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年 正月 以逸聖爲護城大師 昕連爲京路 玉權爲神籬將軍 馬知那伊飡 兪生稟主
7년(AD165년) 1월, 逸聖(일성)을 護城大師(호성대사)로, 昕連(흔련)을 京路(경로)로, 玉權(옥권)을 神籬將軍(신리장군)으로, 馬知那(마지나)를 伊飡(이찬), 兪生(유생)을 稟主(품주)로 삼았다.
四月 婁生生永宣女解生
4월, 婁生(루생)이 永宣(영선)의 딸 解生(해생)을 낳았다.
五月 以貝文爲春宅大母 骨門爭之 上不許
5월, 貝文(패문)을 春宅大母(춘택대모)로 삼았다. 骨門(골문)이 이를 따졌으나, 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六月 立汗兒廟于北川 以赤旨子竹竹爲主 悉直獻大雀于班君 天惠聖母生上子惠公
6월, 汗兒(한아)의 廟(묘)를 北川(북천)에 세웠다. 赤旨(적지)의 아들 竹竹(죽죽)을 主(주)로 삼았다. 悉直(실직)에서 大雀(대작)을 班君(반군)에게 바쳤다. 天惠聖母(천혜성모)가 상의 아들 惠公(혜공)을 낳았다.
八月 行嘉俳南桃 虹盧卒 以五厚子兵君代之 冬 無雪 水酒太守君乙卒 樊五代之
8월, 南桃(남도)에서 嘉俳(가배)를 행하였다. 虹盧(홍로, 아슬라태수)가 죽어, 五厚(오후)의 아들 兵君(병군)이 대신하게 하였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水酒太守(수주태수) 君乙(군을)이 죽어, 樊五(번오)가 대신하였다.
八年 正月 上祭火馬神于南門 以仇鄒太子爲伊飡 味生爲稟主 味生上之胞妹也 上愛之 以爲稟主 群臣以爲前今之子不可執政 上曰 “仇鄒忠於朕 其妻朕之半體也 此人不可 孰復可乎” 太子登相 乃始於仇鄒 穀公獻爪 上歎其神明 加爵匝判 賜衣酒
8년(AD166년) 1월, 상은 南門(남문)에서 火馬神(화마신, 丙午)에게 제사지냈다. 仇鄒太子(구추태자)를 伊飡(이찬)으로, 味生(미생)을 稟主(품주)로 하였다. 味生(미생)은 상의 胞妹(포매)이다. 상은 味生(미생)을 사랑하여 稟主(품주)로 삼았다. 群臣(군신)들이 前今(전금)의 아들이 執政(집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仇鄒(구추)는 짐에게 충성하고, 그 처(味生)는 짐의 반쪽(여동생)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누가 대체 좋으냐?” 라고 하였다. 太子(태자)가 재상의 오르는 것은 곧 仇鄒(구추)에서 시작되었다. 穀公(곡공)이 발톱을 바쳤다. 상은 그 神明(신명)을 칭찬하여, 벼슬 匝判(잡판)을 더해 주었고, 옷과 술을 하사하였다.
*獻爪로 수정.
*火馬= 丙午= AD166년.
*仇鄒太子(구추태자)는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의 아들. 벌휴의 아버지.
二月 召羅太守方(山)我卒 以其國屬于所利城 西韓遂絶 上命有司 賜方我族屬一百人家宅奴婢于京都
2월, 召羅太守(소라태수) 方我(방아, 원본에는 山我)가 죽었다. 그 나라를 所利城(소리성)에 속하게 하였다. 西韓(서한)이 마침내 끊어졌다. 상은 有司(유사)에게 명하여 方我族屬(방아족속) 100명에게 京都(경도)에서 (살도록) 家宅(가택)과 奴婢(노비)를 하사하였다.
*方我(방아), 원본에서 山我(산아)로 고쳐졌음.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9년, AD120년.
九年 春二月 大星墜月城西 聲如雷 三月 京都大疫
9년(120) 봄 2월에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천둥치는 것과 같았다. 3월에 서울에 질병이 크게 번졌다.
*AD166년- AD120년= 46년. 9년- 8년= 1년 편차.
*지마기에는 3월 질병 기사는 없다.
五月 兄山人以竹皮爲器 獻于德公 德公曰 “吾非主上 何敢有此” 乃獻于上 上曰 “民自愛兄 兄何絶之” 乃下于骨久 命兄山人爲竹皮奈麻 大星墜井西 其聲如雷
5월, 兄山人(형산인)이 竹皮(죽피)로 그릇을 만들어 德公(덕공)에게 바쳤다. 德公(덕공)이 말하기를 “나는 主上(주상)이 아니니, 어찌 감히 이것을 가지겠느냐.” 라고 하며, 곧 상에게 바쳤다. 상이 말하기를 “백성들은 兄(형)을 사랑하는데, 兄(형)께서는 어찌 거절합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骨久(골구)에게 내려주었다. 兄山人(형산인)에게 명하여 竹皮奈麻(죽피나마)로 삼았다. 큰 별이 井西(정서)에 떨어졌다. 그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骨久로 수정.
*큰 별이 떨어진 일은 신라본기는 2월로, 지마기는 5월로 나옴.
九月 穀大登 行大場于南郊 貝文公主生上子貝公 上大喜洗兒 如有不及 愛后怒不言 後五日 愛后亦生女 上洗之 命其名曰不言 愛后改以好言 上命鮑主 約好言爲貝公妻 愛后不敢復妬
9월, 곡식이 크게 풍년이 들었다. 南郊(남교)에서 大場(대장)을 거행하였다. 貝文公主(패문공주)가 상의 아들 貝公(패공)을 낳았다. 상은 크게 기뻐하며 아기를 씻어 주었다. 미치지 못함이 있으면 愛后(애후)가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았다. 5일 후 愛后(애후) 역시 딸을 낳았다. 상은 아기를 씻어 주며, 그 이름을 命(명)하길 不言(불언)이라 하였다. 愛后(애후)가 好言(호언)으로 고쳤다. 상은 鮑主(포주)에게 명하여 好言(호언)을 貝公(패공)의 처로 삼기를 약속하였다. 愛后(애후)는 감히 다시 질투하지 않았다.
*원본에서 大場에서 場은 잘못된 글자로 됨.
*如有不及 에서 如는 접속사로서, "만일 ~하면" 의 뜻.
十月 行先今祭 甘文女主 請以服君太子爲夫 許之
10월, 先今祭(선금제)를 거행하였다. 甘文(감문)의 女主(여주)가 服君太子(복군태자)를 남편으로 삼기를 청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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