바쳤다.
四月 大水 上減食自責 慮囚除死罪悉宥之
4월, 홍수가 났다. 상은 음식을 줄이며 自責(자책)하였다. 죄수를 헤아려 죽을 죄를 제외하고 모두 용서해 주었다.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3년, AD114년.
三年 春三月 雨雹 麥苗傷 夏四月 大水 慮囚 除死罪 餘悉原之
3년(AD114년) 봄 3월, 우박이 내려 보리의 싹을 상하게 하였다. 여름 4월, 홍수가 났으며, 죄수의 정상을 살펴 사형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었다.
*AD160년- AD114년= 46년 편차. 신라본기 지마 3년- 지마기 2년= 1년 편차.
七月 朱日遣使獻美女 以爲居陀本屬臣邦 請歸于臣 上不許 汗門爲北路 虹盧爲阿瑟羅太守 板久生上子板公
7월, 朱日(주일)이 사신을 보내 美女(미녀)를 바치며, 居陀(거타)는 본래 臣(신)의 나라로 생각한다며 臣(신)에게 돌려줄 것을 청하였으나, 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汗門(한문)을 北路(북로)로, 虹盧(홍로)를 阿瑟羅太守(아슬라태수)로 삼았다. 板久(판구)가 상의 아들 板公(판공)을 낳았다.
*板久(판구) = 紇古(흘고)가 낳은 아들, 吉公(길공)과 紇古(흘고) 사이에 모자근친관계로 낳은 딸.
*居陀(거타)는 경남 居昌(거창). 대가야의 朱日(주일)은 居陀(거타)를 두고 신라와 힘겨루기를 함.
居昌(거창)은 예부터 거열(居列), 거타(居陀), 한들, 거창(居昌), 아림(娥林), 제창(濟唱) 등으로 불렸다. ‘크고 넓은 들판’이라는 뜻.
九月 召文景文王崩 子翡貝立 時景文荒色亂政 翡貝母與妙后爭寵 或云景文遇鴆而崩 上遣私臣逸聖吊之 翡貝以其姊現郞妻之 加利井主生上女七利 上洗之
9월, 召文(소문)의 景文王(경문왕)이 죽으니, 아들 翡貝(비패)가 즉위하였다. 이때 景文王(경문왕)은 荒色(황색)하여, 정사를 어지럽혔다. 翡貝(비패)의 어머니와 妙后(묘후)가 총애를 다투었다. 혹은 景文王(경문왕)은 鴆(짐, 짐새)으로 독살당하여 죽었다고 하였다. 상은 私臣(사신) 逸聖(일성)을 보내 조문하였다. 翡貝(비패)는 누나 現郞(현랑)을 逸聖(일성)에게 시집보냈다. 加利井主(가리정주)가 상의 딸 七利(칠리)를 낳았다. 상은 아기를 씻어 주었다.
*鴆毒(짐독)=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렬(猛烈)한 독, 또는 독한 기운(氣運)
十一月 逸聖與現郞歸 上見而美之 召幸之曰 “爾母與汝孰美” 現郞曰 “妾母年倍于妾 而色亦倍之” 上爲之動容
11월, 逸聖(일성)과 現郞(현랑)이 돌아왔다. 상이 만나보고 그녀를 칭찬하며, 불러 幸(행)하며 말하기를 “너의 어머니와 너는 누가 더 이쁘냐?” 라고 하였다. 現郞(현랑)이 말하기를 “妾(첩)의 어머니의 나이는 妾(첩)보다 倍(배)이기에, 色(색)도 역시 倍(배)입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動容(동용, 행동과 용모)을 생각하였다.
三年 正月 支所禮伊飡 毛利稟主 玉權京路 翌宗水路
3년(AD161년) 1월, 支所禮(지소례)를 伊飡(이찬)으로, 毛利(모리)를 稟主(품주)로, 玉權(옥권)을 京路(경로)로, 翌宗(익종)을 水路(수로)로 삼았다.
二月 朱日侵居陀 上怒 命馬知那伐之
2월, 朱日(주일)이 居陀(거타)를 침략하였다. 상은 노하여 馬知那(마지나)에게 명하여 그를 치도록 하였다.
*居陀(거타)는 경남 居昌(거창).
예부터 거열(居列), 거타(居陀), 한들, 거창(居昌), 아림(娥林), 제창(濟唱) 등으로 불렸다.
三月 以仇鄒太子爲詳文大師 逸聖爲少師
3월, 仇鄒太子(구추태자)를 詳文大師(상문대사)로, 逸聖(일성)을 少師(소사)로 삼았다.
*詳文大師로 수정.
七月 上親征加耶至黃山江 爲伏兵所圍 兵官雄宣披圍救出 馬知那大軍繼至 敵退遁
7월, 상은 친히 加耶(가야)를 정벌하러 黃山江(황산강)에 이르렀으나, 伏兵(복병)에게 포위당하였다. 兵官(병관) 雄宣(웅선)이 포위를 뚫고 상을 救出(구출)하였다. 馬知那(마지나)의 大軍(대군)이 이어서 도착하자, 敵(적)들은 퇴각하여 물러났다.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4년, AD115년.
四年 春二月 加耶寇南邊 秋七月 親征加耶 帥步騎度黃山河 加耶人伏兵林薄以待之 王不覺直前 伏發圍數重 王揮軍奮擊 決圍而退
4년(AD115년) 봄 2월, 가야가 남쪽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가을 7월, 몸소 가야를 정벌하였는데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넜다. 가야인이 군사를 수풀 속에 숨겨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왕이 깨닫지 못하고 똑바로 나아가니 복병이 일어나 몇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군사를 지휘하여 분발하여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하였다.
*AD161년 -AD115년= 46년 편차. 신라본기 지마 4년- 지마기 3년= 1년 편차.
*居陀(거타)를 두고, 대가야와 전쟁을 함.
九月 上閱兵于推火 以吉元爲征虜大將軍
9월, 상은 推火(추화)에서 병사들을 사열하였다. 吉元(길원)을 征虜大將軍(정로대장군)으로 삼았다.
*推火(추화)는 경남 밀양.
十月 朱日遣使請和 不許 以骨花妻雄宣
10월, 朱日(주일)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骨花(골화, 婆娑(파사)와 骨久(골구)의 딸)를 雄宣(웅선)에게 시집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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