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물은 신라 때 今物(금물) 음달이라 부르는, 김천시 御侮面(어모면), 백제도 금물현이라는 곳이 잇었다.
경덕왕때 금무현, 고려때 덕풍현, 예산군 덕산이 되었다.
勿慧= 일본서기 계체기의 牟婁와 滿亥, 양직공도 麻連, 경북 군위군 孝令面효령면= 옛지명= 芼兮
서형산(西兄山), 생서랑(生西郞), 모화(毛火), 퇴화(退火), 위화(渭火), 일선(一善), 답달시(答達匕), 고동람(古冬攬), 급벌산(급벌산), 내기(奈己), 우시(于尸), 야시홀(也尸忽)의 12군과
모혜(芼兮),
동잉음(東仍音),
비화(比火),
악지(惡支),
근마지(近馬支),
지답(只畓),
아혜(阿兮),
노사화(奴斯火),
마진량(麻珍良),
추량화(推良火),
달구화(達句火),
다사지(多斯只),
설화(舌火),
상화촌(上火村),
치성화(雉省火),
오야산(烏也山),
경산(驚山),
솔이산(率伊山),
본피(本彼),
적산(狄山),
가시혜(加尸兮),
지품천(知品川),
금물(今勿),
이동혜(爾同兮),
음리화(音里火),
내미지(乃彌知),
도량(刀良),
근품(近品),
무동미지(武同彌知),
관문(冠文),
가해(加害),
호측(虎側),
수주(水酒),
난산(蘭山),
달이(達已),
아화옥(阿火屋),
아시혜(阿尸兮),
구화(仇火),
노동멱혜(奴同覓兮),
모혜(芼兮),
수동화(壽同火),
대목(大木),
팔거리(八据里),
사정화(史丁火),
매열차(買熱次),
절야화(切也火),
도동화(道同火),
일직(一直),
열혜(熱兮),
하지(下枝),
매곡(買谷),
고사마(古斯馬),
이벌지(伊伐只),
적아(赤牙),
칠파화(漆巴火),
조람(助攬),
청기(靑己),
병화혜(倂火兮)의 58현을 두었다.
多斯(다사)의 역사는 선사시대에는 상고할 수 없고 신라 시대에는 多斯只(다사지) 또는 畓只(답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사지, 답지, 다사 등의 명칭은 어디에서도 그 지명을 고증설명한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사의 斯(사)는 사로부족(斯盧)과 연관을 가지고 있고, 지(只)는 장소, 터 등을 뜻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사(多斯)는 일찍이 농경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던 곳에 농업의 표본적인 곳인 까닭에 붙혀진 명칭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사가 물가와 유연성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되지만,
다른 지역의 다사는 한자 표현이 달성군 다사와 같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다사는 신라시대 다사지현(多斯只縣) 또는 답지(畓只)라 불리었습니다.
다사는 조선시대까지 대구부의 영속인 하빈현의 하동 하남면으로 내려오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거 하동면과 하남면이 병합되어 다사지의 옛 이름을 따서 다사면이라 하여 달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97년 11월 1일 다사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달성군이 아닌 다른 지역의 다사는 대부분 모래 사(沙)자를 쓰지요. 그러니 당연히 강과 관련될 수밖에요.
그러나 달성군의 다사는 모래 사가 아닌 이 사(斯)자를 씁니다. 그래서 한자명으로는 다른 지역에 있는 다사와는 구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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